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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움오름교회

2021.03.28 움오름 주일 설교 -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4-46)

최종 수정일: 2021년 4월 5일










누가복음 23:44~46

44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45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설교문


사순절 6째 주입니다. 이번 주간은 종려주일이며 고난주간입니다. 이번 주간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담당하여 주십니다. 한 주간 동안 예수님의 고난이 나의 죄 때문인 것을 알고 고난받으시는 예수님과 함께 머문다면 영적으로 유익할 것입니다. 주님 수난의 말씀을 묵상하며, 금식, 회개 기도하고 또는 평소 내가 좋아해서 습관처럼 하는 것들 중에서 한, 두 가지를 정하여 절제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만큼 우리는 주님의 부활의 기쁨과 영광에도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 전체는 하나의 원리를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인간의 죄는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큰 자비하심으로 그 심판을 언제나 죄인에게서 비켜나가 다른 곳에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 값을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셨고 땅을 저주하셨습니다.

창3:17.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하나님께서 저주를 땅에 떨어지게 하셔서 아담과 하와를 보호해주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의 죄를 희생제물에게로 돌리셨습니다. 소와 양, 염소같은 동물의 피를 흘리고 번제로 바치게 하셔서 사람들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 그 진노를 다른 곳으로 옮기셨습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가 하나님을 거역하여 행한 모든 죄악들과 이 죄 값으로 받아야 할 하나님의 심판을 자신에게 쏟아붓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인류를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서 보호하셨습니다. 그리고 죄가 용서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값으로 하나님께 십자가에서 육체의 고통뿐만 아니라 어둠에 던져져 그 영혼까지 버림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끊어진 지옥을 경험하시므로 우리를 그 영원한 어둠 가운데서 건져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육체까지 깊은 목마름을 느끼셨습니다. “내가 목마르다”(요19:28) 하시며 어떤 이가 스폰지에 적셔 갈대에 꿰어 준 신포주로 입을 적시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테텔레스타이(Τετέλεσται) 다 갚았다. 다 지불했다”

“내가 이미 죄값을 다 갚았고, 영원히 갚은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지 약 6시간 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인간의 모든 죄가 처리되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 값이 하나님께 갚아졌습니다.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하나님과 인류 사이에 새로운 언약이 세워졌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누구든지 그 죄를 용서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알아야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간의 구원을 이루어 놓으셨다는 이 사실 자체 혹은 이 사실에 대한 나의 지식이 우리에게 결코 구원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선물을 강요하지는 않으십니다. 믿음으로 받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고 하여 주십니다(롬3:28, 4:5).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처리하심으로 또한 우리 사람들에게서 죽음의 가시를 빼버리셨습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로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값을 다 지불하시므로 우리의 죄로 우리를 영원한 죽음으로 몰아넣는 원수들을 결박하셨습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눈 앞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렇게 아무 힘도 없이 못 박힌 채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예수를 보라 완전한 패배자가 아닌가?” 악에 의해 선이 패배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무자비하게 부수어지는 동안 실은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뱀의 머리를 부수고 계셨던 것입니다. 희생자처럼 보이나 실은 승리자이셨습니다. 정복당하심으로서 정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싸움을 승리로 마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실 때 아버지 하나님께서 화답하셨습니다. 45절, 성소의 휘장이 한 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성소의 휘장이 찢어져 둘로 나뉘었습니다. 이 휘장은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께 소외받았음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시자 이 성소의 휘장이 단번에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는 죄의 벽이 하나님에 의해 제거되었고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그 축복 가운데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눈살을 찌푸리시며 우리 인간들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셨고 우리도 하나님의 정죄에 대한 두려움없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로 이렇게 지금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의 가치는 그것이 주는 고통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이 만들어 내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는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아버지께 버림받으시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들어갈 어둠에/ 대신 들어가셔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올 모든 자들을 위해 천국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 모든 축복과 영생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루신 이 모든 것들을 인하여 기뻐하셨습니다.

사53:10하-11상,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것이라

예수님께서는 고난받으셨나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을 인하여 영혼 깊이 만족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주실 때가 온 것을 아셨습니다. 그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 큰소리로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46절,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시고 숨지시니라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님께서는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이 최후의 기도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터져 나오는 큰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승리의 어조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더 이상 아버지께 버림받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난이 그치면 무한하신 자비로 자신을 품에 안아 주실 아버지를 바라보셨습니다. 그 아버지를 기뻐하시며 예수님은 평화롭게 고개를 떨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동굴마굿간에 태어나시고 우리의 가난과 우리의 기쁨과 고통에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셨습니다.


