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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움오름교회

2021.06.13 움오름 주일 설교 - "영웅이 되고 싶었던 사울"(삼상 13장-14장)

최종 수정일: 2021년 6월 19일








삼상 9장~12장

13장

1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2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3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4온 이스라엘이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함을 듣고 그 백성이 길갈로 모여 사울을 따르니라5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6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7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8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9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10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11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12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13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14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15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의 수를 세어 보니 육백 명 가량이라16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들과 함께 한 백성은 베냐민 게바에 있고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진 쳤더니17노략꾼들이 세 대로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나와서 한 대는 오브라 길을 따라서 수알 땅에 이르렀고18한 대는 벧호론 길로 향하였고 한 대는 광야쪽으로 스보임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지역 길로 향하였더라19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20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21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22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23블레셋 사람들의 부대가 나와서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더라


14장

1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하고 그의 아버지에게는 아뢰지 아니하였더라2사울이 기브아 변두리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에 머물렀고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며3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이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4요나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쪽에는 험한 바위가 있고 저쪽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5한 바위는 북쪽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쪽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6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7무기를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8요나단이 이르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9그들이 만일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10그들이 만일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11둘이 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보이매 블레셋 사람이 이르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들이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12그 부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 있느니라 한지라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느니라 하고13요나단이 손 발로 기어 올라갔고 그 무기를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무기를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14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이라15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16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들이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지더라17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호하여 보라 하여 점호한즉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가 없어졌더라18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니라19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20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들이 각각 칼로 자기의 동무들을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21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합하였고22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23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24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음식물을 맛보지 못하고25그들이 다 수풀에 들어간즉 땅에 꿀이 있더라26백성이 수풀로 들어갈 때에 꿀이 흐르는 것을 보고도 그들이 맹세를 두려워하여 손을 그 입에 대는 자가 없었으나27요나단은 그의 아버지가 백성에게 맹세하여 명령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벌집의 꿀을 찍고 그의 손을 돌려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28그 때에 백성 중 한 사람이 말하여 이르되 당신의 부친이 백성에게 맹세하여 엄히 말씀하시기를 오늘 음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 하니29요나단이 이르되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아졌거든30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라면 블레셋 사람을 살륙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31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32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째 먹었더니33무리가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째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믿음 없이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 하고34또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여기서 잡아 먹되 피째로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하라 하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35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36사울이 이르되 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 무리가 이르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할 때에 제사장이 이르되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하매37사울이 하나님께 묻자오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되 그 날에 대답하지 아니하시는지라38사울이 이르되 너희 군대의 지휘관들아 다 이리로 오라 오늘 이 죄가 누구에게 있나 알아보자39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죽으리라 하되 모든 백성 중 한 사람도 대답하지 아니하매40이에 그가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너희는 저쪽에 있으라 나와 내 아들 요나단은 이쪽에 있으리라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하니라41이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되 원하건대 실상을 보이소서 하였더니 요나단과 사울이 뽑히고 백성은 면한지라42사울이 이르되 나와 내 아들 요나단 사이에 뽑으라 하였더니 요나단이 뽑히니라43사울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가 행한 것을 내게 말하라 요나단이 말하여 이르되 내가 다만 내 손에 가진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오나 내가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44사울이 이르되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니45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46사울이 블레셋 사람들 추격하기를 그치고 올라가매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47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겼고48용감하게 아말렉 사람들을 치고 이스라엘을 그 약탈하는 자들의 손에서 건졌더라49사울의 아들은 요나단과 이스위와 말기수아요 그의 두 딸의 이름은 이러하니 맏딸의 이름은 메랍이요 작은 딸의 이름은 미갈이며50사울의 아내의 이름은 아히노암이니 아히마아스의 딸이요 그의 군사령관의 이름은 아브넬이니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며51사울의 아버지는 기스요 아브넬의 아버지는 넬이니 아비엘의 아들이었더라52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 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불러모았더라



설교문


1. 양날의 검 - 대중의 지지


한껏 기대를 받으며 등장한 사람이 점점 어둡고 소름끼치는 인물로 변해 갑니다. 이를 지켜보는 것은 그 개인으로나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게나 모두 슬픈 일입니다. 대한민국 사회나 정치판이 그렇습니다. 사회현상이라 여길 정도로 때마다 열광적 지지를 받으며 한 인물,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곧 불과 물의 시험을 거치며 속절없이 나가 떨어져 갔습니다.


