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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움오름교회

“두개의 심장과 자산어보”

제가 거주하는 광교산(光橋山, 582m) 기슭엔 ‘손골’이라는 작은마을이 있습니다. 그곳 제일 안쪽 골짜기엔 ‘손골성지’라는 표지판과 함께 소박한 예배당이 자리해 있습니다. 카톨릭 초기 박해시기에 교우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었던 곳입니다. 입국 선교사들의 현지적응을 돕기도 했고, 그분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해 주던 피정지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적한 산골마을 손골교우촌도 병인년(1866년)의 박해를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손골에서 생활했던 프랑스 선교사 도리 신부가 1866년 2월 27일 체포되어 3월 7일 서울 새남터(현재 한강철교 옆 이촌동)에서 순교했습니다. 오메트르 신부는 도리 신부 순교 후인 3월 11일 충남 거더리에서 자수한 후 체포되어 3월 30일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했습니다.

손골에서는 이 두 신부를 비롯해 박해시대 손골교우촌에서 살았던 순교자들과 신앙 선배들의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도리 신부의 고향인 프랑스 방데(Vendee) 지방의 딸몽(Talmont)에서는 도리 신부의 부친이 사용하던 화강암 맷돌로 똑같이 생긴 십자가를 두 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는 도리신부 고향에, 다른 하나는 한국으로 보내 왔습니다. 그 맷돌엔 도리신부 고향의 로고가 새겨 있는데, 거기엔 십자가 아래 심장 두 개가 겹쳐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조선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린 한 젊은 신부와 그 아들을 그리스도께 드린 아버지의 심장 아닐까요?

조선초기 박해의 자리를 찾다보니 상영 중인 ‘자산어보’(원래 발음 은 ‘茲山魚譜자산어보’가 아니라 ‘玆山魚譜현산어보’. ‘玆山현산’은 ' 검은 산'이라는 뜻인 黑山島의 별칭이기 때문)라는 영화가 수묵화처럼 지나갑니다.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조선의 끝 흑산도로 유배된 상태에서 연안어류관련 책을 펴낸 정약전 선생의 삶이 궁금해집니다. 검을 玄(현)을 겹친 또 다른 현(玆)은 어쩌면 배교자로 살아가던 세례명 Augustinus 정약전이 바친 또 다른 2개의 심장은 아니었을까요?


-소의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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