인간을 위한 구원의 사명을 마치시고 십자가에서 두 팔을 벌리시고 고개를 떨구신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예수님께서 벌리신 두 팔은 아주 넓습니다. 온 우주를 다 품어 안으십니다. 모든 피조물들과 모든 인류가 모두 그 안에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나에게로 오라. 누구든지 오라 내 안에서 쉬라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어있고 일그러져 있습니다. 입술은 마르고 갈라져 터지고 눈에는 고통을 참으신 눈물이 맺혔습니다. 얼굴이 온통 고통으로 일그러졌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의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사랑 때문에 고통 받으신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오직 사랑으로만 통치받으시는 예수님의 몸에서 떨어지는 그 피도 향기롭습니다. 그 피는 단 한 방울도 그저 땅에 떨어지게 할 수 없는 보혈입니다. 피 흘리시고 상하신 채 십자가에 달려 계신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완전한 사랑과 용서, 순종, 희생, 생명, 의의 참된 모습을 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동등하게 드러내시며 사랑의 본질은 보여주십니다.

롬5:8,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갈2:20,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기록하셨습니다.

우리 인간들을 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은 온 우주에서 절대적이고 유일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 주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저 하늘보다 높고 저 바다보다 깊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엡3:18-19절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가 어떠함을 깨달으라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죄를 피하고 거룩함을 추구해가고 말씀에 순종해 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가는 것에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를 또 이렇게 풀어 말씀하십니다.

벧전3:18, 그리스도께서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신 것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어 궁극적으로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는 삶입니다. 사람들은 천국하면 아름다운 보석으로 꾸며져 죽음을 모르고 행복하게 사는 곳으로 떠올립니다. 하지만 천국은 한마디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려고 사람으로 오시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기도하신대로 사랑하는 아버지 곁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대로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믿는 자들을 데리러 오실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와 그 영광 안으로 이끄시어 우리를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실 것입니다. 그 곳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성경은 명확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찾아서 함께 읽어보실까요?

계22:3-5,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천국에 가면 우리의 이마에는 나를 구원해주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새겨질 것입니다. 그 존귀하신 이름을 이마에 새기고 햇빛보다 더 밝은 하나님의 임재 빛 안에서 우리는 세세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 것입니다. 삼층천 체험을 했던 바울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롬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가 만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마련해주신 이 하늘의 삶이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상상만해도 기쁘고 감격스러우신가요? 아니면 좀 불편하고 따분하게 느껴지시나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피 흘려 주신 그리스도와의 삶이 내게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이 사랑을 더욱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천국은 아름다운 집보다 하나님과 함께 삶이니까요. 여기서는 하나님을 피할 수도 있지만 거기서는 하나님을 피할 곳이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기쁨이어야 거기서도 기쁨이 되겠지요.