며칠 전 우리나라 양대정당 중의 하나에 36살의 청년 정치인이 당대표로 당선되며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정당을 지지하든, 하지 않든 간에 이 일을 계기로 대한민국을 새롭게 하는 정당으로 탈바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동일할 겁니다. 바라기는 대중적 지지를 얻으며 변화와 쇄신을 일구어 갔으면 합니다.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정치인에게 더할 나위없는 큰 힘이요, 자산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양날의 검이 있습니다. 그 지지 때문에 진짜 꼭 필요한 개혁과 체질개선을 하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지지해 준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입맛을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멀지 않은 미얀마의 아웅산 수찌가 그 대표적 예입니다.


1990년부터 2010년 사이 20년 동안 군부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던 미얀마의 아웅산 수찌는 전세계 사람들의 응원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녀에겐 ‘노벨평화상’, ‘아시아 인권의 챔피언’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습니다. 또한 그녀는 탄압받는 민주주의의 상징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인도에서 성장 후 옥스포드를 졸업하고 UN에서 활약했던 수찌는 서방세계와 완벽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세계적 정치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0년 가택연금에서 풀려나 2016년 수찌가 주도하던 민족민주연합(NLD)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서 실질적으로 권력의 중심에 섰습니다. 하지만, 2017년부터 소수민족 로힝야 족에 대한 군부의 학살과 폭행에 침묵하고 방관하면서 세계인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2019년 12월 아웅산 수찌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로힝야 학살에 대해 국가 미얀마는 책임이 없다는 연설을 했습니다. 한 마디로 체제 옹호, 군부 옹호, 나라 옹호 연설이 그 핵심이었습니다. 세계 언론은 "수찌가 세계 인권의 챔피언 타이틀을 버리고, 미얀마 1국의 지도자로 돌아갔다"는 악평을 쏟아냈습니다. 노벨상 취소청원도 이어졌습니다.


당시, 그 연설을 마치고 미얀마로 복귀한 아웅산 수찌에 대한 미얀마 국민들의 환영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극소수 언론을 빼고는, 미얀마의 거의 모든 언론이 아웅산 수찌를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하기에 바빴습니다. 대중의 전폭적 지지를 받던 수찌는 이렇게 그 지지 때문에 망가져 갔습니다. 그리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가 옹호하고, 두둔했던 군부에 의해 그녀와 미얀마는 현재 아프고 슬픈 역사의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2. 슬픈 왕의 서막


설교 첫머리에 정치 지도자를 언급한 것은 본문에서 만나는 사울왕의 이야기와 유사한 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이 된 사울은 동쪽의 적 암몬(나하스 왕)을 격파함으로써 대중적 지지를 얻고 왕위에 앉았습니다(삼상 11장). 이후 서쪽의 적 블레셋과의 전투를 준비함으로써 답보상태였던 지지율을 끌어 올리려 했습니다. 이를 위해 전쟁에서 승리가 필요했습니다. 모든 관심과 시간을 그것을 위해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내면을 돌보고, 세워갈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외부적인 성과를 얻기에 급급했습니다. 그 결과 대중의 지지를 업고 화려하게 등장했으나, 초라하고 비참하게 종말을 맞이한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슬픈 역사의 서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이러했습니다.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게바에 진치고 있던 블레셋 수비대를 습격했습니다. 요나단의 이 도발은 마치 벌집통에 돌을 던진 것과 같이 블레셋을 요동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은 객관적으로 블레셋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 보호와 지킴이 없다면 당장이라도 블레셋의 식민지가 되어도 이상치 않을 정도로 전력은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요나단의 기습에 블레셋이 흥분해서 일어나자 사울은 즉시 나팔을 불어 예비군 소집명령을 내렸습니다. 백성들이 길갈로 모여 사울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병거가 삼만, 마병이 육천, 보병의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블레셋 군사정보를 듣자 백성들이 혼비백산했습니다.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웅덩이에까지 숨어들어갔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예 요단강을 건너 도주할 정도로 이스라엘은 온통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뭔가 좀 해보려 하는데, 시작하기도 전에 겁부터 내고 줄행랑을 치는 백성들을 바라보는 사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얼마나 답답했고, 또 얼마나 초조했겠습니까!


