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2021.08.01 움오름 주일 설교 - "공동체의 희망을 쏘다 - 브솔시냇가에서"(삼상 28장 3절~30장)

최종 수정일: 8월 7일








삼상 28장 3절~30장

28장

3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슬피 울며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4블레셋 사람들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더니5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6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7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8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새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서는 사울이 이르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 올리라 하니9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사울이 행한 일 곧 그가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 땅에서 멸절시켰음을 아나니 네가 어찌하여 내 생명에 올무를 놓아 나를 죽게 하려느냐 하는지라10사울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11여인이 이르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하니 사울이 이르되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하는지라12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13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하니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하는지라14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더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15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다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하더라16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17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18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19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 하는지라20사울이 갑자기 땅에 완전히 엎드러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함이요 또 그의 기력이 다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루 밤낮을 음식을 먹지 못하였음이니라21그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가 심히 고통 당함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여종이 왕의 말씀을 듣고 내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왕이 내게 이르신 말씀을 순종하였사오니22그런즉 청하건대 이제 당신도 여종의 말을 들으사 내가 왕 앞에 한 조각 떡을 드리게 하시고 왕은 잡수시고 길 가실 때에 기력을 얻으소서 하니23사울이 거절하여 이르되 내가 먹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그의 신하들과 여인이 강권하매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서 일어나 침상에 앉으니라24여인의 집에 살진 송아지가 있으므로 그것을 급히 잡고 가루를 가져다가 뭉쳐 무교병을 만들고 구워서25사울 앞에와 그의 신하들 앞에 내놓으니 그들이 먹고 일어나서 그 밤에 가니라


29장

1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2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3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4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5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6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7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니라8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9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전령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10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11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과 더불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30장

1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2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3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4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5(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6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7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8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9이에 다윗과 또 그와 함께 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게 했으되10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명을 머물게 했고 다윗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11무리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그를 다윗에게로 데려다가 떡을 주어 먹게 하며 물을 마시게 하고12그에게 무화과 뭉치에서 뗀 덩이 하나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으니 그가 밤낮 사흘 동안 떡도 먹지 못하였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음이니라 그가 먹고 정신을 차리매13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에게 속하였으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14우리가 그렛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갈렙 남방을 침노하고 시글락을 불살랐나이다15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그 군대로 인도하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내 주인의 수중에 넘기지도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당신을 그 군대로 인도하리이다 하니라16그가 다윗을 인도하여 내려가니 그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약탈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17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 그들을 치매 낙타를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 명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더라18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19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20다윗이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르되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21다윗이 전에 피곤하여 능히 자기를 따르지 못하므로 브솔 시내에 머물게 한 이백 명에게 오매 그들이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을 영접하러 나오는지라 다윗이 그 백성에게 이르러 문안하매22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23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24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25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26다윗이 시글락에 이르러 전리품을 그의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어 이르되 보라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에게 선사하노라 하고27벧엘에 있는 자와 남방 라못에 있는 자와 얏딜에 있는 자와28아로엘에 있는 자와 십못에 있는 자와 에스드모아에 있는 자와29라갈에 있는 자와 여라므엘 사람의 성읍들에 있는 자와 겐 사람의 성읍들에 있는 자와30홀마에 있는 자와 고라산에 있는 자와 아닥에 있는 자와31헤브론에 있는 자에게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왕래하던 모든 곳에 보내었더라




설교문


1. 하나님의 무응답 앞에 서다


이스라엘 땅에 있다가는 둘 중에 하나가 없어지기 전 까지 끝도 없이 도망다녀야겠다는 생각에 다윗은 무리들을 이끌고 블레셋으로 망명했습니다. 혼자일 때는 동가식 서가숙해도 되고, 굶어도 상관없었지만, 가족과 따르는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 가장과 리더가 되니 적에게조차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갑작스런 다윗의 블레셋 망명에 사울도 단념했는지 더이상 다윗을 추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엘라골짜기에서 골리앗을 잃고 전쟁에서 참패(삼상 17장)한 이후 블레셋은 이스라엘과의 전면전 대신 줄곧 국경 부근에서 국지전을 펼쳐왔습니다. 그랬던 블레셋이 오랜 시간 준비한 끝에 이스라엘과 대대적인 전쟁을 일으킨 겁니다. 이것은 블레셋으로 망명한 다윗에게 위기였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던 사울에게도 위기였습니다. 망명한지 1년이 넘도록 위장전투를 하며 가드왕 아기스의 환심을 샀던 다윗은 할수없이 타협을 선택하고 전쟁에 참가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사울도 당시 이스라엘의 가장 큰 적이었던 블레셋과의 최후의 일전을 치러야 하는 위협 앞에 놓였습니다.

