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오름교회<默言의 날> 고진하하루종일 입을 封하기로 한 날, 마당귀에 엎어져 있는 빈 항아리들을 보았다. 쌀을 넣었던 항아리, 겨를 담았던 항아리, 된장을 익히던 항아리, 술을 빚었던 항아리들. 하지만 지금은 속엣것들을 말끔히 비워내고 거꾸로 엎어져 있다. 시끄러운 세상을...
움오름교회<꿈꾸는 겨울> 박이도겨울은 침묵한다 땅 속에 씨앗을 묻어두고 깊은 잠에 빠진다 풍경으로 날리는 눈발의 무게만큼 바람을 놓아준다 아, 겨울은 심심할까 얼어붙은 시간 저녁을 나는 기러기떼 아무도 말벗이 없다 눈발이 녹아 땅 속의 씨앗 소중한 생명이 솟아날 때까지는...
움오름교회<다시 대림절에> 이해인때가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밝고 둥근 해님처럼 당신은 그렇게 오시렵니까 기다림 밖엔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이들의 마음에 당신은 조용히 사랑의 태양으로 뜨시렵니까 기다릴 줄 몰라 기쁨을 잃어버렸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며 이제 우리는 기다림의...
움오름교회<저울에게 듣다> 문동만아버진 저울질 하나는 끝내줬다 파단 마늘단, 어머니 무르팍에서 꼬인 모시꾸미도 오차 없이 달아내셨다 저울질 하나로 품삯을 벌어오던 짧은 날도 있었다 대와 눈금이 맨질맨질해진 낡은 저울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정확히 볼 수 있었던 건 그 눈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