위기는 혼자서 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격려하고 힘을 더해 주기 위해 오겠다고 약속했던 사무엘마저 오지 않았습니다. 언약했던 7일 동안 그 혼란을 겪으며 손꼽아 기다렸는데, 늦는다는 말도 없이 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나마 사울 곁에 붙어있던 백성들마저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사울은 마음이 더더욱 급해졌습니다. 떠났던 백성들 입장도 한편 이해가 되었습니다. 1주일을 기다려도 이스라엘은 전쟁할 태세나 의도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반면 블레셋은 수많은 병력과 신무기를 갖고 곧 쳐들어오려고 하니 전쟁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겁니다.


이에 사울은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그것은 준비해둔 제물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림으로써 흩어지는 백성을 모으고 규합할 작정이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이유가 타당해 보였습니다. 불가피했고, 명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나타난 사무엘이 사울을 향해 망령된 행동이라며 무서운 말로 꾸짖었습니다. 왕위는 멀지않아 끝날 것이며, 당연히 세습될 것이라 여겼던 왕위는 다른 사람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니, 늦게 온 사람이 더 화를 냅니다. 기껏 나라를 구하려고 혼신의 힘을 쓰고 있는데, 격려는 못해 줄 망정 이게 뭐란 말입니까? 우리가 봐도 사무엘의 태도가 이해가 안 갑니다. 되려 사울이 안쓰럽고 마음이 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왜 사무엘은 약속한 7일이 다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던 걸까요?”


이것에 대한 힌트가 13절, 14절에 반복해서 나오는 사무엘의 말 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명령하신 바가 무엇일까요? “제사는 네가 드리지 말고, 사무엘이 드리게 하라”는 단순한 명령이었을까요? … 아닙니다. 훗날 사울을 이어 왕이 된 다윗도 하나님께 직접 제사 드린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것을 문제 삼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백성의 왕이 된 사울이 하나님을 그의 왕으로 삼고 있는냐? 아니냐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사울의 맘 속에 누가 왕인지를 확인하고 싶으셨던 겁니다. 그래서 약속했던 1주일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던 겁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기다리고 계셨던 겁니다.

그런데, 만약 사울이 하나님을 진정 자신의 왕으로 삼고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블레셋이 쳐들어 오고, 백성들이 흩어질 때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 어떻게든 흩어지는 백성들을 막고, 힘을 규합하려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을 부적 삼지 않았을 겁니다. 비록 약속했던 사무엘마저 오지 않았지만, 그는 더더욱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을 겁니다. 역대하 20:12에 기록되어 있는 북이스라엘 왕 여호사밧처럼 이렇게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섰을 겁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그때 하나님은 야하시엘을 통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사울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을 겁니다.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대하 20:14)


때로 하나님은 사울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 삶에서도 극한까지 몰아가십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그 상황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있는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지 확인하시기 위함입니다. 혹여 우리 중 사울 같이 끝자락에 몰려 계신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길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명령하신 바’를 지키는 길이겠습니까?




3. 왕같았던 요나단


지난 금요일 평창에 계시는 이원태 목사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사무엘서 설교를 잘 듣고 있다는 격려의 말씀과 아울러 성경 속 가장 좋아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 요나단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버지 사울과는 참 다른 아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다윗보다도 훨씬 괜찮은 인물. 사울을 이어 요나단이 왕이 되지 않고, 다윗이 왕이 되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요나단은 정말 좋은 신앙인이고, 용사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목사님의 말씀처럼 요나단은 훗날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그렇게 전사한 것이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의 진면목 중의 몇 가지가 사울의 실수 뒤에 이어 나옵니다. 아버지 사울왕이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책망를 듣고 주춤하며 이도저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병력은 기껏 600여명만 남았고, 무기라고 할만한 칼과 창은 사울과 요나단만 갖고 있었습니다(삼상 13:22). 상황이 이러한데다 사무엘마저 가버렸으니 무슨 의욕이 일어났겠습니까!


