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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움오름교회

사순절 26일 움오름 묵상

최종 수정일: 2019년 4월 22일


묵상의 말씀
  • 막 4: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 막 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 막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 막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 막 4: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성경 속으로


저물어 가는 석양이 갈릴리 호수 위에 여운을 드리웁니다. 일렁이는 잔물결 위엔 빈 하늘을 돌아 지중해 속으로 들어가는 태양의 부서러기가 밤 하늘의 별처럼 반짝입니다. 한 날의 고단함이 평화로운 저녁에 기대어 안식을 구할 때 예수님은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십니다.


주님을 태우고 다른 배들과 더불어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돌변했습니다. 갑자기 몰려온 먹구름에 언제 평화로웠느냐고 항의하듯 커다란 광풍이 잔잔한 호수를 할켰습니다. 이리저리 요동치는 배 위로 부서지는 포말, 삼킬 듯이 휘몰아 치는 거대한 물결, 벌써 배 안엔 물이 흔근 담겼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회귀한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요? 지금껏 갈릴리를 터전 삼아 배를 타고 그물을 걷으며 살았지만, 이런 괴이한 현상은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의 폭풍은 바로 그런 폭풍이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잔뼈가 굵은 제자들마저도 옴싹달싹 못하게 할 만큼 엄청난 파도 앞에서 그들은 다급하게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생전 보도 듣도 못한 폭풍도 대단한데, 이런 폭풍 속에서 어떻게 저리 편하게 주무실 수 있을까요? 아마도 예수님을 깨우던 제자들은 그 마저도 신기하고 의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가장 압도되어 말문이 막힌 것은 잠에서 깨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 뒤에 일어난 현상이었습니다. 마치 바람과 바다가 인격을 가진 대상인 것처럼 꾸짖으셨고, 명하신 예수님…

  • “잠잠하라 고요하라”(39절)


단 한 순간에 바다와 바람은 잠잠해졌습니다. 이걸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지 그저 어안이 벙벙햇습니다. 여전히 두려워하던(폭풍과는 또 다른 두려움) 제자들을 향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40절)


이런 상황에서 무서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되려 이상한 일 아닌가요?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믿음의 문제와 연결이 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이 부분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자들 속에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음을 탓하시는 말씀이었다고.


이 사건을 렘브란트는 어떻게 묵상하고 바라보았을까요?



그림 속으로


1990년 3월 18일 밤, 성 패트릭 축제로 미국 보스턴이 어수선해진 틈을 타 경찰로 위장한 도둑들이 펜웨이에 있는 이사벨라 스튜어드 가드너 박물관에 침입했습니다. 도둑들은 경비원 둘을 결박한 다음,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베르메르의 <합주>와 렘브란트가 남긴 유일한 바다 풍경화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를 비롯한 작품 13점을 훔쳐갔습니다.

렘브란트 당시 네덜란드 화가들은 바다 풍경 그리기를 즐겨했습니다. 그만큼 고객들의 선호와 시장성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화가로 등용하기를 원하는 문하생을 비롯해 대부분의 화가들이 하나같이 바다 풍경을 그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 이전까지 혹은 이후에도 렘브란트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그림을 그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작품은 매우 예외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동시에 도난 당하여 현재 그 어떤 박물관에서도 실물을 만날 수 없으니 더 특별한 그림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렘브란트는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남겼을까요? … 1630년 아버지를 여의고 슬픈 마음을 갖고 살던 렘브란트는 1631년 고향 레이든을 떠나 암스텔담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의 기회와 활동이 그에겐 분명 활력이요, 희망이었을 겁니다. 반면, 고향 소도시와는 전혀 다른 규모와 분위기의 국제도시 암스텔담에 사는 동안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질감과 고달픔이 내면의 풍랑으로 일어난 것은 아닐까요? 왜냐하면, 이 그림은 그가 암스텔담으로 이주한 뒤 그린 첫 번째 유화요, 그가 남긴 유일한 바다 정경이 담긴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살펴본 막 4:37-41의 이야기는 풍랑이는 갈릴리 바다(호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오가는 대화는 매우 건조한 느낌이 듭니다.

