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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움오름교회

사순절 40 - "무력해지는 예수님의 사역"(The Impoverished Ministry of Jesus)





*2024년 3월 40일(토) 고난주간

주님은 나의 최고봉

By 오스왈드 챔버스


예수님의 사역을 빈곤케 함


요 4:11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물이 깊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안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우물이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의 깊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 안에 있는 “우물들”의 깊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주님의 일을 빈곤하게 하였기 때문에 주께서 아무 것도 하실 수 없는 것은 아닙니까? 당신의 마음 속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고통의 우물이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때 당신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며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 이 우물은 깊습니다. 주님이라도 이 고통의 우물에서는 평강과 위로를 길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 본성의 우물에서 아무 것도 길어 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생수를 길어 내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주님께 부탁할 영역을 제한하였던 것을 기억하면서 여전히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제한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까지 하실 수 있다고 기대하면 안되겠지.”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필요로 하는 그 일이야말로 주님께서 하실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주께서 전능하신 분이심을 망각하는 순간에 우리는 주님의 사역을 빈곤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사역이 빈곤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의 불신에 있지 주님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위로와 동정을 원하지 그분을 전능자로 믿고 찾아가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중에 형편없는 그리스도인들이 그토록 많은 이유는 전능하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겉모습과 경험은 있지만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 철저하게 자신들을 내려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상황이 오면 주의 사역을 빈곤하게 합니다. “그렇지. 이것 보라구. 주님도 아무 것도 하실 수 없으시잖아.” 그러더니 깊은 우물에 내려가 자신의 힘으로 물을 길어보려고 애를 씁니다. 결국 “이것은 원래부터 될 수가 없던 일이었어”라고 체념한 후 안주합니다. 이러한 불신앙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만일 당신이 주님을 바라보면 그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분명히 당신의 미완성의 우물은 깊습니다. 그러나 우물을 보지 마시고 주님을 바라 볼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The Impoverished Ministry of Jesus

By Oswald Chambers


Where then do You get that living water? —John 4:11


“The well is deep” — and even a great deal deeper than the Samaritan woman knew! (John 4:11). Think of the depths of human nature and human life; think of the depth of the “wells” in you. Have you been limiting, or impoverishing, the ministry of Jesus to the point that He is unable to work in your life? Suppose that you have a deep “well” of hurt and trouble inside your heart, and Jesus comes and says to you, “Let not your heart be troubled…” (John 14:1). Would your response be to shrug your shoulders and say, “But, Lord, the well is too deep, and even You can’t draw up quietness and comfort out of it.”


Actually, that is correct. Jesus doesn’t bring anything up from the wells of human nature— He brings them down from above. We limit the Holy One of Israel by remembering only what we have allowed Him to do for us in the past, and also by saying, “Of course, I cannot expect God to do this particular thing.” The thing that approaches the very limits of His power is the very thing we as disciples of Jesus ought to believe He will do. We impoverish and weaken His ministry in us the moment we forget He is almighty. The impoverishment is in us, not in Him. We will come to Jesus for Him to be our comforter or our sympathizer, but we refrain from approaching Him as our Almighty God.


The reason some of us are such poor examples of Christianity is that we have failed to recognize that Christ is almighty. We have Christian attributes and experiences, but there is no abandonment or surrender to Jesus Christ. When we get into difficult circumstances, we impoverish His ministry by saying, “Of course, He can’t do anything about this.” We struggle to reach the bottom of our own well, trying to get water for ourselves. Beware of sitting back, and saying, “It can’t be done.” You will know it can be done if you will look to Jesus. The well of your incompleteness runs deep, but make the effort to look away from yourself and to look toward Him.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습니이까?”(요한복음4:11)


우물은 깊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인생의 깊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 안에 있는 우물 들의 깊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예수님의 사역을 제한하고서는, 이제 와서 예수님이 역사하지 않으신다고 불평하시는 않습니까? 당신의 가슴속에 상처와 아픔의 깊은 샘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예수님이 오셔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한복음14:1)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당신은 어깨를 움찔하며 “그러나 주님, 이 샘은 너무 깊어서 주님도 평안과 위로의 물을 길어 올릴 수 없으실 겁니다.”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사실 당신 대답이 맞습니다. 예수님은 인간 본성의 샘에서는 아무것도 길어 올리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위에서 가지고 오십니다. 우리는 지난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실 수 있도록 우리가 허락해 드렸던 일들을 기억하면서 “그래, 이런 일까지 하나님께 기대할 수 없지”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제한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그분도 못하실 것이라 생각하는 그 일이야말로 그분만이 능히 하실 일임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전능하신 분임을 잊는 순간,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주님의 사역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실제로 무력해지는 것은 우리일뿐 주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로와 동정을 베푸는 분으로 알고 주님께 나아가려 합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알고 나아가기는 주저합니다.


우리 가운데 연약한 그리스도인이 많은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질이나 경험은 있지만 예수님 앞에서 온전히 자신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어려운 경우를 당하면 “물론 그분은 아무것도 하실 수 없어”하면서 주님의 사역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 일은 할 수 없어”하며 체념하고 주저않지 마십시오. 당신이 예수님을 바라본다면 그것이 이루어짐을 알지 않습니까. 불완전하고 깊기만 한 당신의 샘에서 눈을 돌려 이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p.s: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의탁합니다."라는 기도와 함께 주님께선 운명하셨습니다. ...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의 상식이고,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시고, 일으키실 겁니다. 우리의 손에 두레박이 없다고, 물을 길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우물이 말랐다고 물을 마실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반석을 깨뜨려서,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서도 생수를 먹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귀히 여기시며, 우릴 위해 일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시니까요!!!


여기 김교신 선생이 하나님 앞에 드렸던 기도를 옮겨 봅니다.


주 예수여,

당신은 이 못되고 못난 죄인의 기도에도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루어진 소원들 하나하나를 생각할수록

"아, 분에 넘쳤도다!"라는 결론밖에 없습니다.


과연 나의 잔이 넘쳤나이다.


그러나 주 예수여,

제가 드려야 할 최대의 감사는 이미 성취된 기도 때문이 아닙니다.

이루어진 것에 대한 감사도 아시아 대륙보다 적지 않습니다마는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에 대한 감사는 실로 태평양보다 더 큽니다.


당신은 이 죄인의 감겼던 눈을 다시 뜨게 하시고

당신의 실재를 손수 만지듯이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사랑해주십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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