다윗이나 사울 모두 둘 다 어쩔 수 없는 곤경 가운데 있을 때 사울은 심각한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블레셋과의 전쟁에 대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통용되던 꿈으로도, 우림(제사장의 흉패에 들어있던 것으로 제비뽑기 등에 사용됨)으로도, 선지자로도 하나님은 사울에게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까지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제 맘대로, 제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그랬던 사람이 위기 앞에 서자 하나님을 찾은 겁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사귐과 관계도 없이 하나님의 능력만을 탐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울에 대해 하나님은 대답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나 맘이 상했으면 그렇게까지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근 40여년을 사울에 대해 참고 기다리신 하나님의 마음이 그만큼 상하고 아팠다는 증거입니다.

상황은 절박한데 하나님이 자신에겐 대답조차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은 사울은 대체제를 찾았습니다. 다급한 나머지 그는 율법이 엄격히 금했던 강령술을 부리는 접신무당을 수소문했습니다. 근데 무당 찾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게 참 아이러니한게 무당도 사무엘 생전에 자신이 정화작업을 했기에 찾기가 어려웠던 겁니다. 겨우겨우 수소문하여 유일하게 남아 음지에서 활동하던 엔돌의 접신무당을 찾아갔습니다.

사울은 신분을 속이고, 옷을 갈아입고 변장한 채 무당에게 죽은 사무엘의 영을 불러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며 "이것이 사무엘의 영이다.” “아니다! 그것은 귀신이 사무엘의 영인척 한 것이다”며 해석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양분됩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여기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기에 저는 “이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리지는 않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죽은 이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행위가 하나님께서 금하셨다는데 있습니다.

불려온 사무엘의 영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떠나셨고, 그의 왕국은 다윗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은 내일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사무엘의 영이 전하는 이 말은 사울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갑자기 땅에 엎드러져 하루 밤낮 동안 음식을 먹지도 못한 채 보냈습니다. 엔돌의 접신무당의 권고에 겨우 몇 조각의 음식을 먹고 사울은 그곳을 떠났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의 최후의 만찬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찬란했고, 고귀했던 삶이 이렇게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부터 이 잘못이 시작했길래 이렇게 멀리 벗어난 걸까요?

지난 주중 새벽에 일어나 눈을 감고 손을 모으자 마자 해결해야 할 일들, 급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들이 쉬지 않고, 반복되게 기도로 나왔습니다. 쉴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기도를 보며 제가 스스로를 책망하며 말했습니다. “아니, 눈뜨자 마자 ‘하나님! 이것, 이것요…’라고 청구서 내밀면 하나님은 뭐라고 생각하시겠어? 어떻게 하나님 심정 한번 여쭙지도 않아?” “하나님,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 제가 하나님 맘 알아드릴게요”라고 말씀이라도 좀 드리고 청원기도하면 안돼?” … 이렇게 제가 제게 꾸중했습니다.

사울의 길과 우리는 멀지 않고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 생각, 하나님 마음 헤아리지 않고, 우리 생각대로 살다보면 그 길이 사울의 길입니다. 이것을 매일 기억하며 하루를 열어 가셨으면 합니다.



2.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앞서 사울이나 다윗이나 모두 위기 가운데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울을 피해 블레셋으로 망명했던 다윗에게 출전을 앞둔 가드왕 아기스가 자신의 경호부대가 되어 주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만큼 다윗을 신뢰하게 되었다는 것의 증거입니다. 1년여 이상을 철저히 가드왕을 속이고 위장한 것의 결과이니 만큼 기뻐할 일이었습니다. 허나 문제가 그 전쟁이 동족 이스라엘과 싸워야 한다는데 있었습니다. 다윗으로서는 낭패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다윗의 이런 딜레마는 세속의 문화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겪는 일상이기도 합니다. 세속문화에 저항하며 살지 않고 압도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이기도 합니다. 몸서리치면서도 직장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음주문화를 받아 들입니다. 기독교 신앙과 교회를 경멸하는 사업주와 거래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손님들의 기호를 맞추기 위해 할 수 없이 술을 팔아야 하고, 담배를 비치해야 합니다.

얼마전 제 은사(박동현 교수)께서 목회할 때 교우였던 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습니다. 지방에서도 가난하게 살던 일가족이 살아보겠다고 서울로 이주했습니다. 밑천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던 그분들은 서울 빈민촌 단칸방에 기거하며 살기위해 온갖 일들을 닥치는대로 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짝퉁가방을 떼서 파는 일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제 은사께선 차마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말씀하실 수 없었다고 합니다. 살아보겠다고 서울와서 저렇게 몸부림치는데, 고귀한 율법이다며 말씀하실 수 없었다고 합니다.