  •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38절)

  • “잠잠하라, 고요하라”(39절)

  •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40절)

  •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41절)


화가는 이 메마른 대화에 그림으로 표정을 그리고 색을 입힘으로써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한 척의 배가 매우 위태로운 모습으로 파도 위에 올라 있습니다. 세찬 파도는 선체에 부딪혀 하얀 포말을 만들어 냅니다. 45도 정도 들려있는 뱃머리는 이미 배가 통제불능의 상태일 뿐 아니라, 곧 뒤집어질 수 있음을 예견하는 것 같습니다.


그림은 세로로 두 부분으로 나눠져 왼쪽은 빛에, 오른쪽은 어둠에 둘러 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빛 속엔 온갖 공포와 고통을 표현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어둠 속에는 웬지모를 고요함과 평안함이 내재해 있습니다. 거센 풍랑을 앞두고 일반적으로 돛을 거두어 최대한 바람의 흔들림을 줄이고자 하는데, 그림 속엔 그럴 여가도 없이 풍랑을 맞닥뜨린 것 같습니다. 채 거두지 못한 돛은 찢어져 있고, 돛을 거두기 위한 줄은 끊어진 상태로 허공 속에서 폭풍보다 더 요동치고 있습니다.


그림 속에는 예수님을 제외한 14명의 승선 인원이 등장합니다. 왼쪽 뱃머리에 있는 5명은 자신들에게 닥친 풍랑에 혼신의 힘을 다해 해결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둘은 가녀린 줄로 돛을 붙잡고 사투를 벌이고 있고, 셋은 돛대 주위에서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노고와 애씀은 미친듯이 날뛰는 거대한 풍랑 앞에서 속수무책처럼 보입니다.


반면, 그림의 오른쪽 아래 선미 부분은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지만, 왼편 뱃머리와 달리 이상한 고요함에 둘려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배의 제일 하단의 한 사람은 멀미로 인해 배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음식물들을 토설하고 있습니다. 화면 맨 위쪽 사람은 손을 모아 기도하는 것 같지만, 그의 시선은 줄곧 파도에 고정된 채 겁에 질려 있습니다. 그 아래 두 사람은 주무시던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며 왜 주무시기만 하느냐고 항의하고 있습니다. 같은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군상이 참 다양하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한 사람은 배의 중간 선실 속에서 어둠을 은폐물 삼아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요나처럼 방관하고 있습니다.


배의 제일 후미에서는 한 사람이 다리에 힘을 잔뜩 준 채 힘겹게 키를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키를 쥐고는 있으나,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듯 고개를 떨구며 예수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풍랑을 이기는 힘은 노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다는 것을 고백하듯이, 또는 체념하듯이 보입니다. 바람에 휘날리는 그의 하얀 수염이 그것을 깨닫기 전까지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던가를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행동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주님을 향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유일하게 기도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선미 맨 윗쪽 사람 역시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주님이 아니라, 파도(상황)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이 사람은 뒤돌아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기도가 누구를 향한 무엇인지를 아는 유일한 사람같이 보입니다.


이런 인물들 속에서 렘브란트는 아주 흥미로운 장치 하나를 그림 속에 새겨 두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윌리를 찾아라’는 시리즈처럼 본인의 모습을 그려놓은 것입니다. 예수님 이외 14인물들 중에 어떤 이가 렘브란트인 것 같습니까?


선미 왼편에 푸른 빛깔의 옷을 입고 오른손으로 돛 줄을 잡고, 왼손으로는 모자를 쥔채 겨우 버티고 있는 사람이 보이십니까? 그가 바로 렘브란트입니다. 목숨이 위태한 상황에서도 모자를 지키겠다고 한 손으로 모자를 누르고 있는 어리석은 사내를 화가는 자신으로 형상화했습니다. 생의 모든 근본이 흔들리고,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는데도 무엇이 중한지 모른 채 엉뚱하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그의 삶을 마치 고백이라도 하듯이 새겨놓았습니다.


