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2021.09.05 움오름 주일 설교 -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1장~12장)

최종 수정일: 2021년 9월 11일




삼하 11장~12장

11장

1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2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3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4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5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6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7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8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9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10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11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12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13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14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15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16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우리아를 두니17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18요압이 사람을 보내 그 전쟁의 모든 일을 다윗에게 보고할새19그 전령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전쟁의 모든 일을 네가 왕께 보고하기를 마친 후에20혹시 왕이 노하여 네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에 그처럼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그들이 성 위에서 쏠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21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쳐죽인 자가 누구냐 여인 하나가 성에서 맷돌 위짝을 그 위에 던지매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성에 가까이 갔더냐 하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22전령이 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요압이 그를 보낸 모든 일을 다윗에게 아뢰어23이르되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우세하여 우리를 향하여 들로 나오므로 우리가 그들을 쳐서 성문 어귀까지 미쳤더니24활 쏘는 자들이 성 위에서 왕의 부하들을 향하여 쏘매 왕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죽고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니25다윗이 전령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 그 성을 향하여 더욱 힘써 싸워 함락시키라 하여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하니라26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27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11장

1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2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3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4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5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6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7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8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9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10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11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12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13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14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15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16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17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18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19다윗이 그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다윗이 깨닫고 그의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하는지라20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21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22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23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24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25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26요압이 암몬 자손의 랍바를 쳐서 그 왕성을 점령하매27요압이 전령을 다윗에게 보내 이르되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읍을 쳐서 점령하였으니28이제 왕은 그 백성의 남은 군사를 모아 그 성에 맞서 진 치고 이 성읍을 쳐서 점령하소서 내가 이 성읍을 점령하면 이 성읍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 하니29다윗이 모든 군사를 모아 랍바로 가서 그 곳을 쳐서 점령하고30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박힌 왕관을 가져오니 그 중량이 금 한 달란트라 다윗이 자기의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읍에서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오고31그 안에 있는 백성들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철도끼질과 벽돌구이를 그들에게 하게 하니라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읍을 이같이 하고 다윗과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설교문


1. 악행의 준비


성경은 전기작품과 달리 어떤 사람을 영웅시 하거나 미화 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줍니다. 아무리 수많은 사람들이 흠모하고 존경하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그 결과 인간의 본성이 무엇이고, 실력이 어떻게 되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3장 10절에서 외쳤듯이, “의인은 없을 뿐 아니라, 하나도 없다”는 자기고백에 이르게 합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왕 다윗의 죄와 악행을 고발합니다. 동시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인간 실존이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야 할지를 보여줍니다.

때는 봄의 시작이었습니다. 유대 전통 월력으로는 봄을 뜻하는 아빕월은 1월이지만, 우리 월력으로는 3월 - 4월입니다. 추위와 겨울 우기가 지나고 해가 바뀌어 지면이 단단해 지면, 보통 왕들이 시무식처럼 군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가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음을 사무엘하 11장 1절이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사무엘하 10장에서 시작했던 암몬과의 전쟁에서 이겼지만, 그후 크고 작은 전투가 이어져 오던 중 해가 바뀌어 봄이 왔습니다. 당연히 다윗이 왕으로서 출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부하들만 전장으로 보내고 자신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제 웬만큼 왕권을 다졌고, 블레셋을 비롯한 주변국들도 대부분 힘으로 제압했기에 굳이 자신이 전쟁에 나가 왕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2절에 보니, 그는 낮 동안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다 저녁 무렵에서야 일어났습니다.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데, 책임의 최고 정점에 있는 사람이 가장 무책임하게 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영적타락이 옵니다. 힘들고 고생할 때는 생존 자체가 목표였으니 달리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근데, 먹고 살만 합니다. 삶은 안정되었고, 딱히 근심할 거리가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즐거움을 찾습니다. 무료함을 달래고 삶에 생기를 줄 ‘즐길꺼리’를 찾습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낮 동안의 뜨거웠던 해가 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자 다윗은 왕궁 옥상 위로 올랐습니다. 무언가 재미거리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한가로이 거닐었습니다. 그때 그의 눈에 목욕하는 여인이 들어왔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장면을 들어 헷족속(힛타이트) 집안에서 의도적으로 다윗에게 접근하려고 눈에 잘 보이는 곳에서 목욕하며 유혹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설사 그들의 주장이 사실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의 다윗이 행위가 용납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성경은 다윗의 범죄를 지적할 뿐 밧세바에 대해서는 침묵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안전과 보안상 왕이 거처하는 궁궐과 백성들이 사는 집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데, 어떻게 다윗이 집 안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볼 수 있었는지 의문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예루살렘의 지형적인 부분을 알면 쉽게 이해됩니다. 예루살렘 자체가 계곡을 사이에 둔 구릉지 형태의 산 지형에 있습니다. 그 중 다윗이 기거했던 다윗성은 시온산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주변의 집들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밧세바가 의도적으로 눈에 잘 띄는 곳에서 목욕을 했다기 보다는 다윗이 높은 왕궁 위에서 눈에 불을 켜고 내려다 보며 찾았다고 해야 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범죄는 누구도 저지를 수 있지만, 아무나 저지르는 것은 아닙니다.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죄의 손을 잡고 범죄를 저지릅니다. 목욕하는 이를 보았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다윗처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닙니다. 눈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다윗처럼 연속된 행동으로 마침내 자신과 남을 파멸로 이끄는 범죄로 이르는 이도 있습니다. 우연히 그렇게 나누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범죄도 그 마음에 준비가 된 사람만이 가능한 행위입니다. 다윗은 왕궁 옥상에 올라가기 전 침대에서 뒹굴뒹굴 하는 동안 이미 죄를 지을 준비된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외부의 적들과 싸워 이기는 동안 자신 안에 지키고 가꾸어야 할 부분에 손 놓고 있었던 겁니다.