이런 와중에 요나단이 자신의 무기를 들고 따르는 병사와 함께 블레셋 진영으로 몰래 침투해 갔습니다. 날카로운 송곳니처럼 뾰족한 바위였기에 차마 그쪽으로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절벽을 기어올라 기습공격했습니다. 이 무모한 전투를 앞두고 요나단이 걱정하는 부하에게 했던 말은 수천년을 이어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힘과 용기가 되었습니다. 삼상 14:6입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것은 병거나 마병의 힘에 있지 않았고, 병력의 수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 믿음으로 요나단은 블레셋 진영을 휘저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그 역사의 도구가 되기로 한 것입니다. 그때 마침 지진이 난 듯 땅이 진동했습니다(삼상 14:15). 하나님께서 당신을 의지하고 적진 한 가운데서 분투하는 요나단을 위해 일하신 겁니다.



4. 영웅이 되고팠던 종교적 왕 사울


블레셋 진영에 갑자기 공포가 휘몰아쳤습니다. 그 공포의 시작은 요나단 한 사람의 무모할 정도로 하나님을 신뢰한 믿음의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갑자기 요란스러운 블레셋 진영을 멀리서 지켜보던 파수꾼의 보고를 받은 사울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당황했습니다. 곧 이스라엘 영내 인원점검을 해 보자 요나단과 그의 수종이 적진에서 활약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용기를 얻었는지 갑자기 사울이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그가 어떤 미신을 믿고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요나단의 믿음과는 확연히 다른 비상식적인 명령이었습니다. 전쟁을 앞둔 병사들에게 금식이라니, 이것은 마치 수험생에게 공부하지 말고 금식기도하라는 것과 유사합니다.


사울의 금식명령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포기한 채 금식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구슬리려는 태도와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매우 종교적이었으나 실상은 신앙과 거리가 먼 행위였습니다. 사울의 이런 종교적 행위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앞서 그는 제사장 아히야에게 요청해 ‘여호와의 궤’(70인역 헬라어 원문은 ‘에봇’으로 표기하고 있음, 많은 학자들도 법궤는 기랏여아림에 있었고, 여기서 언급된 것은 제사장의 옷 ‘에봇’이라고 주장)를 가져오게 했습니다(18절).


사울은 그의 금식명령으로 주리고 지쳐 있었던 군사들이 노략한 짐승을 도살하고 피채 고기를 먹자 유대정결법을 들어 금했습니다(삼상 14:34). 나아가 하나님 앞에 처음으로 제단을 쌓았습니다(삼상 14:35). 삼상 14:36-42에 보면, 제사장의 옷 에봇에 있는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기도 후 제비뽑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금식명령을 어긴 자기 아들 요나단을 실제 처형하려고 할 정도로 엄혹했습니다.


매우 종교적으로 보이고, 솔선수범하는 것 같은 행위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울의 행위는 어떻게 해서든 승리를 쟁취해서 대중의 찬사를 얻고 싶었던 마음의 발로였습니다. 별다른 배경이 없는 작은 가문에서 왕이 되었던 그가 대중의 영웅이 되고자 했던 발버둥이었습니다.