그런데, 렘브란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림을 보는 관객을 향해 유일하게 응시하는 인물로 그 자신을 설정해 두었습니다. 그는 관객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어리석은 그와 눈이 마주치는 우리 역시 그와 별 차이없는 어리석은 사람임을 말해 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주님은 마치 이 일에 왜 이리도 난리를 치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당신을 깨우던 제자를 응시하십니다. 주님의 오른 손은 주무실 때의 모습처럼 여전히 품 안에 들어 있습니다. 이는 더 주무시겠다는 의사표현, 그리고 어쩌면 당장 깨어나야 할 이는 주님이 아니라, 당신을 깨우던 제자들이라는 의미 아닐까요?



삶 속으로


렘브란트는 풍랑을 만나 공포에 사로잡힌 제자들의 모습을 다양한 표정과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원근화법 없이도 색감과 명암과 다양한 형태의 배치를 통해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공간의 깊이를 그려냈습니다. 이 한폭의 그림을 통해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예수천국, 불신지옥’, ‘예수믿고 복 받으세요’ … 이 땅에 기독교 복음이 전해질 때 한동안 가장 많이 들려진 전도구호였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목표를 온통 죽음 이후의 천국과 지옥에 초점을 맞춘 채 살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동시에 현세의 물질적 복도 누리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만 믿으면 모든 일이 ‘만사형통’, 잘 되리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그 밤에 풍랑을 만난 근본적인 이유가 예수님이 먼저 건너자고 하셔서 나선 길이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믿음과 순명의 길이란? 현세적인 복이 아닌 폭풍을 마주하는 것임을 발견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은 되려 폭풍 속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생사를 위협하는 그런 폭풍이 반가운 사람이 어디 있고, 즐기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주님이 가자고 하시기에, 그 주님이 누구이신지 알기에 함께 배에 오르는 것, 바로 그것이 믿음 아닐까요?


그렇지만, 우리 중 몇 사람이 이런 당당한 믿음으로 폭풍 앞에 늘 설 수 있을까요? 큰 풍랑 앞에서 어떻게 하다보니 한 두번은 버틸지 몰라도 계속된 폭풍 앞에선 별 차이 없지 않겠습니까? 마음으로야 14명 중 유일하게 주님을 향해 기도하는 그 사람처럼 살고 싶지만, 생각처럼 생의 항해는 그렇게 녹녹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의 폭풍을 만날 때마다 우리 곁에 계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아갑니다.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운명, 그 유한성 앞에서 어떻게 이 삶을 마주할 것인지를 되묻습니다.


그리하여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살지 말라고 우리 자신을 흔들어 깨웁니다. 잠자는 바알을 깨우기 위해 목이 터져라 부르짖으며 온종일 뛰고 구르며 몸을 상하게 하던 어리석은 경건 대신 우리 자신을 흔듭니다. 메말라 굳어진 땅의 고랑을 파고 물을 묻습니다. 버려진 돌을 주워 재단을 쌓습니다. 이 땅의 주인, 생명의 주관자가 누구이신지를 알아가기에 가장 무익해 보이는 기도에 마음을 둡니다.


‘주무시는 것 같지만, 늘 깨어계신 주님, … 깨어있는 듯하나 늘 잠들어 있던 나…’


자신이 남긴 유일한 바다 풍경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 속에서 화자가 된 렘브란트와 시선이 마주 친 사순절 아침, 화들짝 놀란 가슴으로 써 내려간 단상…


  • 너를 지키시는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 121:4)



소의 걸음




<렘브란트, 갈릴리 바다 폭풍 가운데 있는 예수님과 제자들, 1633년작, 유화 160×127Cm, 보스톤,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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