매일매일 일터로, 학교로 나가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해야 할 업무에는 탁월하고 충실한데, 정작 돌보고 챙겨야 할 우리의 영혼과 내면에 대해서는 방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죄의 확산성


옥상 위에서 몰래 훔쳐보던 다윗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에 대해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3절에 있는 바와 같이 ‘엘리암의 딸,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라는 인적사항이 나왔습니다. 엘리암이 누구입니까? 다윗왕을 측근에서 보좌한 책략가(모사) 아히도벨의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밧세바는 다윗의 측근 신하인 아히도벨의 손녀였습니다. 게다가 현장에서 암몬과 싸우고 있던 장수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이러한 인적 보고를 받았을 때 멈췄으면 됐습니다. 하지만, 에덴동산에서 눈으로 범죄한 이후 실제 범죄로 옮겼던 아담부부처럼 다윗은 범죄를 이어갔고, 구체화해 갔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 일로 인해 이후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반역시 다윗을 제거하려는 가장 위협적인 책략가로 돌아섰습니다. 지금 그 불씨를 다윗이 만들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전령을 보내어 밧세바를 데려오게 했고,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그녀를 범했습니다. 그 뒤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녀를 집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는 부분이 설명되어 있는 4절을 보면, 아주 특이한 부분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다윗이 밧세바를 데려왔을 때 그녀가 생리 중인지, 언제 끝났는지 이런 부분을 확인 후 범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이스라엘 율법에 생리 중인 여성은 7일간 부정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말이 ‘부정’이지, 실은 여성들의 건강을 지키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반영된 법이었는데, 다윗이 이것을 이용했습니다. 범죄를 저지르려는 때에 치밀하게 율법에 어긋나냐? 아니냐를 확인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리를 지났다 하더라도 타인, 그것도 충신의 아내를 범하는 것은 어떤 법으로도 허락된 것이 없는 중대한 범죄행위였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그것을 죄로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이미 죄에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사무엘서의 기록자는 다윗의 범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이렇게 우회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마비된 양심은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도 낙타는 태연히 삼키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튼날 밧세바를 자기 집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아마도 보내는 것 역시 측근을 통해 은밀히 시행토록 했을 겁니다. 이로써 다윗의 간음사건은 끝이 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국면이 전개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밧세바에게서 얼마 뒤 임신소식이 전해왔습니다. 성경에서 대부분의 경우 아기를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복이었고,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이 경우만은 결코 복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점점 밧세바의 배가 불러오면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고, 다윗의 범죄도 드러나게 생겼습니다. 이때도 다윗은 죄에서 되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지탄과 부끄러움을 당할지언정 거기서 멈췄더라면, 더 큰 범죄로 전개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어떻게 하면 감출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밧세바의 임신이 남편 우리아로 인한 것이라고 꾸미기 위해 한창 전투 중인 우리아를 불러 들였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왕에게 호출당해 예루살렘으로 온 우리아를 다윗은 극진히 대접 후 귀가토록 했습니다. 하지만, 충성스런 우리아는 동료 전우들이 야전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자신만 편히 집에서 잘 수 없다며 왕궁 문 앞에서 노숙했습니다.