사울의 행위를 이렇게 분석하다 보니, 매우 닮은 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는 2010년 해외 한인교회에서 담임을 마치고 서울에 있는 한 교회의 전임목사로 부임했던 사람입니다. 그 교회는 당시 자타가 공인하던 탁월한 담임목사 하에 30여명의 전임목사들과 주일 출석 7천여명 교인이 있던 교회였습니다. 그곳에 부임하자 마자 그 사람은 1,500명 되던 20대 청년부에 이어 1,200명 되던 30대 청년부와 교회학교를 총괄하는 팀장이 되었습니다. 이 일이 다른 목사들에게 엄청 시기가 되었습니다. 1년 쯤 지난 뒤 당사자들에게 들은 바로는 그가 부임하기 전부터 가시 철조망을 쳐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니 그곳에서 그의 삶이 순탄할 리가 없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 사람은 자신이 그만한 가치가 있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기도 후에 1시간 성경읽고, 1시간 운동하고, 7시에 아침회의한 뒤에 집에 가지도 않고, 교회 앞 가게에서 빵이나 찌개로 아침을 했습니다. 매일같이 밤 11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때로는 집에 갈 시간이 없어 교회 주차장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기도를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밥 한끼를 가족들과 먹지 못했습니다.


이런 속에서 병이 안나면 이상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하루에 대학응급실에 2번이나 실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은 자신이 매우 신앙적이고, 신실하게 살려는 목회자라고 위안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좋은 목사, 실력있는 사람으로 남들에게 인정받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을 속이고, 남들을 속이는 종교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들으시면서 눈치 채신 분들이 계시겠지만, 바로 저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지나온 제 과거의 삶이 이렇게 내보이고, 인정받으려 했던 종교적 삶이었기에 사울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매우 안쓰럽기 그지 없습니다. 사울도 저도 그렇게 살 필요가 없었습니다. 껍데기, 겉치장, 남들의 평가에 목말라 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승리, 왕의 자리에 연연한 나머지 공허한 것을 좇았습니다. 건강을 잃건, 다른 이를 희생시키든 간에 어떻게 해서든 대중의 인정을 받고 영웅이 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사울은 그렇게 영웅이 되어 가면서 점점 파멸해 갔습니다.



5. 종교적 자리에서 내려와 신앙의 사람으로


삼상 14:47-51은 겉으로 보기에 탁월했던 사울 왕의 전과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족과 측근들의 명단까지 소개하며 사울이 얼마나 당시 백성들의 영웅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삼상 14:52은 이런 문장으로 14장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 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불러모았더라.


사울은 그가 사는 날 동안에 외부의 적과 싸우는데 그의 모든 역량을 다 쏟았습니다. 열심히 싸웠습니다. 이기기 위해 조금이라도 힘 쎈 사람, 용감한 사람이 있으면 그의 옆에 불러 모았습니다. 다른 말로 이것을 표현해 보면, ‘사울 주변에는 싸움하는 사람 밖에 없었다’가 됩니다.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던 시대, 사사에서 왕정으로 넘어가던 과도기여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어쩔 수 없는 시대에도 그는 더 신앙적인 것, 영적인 것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애로 충만한 나머지 점점 더 외부성과에 목말라 했습니다. 내면은 팽개친 채 더더욱 종교적이 되어 갔습니다. 마치 자신이 세상에서 절대 주권을 소유한 사람인 것처럼 현안들을 살피다 정작 자신이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고 있는지 살피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속적 왕으로 비참한 종말을 맞고 말았습니다.


사울의 이야기를 이렇게 살펴보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신앙을 내면적으로 받아 들이며 왕이신 하나님 속으로 더 들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울처럼 점점 더 종교적이 되고, 인기와 욕망에 편승해 가고 있습니까? 사울과 가룟유다는 천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매우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의 소명을 져버리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의 삶은 하나의 선택으로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 또 하나의 선택이 연결된 선이 되고, 그 선이 방향성을 가질 때 그 정해진 길로 마치게 됩니다. 현재 우리는 어떤 선택으로, 어떤 선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사울의 망가져 가는 삶을 보며 이야기하는 것이 때로 아려옵니다. 그의 모습과 우리가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찬사와 지지에 목말라 정작 돌아보고 돌봐야 할 우리의 내면을 팽개치지 않도록 도와 주옵소서. 영웅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벗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소명에 집중하며 오늘도 한걸음 한걸음 신실하게 내딛기를 원합니다. “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라는 마지막 문장이 큰 무게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사는 날 동안에 무엇이 있든지간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하나님 중심으로 더 다가가는 선택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인생의 방향이 하나님께로 맞춰짐으로써 우리 생의 과정도, 그 결과도 아름답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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