성경을 보며, 가드왕 아기스 아래에서 보이는 다윗의 부정한 부분, 모자라는 부분에 대해 우리는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지 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와 같은 현실의 한 인물로 그를 본다면, 우리가 어떻게 쉽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부분에서 성경이 정작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하에 있을 때에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향한 구원의 계획을 완벽하게 성취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다윗에게는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아기스의 요청에 할 수 없이 다윗은 출전을 결심했습니다. 자신에겐 뾰족한 묘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이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그에게 피할 길을 내어주셨습니다. 그것은 가드왕 아기스를 제외한 다른 블레셋 방백들이 일제히 다윗의 참전을 반대한 일입니다. 그들은 아기스가 보증한다고 해도 다윗을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들 편인척 하다가 전쟁 중 뒤에서 자기들을 칠 수 있으니 다윗과 같이 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아기스는 다윗에게 유감의 말과 함께 그를 되돌려 보내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구원하심에 대해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0:13을 통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이에 오늘도 아기스의 문화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에 의지하여 연약한 우리와 더불어 이렇게 기도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3. 시글락의 슬픔과 브솔시내의 200명


1) 시글락의 슬픔과 애굽사람

예상치 못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족들이 있는 시글락으로 되돌아온 다윗 일행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출전한 사이 아말렉이 쳐들어와 성읍을 불태우고, 부녀와 아이들을 사로 잡아 갔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벌어져 있는 참혹한 실상을 보며 다윗은 매우 비통했습니다. 사무엘상 30:4을 보니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고 할 정도로 매우 황망하고도 슬픈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잡혀간 자녀들로 슬프고 격분했던 무리들이 돌을 들어 다윗을 치자고 했습니다. 자기들이 블레셋 군대를 따라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다윗이 원망스러웠던 겁니다. 벌어진 실상도 슬펐지만,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을 향해 내뿜는 적의에 다윗은 낙심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다윗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믿음으로 이렇게 나아갔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사무엘상 30:6입니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께 의뢰했습니다. 하나님을 통해 힘을 얻은 다윗은 제사장 아비아달을 불러 약탈자 아말렉을 추격해도 좋을지를 여쭤봐 달라고 했습니다. 쫓아가라는 하나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다윗을 비롯한 600명의 용사들은 지체없이 아말렉을 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사람들은 그전까지 아벡에서 출발해서 3일간 100여km를 행군해서 모두 지쳐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다시 25km를 추격해 브솔시내까지 가니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때 병력의 1/3이 되는 200명이 시냇가에서 도저히 더이상 갈 수 없다며 낙오를 선언했습니다.

할 수 없이 200명을 브솔시내에 남겨두고 다윗과 400명의 추격대는 아말렉을 따라 잡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광야에 밝은 그들이었지만, 여기저기를 옮겨다니며 게릴라처럼 활동했던 아말렉의 본거지를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른 상황이었습니다. 그럴 즈음 다윗 일행은 거의 빈사상태에 빠져 버려져 있던 애굽인을 발견했습니다. 다윗은 그를 불쌍히 여겨 치료해 주고, 먹을 것을 주어 살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이른바 신의 한수였습니다. 그 추격전의 성공의 열쇠, 하나님께서 숨겨놓으신 승리의 비책이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버려져 죽어가고 있던 애굽인은 아말렉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말렉 근거지를 속속들이 알 뿐만 아니라, 그들의 방어체계와 습관들까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가 기꺼이 추격대의 길잡이가 되니 일이 절로 풀려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살다보면, 우리도 이와 유사한 경우들을 겪곤 합니다. ’지금 내 코가 석자인데, 누굴 돌본단 말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다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급하다고 살려야 할 사람들을 외면하고 산다면, 우리 상황을 풀어갈 열쇠를 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추격하라고 하실 때 왜 “어디를 가라!”고 알려주시지 않고, 그 답을 죽어가던 애굽인 속에 두셨을까요? 여기에 사람을 향한 사랑과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가르침이 들어있습니다.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사람이 병들었다고 버리고 가는 집단은 소망이 없습니다. 인간을 부품화하고, 도구화하는 사회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내가 힘들고 어렵더라도, 주변을 돌아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우며 나누고 살리는 이런 곳에 내일이 있습니다. 회복이 있습니다. 이 가르침을 하나님은 다윗과 애굽사람을 통해 보게 하십니다.