당황한 다윗은 다음 날에 우리아를 불러 술을 잔뜩 먹여 취하게 한 후 다시 귀가토록 했지만, 우리아는 여전히 다윗이 잠을 자는 왕궁 문 앞에서 노숙했습니다. 자기 죄를 숨기려는 다윗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토록 충성스런 부하를 보며 다윗은 더욱더 사악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전투 중에 적의 손에 우리아를 전사토록 하라는 편지를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낸 것입니다. 목욕하던 여인을 무심코 살펴본 일이 종내엔 충성스런 신하를 청부살해하는 일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이런 모습을 보며 죄가 왜 무서운 것인지를 경험합니다. 죄는 하나에 머물도록 우리를 두지 않습니다. 점점 더 많은 것, 점점 더 큰 것,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욕망토록 함으로써 결국 우리로 파멸에 이르도록 합니다. 이 세상에 “내가 죄 짓다가 파멸하겠다”고 작정하고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죄 짓는 사람들 조차 파멸을 목적으로 하고 죄 짓는 사람은 단연 없을 겁니다. 근데도 왜 한 가지 죄에서 멈추지 못하고 열 가지 죄로 갈까요? “나는 예외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 아닐까요?

이 세상에 인간의 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 중에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백신처럼 죄가 침범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날마다 연약한 우리를 고백하며 이렇게 기도드리는 겁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지난 주간 방문했던 집의 어떤 분이 이와 관련한 한 어머니의 기도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아들이 살아가면서 죄를 짓지 않고 바르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렵기도 하고,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아들을 위해 매번 기도한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 자식이 잘못된 길로 갈때 초기에 발각되는 은혜를 입게 해 주십시오!”




3. 당신이 그 사람이라


하나님은 다윗을 단순한 왕이 아닌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양을 치는 목자처럼 다윗은 백성들을 돌보며 나라를 이끌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력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에 사용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덮는 곳에 오용했습니다. 공권력의 남용이었고, 권력의 시유화였습니다. 그리고 은밀하게 감추고 세탁했습니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한 다윗은 홀로 된 밧세바를 궁궐로 데리고 와 부인 삼았습니다. 요압을 비롯한 측근들 몇몇만 아는 일이고,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하 11장 마지막 절(27절)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악하였더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רָעַע 라아으)는 그 뜻 외에도 ‘불쾌하다’, ‘괘씸히 여기다’, ‘싫어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윗은 비록 사람들의 눈은 속였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추악한 행위들을 모두 보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눈에 몹시 악했고, 불쾌했으며, 싫어하신 바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런 행위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선지자 나단을 ‘보내’ 다윗의 죄를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동사 하나가 나옵니다. 그것이 바로 ‘보내다’라는 동사입니다. 이 동사는 앞서 11장에서 다윗이 공권력을 오남용하고, 권력을 사유화할 때 사용했던 동사였습니다. 무려 12번<1, 3, 4, 5, 6(3회), 12, 14, 18, 22, 27>을 사용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은밀하고 교묘하게 남들을 시켜서 행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자신 뿐 아니라, 수하의 부하들까지 범죄에 동원했습니다. 이때 그가 즐겨 사용한 단어가 ‘보내다’였습니다.

근데, 지금 하나님께서 똑같은 단어를 사용해 추악했던 다윗의 범죄행위를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범죄를 행한지 10달이 되어 갈 무렵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통해 <가난한 집의 양을 빼앗은 부자 비유>를 하게 하셨습니다. 나단의 비유는 분명 다윗을 가리켜 한 것인데도 다윗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되려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무엘하 12: 5-6입니다.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남의 집 양을 뺏은 일에 대해서는 모세의 법(출 22:1)대로 하자면, 4배를 갚으면 되었습니다. 근데도 다윗은 얼마나 의분을 내었는지 “그런 놈은 당장 죽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윗 스스로가 자신에게 ‘사형’을 판결한 셈입니다.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나단이 바로 이어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2:7)

이야기 속 부자를 보며 격노하던 다윗을 보며, 나단은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다윗의 구체적인 죄에 대해 열거하면서 그 죄들을 하나로 정리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 여긴’(9절) 결과였습니다. 왕이 되기 전부터 그리고 왕이 되고도 안정된 상황에 이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윗의 삶은 늘 하나님께 묻고 또 묻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힘이 생기고, 안정되자 그는 묻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조차 업신여겼습니다.

