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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움오름교회

<벽지가 벗겨진 벽은> 이성복

벽지가 벗겨진 벽은 찰과상을 입었다고 할까

여러 번 세입자가 바뀌면서 군데군데 못자국이 나고 신문지에 얻어맞은 모기의 핏자국이 가까스로 눈에 띄는 벽,

벽은 제 상처를 보여주지만 제가 가린 것은 완강히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못자국 핏자국은 제가 숨긴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치열한 알리바이다

입술과 볼때기가 뒤틀리고 눈알이 까뒤벼져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피의자처럼 벽은 노란 알전구의 강한 빛을 견디면서 여름 장마에 등창이 난 환자처럼 꺼뭇한 화농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금은 싱크대 프라이팬 근처 찌든 간장 냄새와 기름때 머금고 침묵하는 벽

아무도 철근 콘크리트의 내벽을 기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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