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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움오름교회

“십자가와 걸레”

-채희동


임신 두 달째 접어들어 입덧이 심한 아내를 위해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밥도 지으면서 나는 걸레와 많이 친해졌다. 걸레는 자신의 몸으로 더럽고 먼지 낀 곳을 닦고 닦아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만약에 이 세상에 걸레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은 온통 오염덩어리요, 시궁창보다 더 더러워서 살기 힘든 곳이 될 것이다. 거리에 환경미화원이 없다면 거리는 오물투성이일 것이요, 집에서 걸레를 들고 청소하는 이가 없다면 집안은 난장판이 될 것이다. 오염된 공기, 오염된 물을 정화해주는 자연이 없다면 사람은 한순간도 살 수가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이 이나마 살 만한 것은 이처럼 소리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의 몸으로 걸레의 삶을 살아가는 생명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걸레를 바라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십자가였다. 십자가 역시 누군가가 짊어져야 십자가이지, 짊어지지 않는 십자가는 나무토막에 불과하다. 그렇구나. 십자가야말로 이 세상의 걸레이구나. 예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셨기에 예수는 우리의 주님이 되셨고, 그 십자가가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너무 추상적으로, 혹은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만 생각한다. 십자가는 문자 속에, 신학 속에, 교리 속에 있지 않고 우리의 삶 속에 있어 우리가 언제든지 손에 쥐고 닦아야 하는 걸레인지도 모른다.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다 바쳐 짊어지고 세상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신 십자가, 그것은 바로 오늘 내 손에 들려진 걸레이다. 걸레가 자기 몸을 희생하고 바치고 헌신하며 더러운 곳을 닦아내고 깨끗하게 아름답게 하는 것처럼, 십자가가 의미하는 것 또한 자기희생, 자기 헌신, 자기 내어놓음, 자기 비움, 자기 나눔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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