우리가 천국에 가면 우리는 수많은 천군 천사와 흰 옷입은 무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는 예수님을 곧바로 알아볼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바로 알아볼 수 있을까요? 바로 그 손에 난 구멍 때문입니다. 그 몸에 입으신 상처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은 밧모섬에서 예수 그리스도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때 환상으로 하늘 보좌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계5:6, 또 내가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요한이 본 어린 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은 자신이 보는 그 분에게서 이전에 죽임 당한 것 같은 흔적을 보았습니다. 그 몸에 상처가 있었습니다. 이 상처를 본 요한은 단번에 그 분이 누구인지 알아보았습니다. 바로 우리 죄악을 위해 희생제물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요한은 일찍이 두 눈으로 그 상처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시어 자신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 친히 못 박힌 곳을 보여주셨고 그때 그는 예수님의 구멍난 손과 발, 허리를 보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놀랍게도 십자가의 상처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는 그런 것들이 사라지고 고운 몸, 영광스런 몸이었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구멍 난 손을 무엇으로 메우시지도 않으시고, 감추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에게 그 구멍난 손과 발을 보여주시며 ”내 손과 내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눅24:39)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몸 그대로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요한이 하늘 보좌에서 본 예수님 역시 그 상처를 그대로 가지고 계셨습니다. 오히려 그 상처를 여전히 영광스럽게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증거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는 그 상처가 단지 자신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셨다가 살아나셨음을 증거하는 표만이 아니셨습니다. 우리들을 사랑하시되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나타내는 사랑의 표시였습니다. 영원한 사랑의 증표이요 영원한 영광의 상처이셨습니다. 이것을 하늘 보좌에서도 간직하실만큼 우리를 위한 그 죽음과 상처를 영광스럽게 여기시고 계셨습니다. 물론 하늘 보좌에서 예수님께서 지니신 그 상처는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계실 때 그 육체에 받으셨던 흉한 모습의 상처 그대로는 아닐 것입니다. 늙고 병들고 죽음이 있는 인간의 육체와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의 몸은 다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모습이든지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영원히 그 몸에 우리를 위해 죽임당하셨던 그 흔적을 영광스럽게 지니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 십자가의 상처를 그토록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이 너무 놀랍고 감동스럽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그 상처난 손으로 우리를 안아주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구멍난 손으로 우리를 아버지 집에서 맞아주시려고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갔을 때 그 손으로 우리를 안아주실 것입니다. 사랑의 상처가 새겨진 두 손을 활짝 벌리셔서 우리를 환영해 주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의 손에 난 못 자국을 두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손을 바라보며 깊이 허리숙여 경배드릴 것입니다. 감사의 눈물 가득한 눈으로 다시는 헤어짐이 없는 인사를 올릴 것입니다. 우리와의 이 아름다운 만남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영혼육을 다하여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46절, 아버지 나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예수님의 기도를 이어받은 이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이셨던 스데반 집사님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예수님을 전한다는 이유로 대제사장 무리들에게 잡혀서 돌에 맞아 죽는 투석처형을 당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돌들을 가운데서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성령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때 그의 눈이 열리며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 열린 하늘에서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저함없이 기쁨과 겸손함으로 예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행7:59,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스데반 집사님은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을 의탁드리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내가 비록 예수님을 전한다는 이유로 처형당하지만 내가 구주로 믿는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고귀한 피 값으로 나를 사신 내 영혼의 주인이시다 믿었습니다. 이런 스데반을 바라보시던 예수님은 그의 영혼을 받아주시기 위해서 그 보좌에서 일어서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유다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모든 것을 함께 했고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언제나 그도 있었습니다. 그는 누가 봐도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팔고 말았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순수하게 따르는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점점 예수님에게서 예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원하게 되었습니다. 돈과 같은 세상적인 것을 더 원했습니다. 사탄은 이런 마음을 놓치지 않고 그 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결국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유다는 죽음의 자리에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오소서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유다를 교훈 삼아야 합니다. 유다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대하여 예수님보다 다른 것을 구하는데 더 관심이 있으면 우리도 유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이런 연약함을 잘 아시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깨어 있으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어떤 희생을 치루셨는가? 과연 나를 어떤 곳에서 건져주셨는가? 이 사실들만 우리가 제대로 깨닫는다면 우리는 예수님만 사랑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시게 될 그 날을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살아왔던 모든 사람이 그 아들의 영광을 보게 될 그 순간을 향해 역사를 움직여 나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의 끝날과 영광스런 그리스도인들의 미래를 알고 이것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에게 마련해주신 은혜요, 우리가 아무 공로없이 이것을 받았다는 것을 더욱 깨닫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만을 줄기차게 사랑하고 원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맡겨진 사명 잘 감당하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사랑의 상처난 손으로 나를 맞아주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도 예수님과 스데반의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주 예수여 나의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우리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삶으로 이끌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삶의 끝자리에서 우리와 같은 죄인도 예수님의 최후의 기도를 드릴 수 있게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토록 찬양합시다. 아멘.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과 구원이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희를 사랑으로 지으시고 온갖 은혜를 베풀어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것으로 돌려드렸습니다. 이런 죄인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가 받을 모든 심판을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립니다.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주심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보혈이 헛되게 않게 하옵소서. 머릿속에 우리 각사람의 마음에 좌정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로 그 예수님의 사랑의 깊이 넓이와 높이를 더욱 깨달아가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도 오직 예수님만 사랑하는 그 기쁨의 삶으로만 살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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