2) 표준이 된 브솔의 아름다움

애굽소년의 도움으로 아말렉 본거지를 찾자마자 다윗은 기습적으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새벽부터 이튼날 저물 때까지 아말렉을 치고 또 쳤습니다. 승리에 만끽해 잔뜩 마시고 취해 있던 아말렉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갔습니다. 겨우 400명만이 낙타를 타고 줄행랑을 쳐 살아남을 정도로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그 과정에 하나님은 다윗과 그의 사람들 뿐 아니라 잡혀간 그 가족들도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에 다윗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더불어 빼앗겼던 우양들 뿐 아니라, 아말렉 진영에 있던 물건들까지 챙겨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승리했고, 기쁜 날인데,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전투에 참가했던 400명이 브솔시내에서 남아있던 낙오자 200명에게는 노획한 물건을 나눠주지 않기를 원했던 겁니다. 사무엘상 30:22입니다.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입니다.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똑같이 힘든 상황에서 죽어라고 싸웠던 자신들과 브솔시냇가에 발 담그고 쉬고 있던 사람들과는 똑같이 대우해서는 안된다는 논리가 일면 타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상황에서 공정한 분배를 요구한 사람들을 ‘악한 자와 불량배들’라고 단언하며, 그들의 말을 지체없이 거절한 다윗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30:23-24입니다.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다윗의 이 말 속엔 우리가 주목해야 할 2가지 중요한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 다윗은 그와 함께 400명의 사람들이 탈취한 물건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 아말렉을 쳐서 이겼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노력해서 얻은 노략물이라고 여겼지만, 다윗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기에 탈취물에 대한 궁극적인 권리는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이를 병사들에게 각인시키며 배분하는 일에 대한 권리가 그들에게 없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둘째, 다윗은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 성경은 200명에 대한 배제를 주장하는 이들을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라고 규정했지만, 다윗은 그들을 “나의 형제들”이라고 부르며, 낙오한 200명도 자신들의 형제임을 인식시켰습니다. 낙오한 그들도 동일하게 전리품을 나눠 가지도록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말렉에게 습격당해 약탈 당했던 여러 성읍들까지 물품들을 보냈습니다(27절-31절).

이 성읍들 중에 ‘헤브론’(삼상 30:31)이라는 성읍의 이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헤브론은 수년동안 다윗이 애정을 갖고 적들의 괴롭힘으로부터 보호해 주었던 성읍입니다. 다윗 자신도 힘든 가운데서 헤브론 사람들의 필요를 체워줌으로써 그들에게 얼마나 헌신적인 사람인지를 알게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무엘하 2장에서 다윗이 왕 위에 오르는 곳이 헤브론이었던 곳도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광야에서 도망자로 지내는 가운데서도 돌보고 챙겼던 하나하나의 행위들이 엮여지고 꿰어져 왕이 되게 했던 겁니다.



4. 일상을 관대함으로 채우며 함께 살다


사무엘상 30장을 끝으로 다윗의 광야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놉에서 시작된 다윗의 광야 이야기는 10년 이상을 이어갔습니다. 그 긴 세월동안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미움을 받아 사냥감처럼 쫓겨 다녀야 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엄마저 짓밟혔고, 신앙과는 거리가 먼 사회 속에 들어가 생존을 위해 무릎을 꿇고 살아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런 삶 속에서도 기도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 목소리에 청종하려 했습니다. 어려운 속에서도 세속적 가치인 공평과 공정을 뛰어넘는 관용과 사랑으로 공동체를 일구어 갔습니다. 그 결과 다윗이 세운 결정은 이스라엘 사회의 새로운 척도와 가치기준으로 자리했습니다(삼상 30:25).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공평과 공정을 앞세우고 있지만, 끝없는 특혜와 가로채기와 배제로 ‘우리들의 천국’을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사회 속에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비판 속에서 사회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비판이 더 나은 사회를 보장할 수 있을까요?

다윗의 모습에서 보듯이, 공평과 공정을 뛰어넘는 관용과 관대함이 자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서로 다르고, 차이나는 우리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될 수 있게 합니다. 흔히들 다윗을 광야 속에서도 열정(passion)을 태운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다윗은 다른 이들(com)을 향한 따뜻함(passion)으로 살았던 측은지심(compassion)의 사람이었습니다. 관용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관용의 질서 속에서 다윗과 함께했던 아둘람의 사람들은 악한자와 불량배를 넘어서 다윗왕국을 세우는 초석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관용의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다윗을 통해 3천년전 하나님의 왕국을 일구셨듯이, 우리의 관용을 통해 오늘 이 메마르고 답답한 시대를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가길 원하십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녀로 하루를 열어가길 원합니다. 때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피할 길을 내사 우리를 구원해 주시길 구합니다. 우리 삶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쓰러져 있는 주변 사람들을 외면치 않길 구합니다. 공평과 공정 속에 감추인 ‘치열한 경재의 발톱’ 아래 힘을 못쓰는 이들을 품으며 함께 가는 관대함과 관용의 그리스도인 되길 구합니다. 이런 우리로 답답한 코로나 시대가 숨쉴만 하고, 살만한 사회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회 24회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