나단의 불꽃같은 지적 앞에 다윗은 일절의 변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어야 한다”고 자기 입으로 판결했던 그 사람이 바로 자신임을 깨달을 때 즉각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습니다”(삼하12:13)

다윗은 이제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 판단하기를 멈추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무엇을 범했는지를 고백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자신의 문제가 무었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내가 주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안고 있는 문제의 근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에, 봄이 되어 마땅히 나가야 할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졌기에 삶의 현장에 나가지 않고, 저녁이 다 되도록 침대 위에서 빈둥거렸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렸기에 충신의 아내를 범하고 부하를 청부살인 당하게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는 시작이자 끝입니다. 전부입니다. 이 하나가 그리스도인의 모든 것을 주관합니다. 이 하나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달라지게 합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현재 우리를 점검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존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지는 않습니까?



4. 여디디아


죄의 주요한 속성은 ‘교묘함’입니다. 이 교묘함 때문에 죄를 지으면서도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는 뱀의 말처럼 그렇게 될 줄 믿습니다. 하지만, 인간을 숙주삼아 점점 자라는 죄는 종내엔 숙주마저 죽이고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다”는 선지자 나단의 말 앞에서 다윗은 정신이 번쩍 들자 곧 바로 엎드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복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의 통회 자복하는 시>라고 밝히고 있는 시편 51편은 하나님 앞에 울부짖는 다윗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시 51:9)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1)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시 51:14)

다윗은 하나님 앞에 깨어진 마음으로 가슴을 쳤습니다. 고통스런 자기 죄와 직면하며 통회했습니다. 한동안 죄책감마저 상실했던 다윗은 다시 죄 앞에 민감함으로 떠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다윗을 보시며 하나님은 그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가 죄 가운데 잉태해 출산했던 아이는 얼마있지 않아 숨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아이의 병의 원인을 ‘여호와께서 치시매’라고 설명합니다.

7일 동안 아이가 병으로 고통하며 죽어가는 동안 다윗은 더더욱 자신의 죄를 돌아보았습니다. 자신이 우리아를 청부살해할 때 죽어가던 그를 바라보던 아버지 하나님의 맘이 절절히 와닿았습니다. 그는 금식하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했습니다. 제발 아이를 살려달라고 눈물로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의 바램과는 달리 아이를 데리고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밧세바와의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게 하시며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솔로몬의 어릴 적 이름이었는데, ’여디디야’란?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뜻입니다. 신약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데오빌로’이며, 우리가 잘 아는 모짜르트의 이름으로 표현하자면, ‘아마데우스’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아이의 죽음과 또 다른 아이의 출생을 겪으며 다윗은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과 만났습니다. 그는 밧세바 사이 첫 아이를 통해 공의의 하나님을 보았으며, 둘째 아이 여디디아를 통해 사랑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나단의 예언처럼 앞으로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한 결과로서의 불행한 사건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고단하고, 때로 슬프고 힘겨울 겁니다. 하지만,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지만, 심각한 오점을 지닌 인간으로서 하나님 앞에 더더욱 서며 겪어가고 이겨갔을 겁니다. 왜냐하면, 종내에는 하나님의 사랑, 여디디야로 마무리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는 삶에도 수없이 많은 슬픔들이 지뢰처럼 놓여 있습니다. 아무리 힘을 다해 뛰어도 늘 제자리 같고, 아무리 발버둥쳐 보아도 끝이 낭떠러지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끝내 우리를 바로 세우시고, 이기게 하시는 ‘여디디야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이 하나님을 의뢰하고 의지함으로써 끝내 승리하는 삶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드립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삶이 메말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처음이요, 끝이요, 전부가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존대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되게 하옵소서. 우리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되, 행여 범죄의 자리에 놓이게 되더라도 빨리 발각되게 하심으로 더 큰 죄로 자라가지 않도록 지켜 주옵소서. 영적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뒹굴뒹굴 하지 않게 하시고, 있어야 할 삶의 자리에서 신실함으로 끝까지 살아내는 그리스도인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여디디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회 16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