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2021.07.18 움오름 주일 설교 - "광야, 그 생존과 거룩"(삼상 21장~24장)

7월 24일 업데이트됨








삼상 21장~24장

21장

1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2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3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4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5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6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7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8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9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하더라10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11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12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13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14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15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22장

1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2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3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4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5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6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그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 나무 아래에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7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8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9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이르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10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11왕이 사람을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12사울이 이르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13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냐 하니14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15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하건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크고 작은 일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16왕이 이르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너와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17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18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19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20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21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매22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23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23장

1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2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3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4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5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6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7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8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9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 하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10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11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12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13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14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15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에 있었더니16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17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18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19그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20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넘길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하니21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22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에 숨었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23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정탐하고 실상을 내게 보고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몇 천 명 중에서라도 그를 찾아내리라 하더라24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쪽 마온 광야 아라바에 있더니25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가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26사울이 산 이쪽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27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28이에 사울이 다윗 뒤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29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머무니라


24장

1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2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3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4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5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6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7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8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이르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9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10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11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12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13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14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15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16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17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18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19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20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21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하니라22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설교문


1. 열 다섯 광야 속으로


이번주일 예배순서지 ‘움이 트는 생각’에 옮긴 글처럼 우리가 가진 것은 우리 개인의 능력이 출중해서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룩한 것 또한 우리의 노력이 탁월해서 만이 아닙니다. 타고날 때 재능이든, 부모님의 재력이든 출발선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 보다 더 많은 교육적 강화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의 선의나 도움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입니다. 사무엘서에서 만나는 다윗 또한 그 예외가 아닙니다. 그는 비록 8형제의 막내로서 부모나 형들로부터 인정받거나 후원을 받지 못했지만, 요나단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개입하셔 그로 어려움과 환난을 이겨가도록 도우셨습니다.

그 결과 다윗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다윗이 되었습니다. 만약 다윗이 이런 도움과 구원받음이 없이 그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들을 이루려 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를 우리는 다윗이 남긴 시편 가운데서 확인합니다. 그 시편들 속에 유독 ‘도움, 바위, 반석, 구원의 뿔, 피난처…’라는 은유적 단어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아버지 사울과 척을 지면서까지 다윗 편을 든 요나단의 도움 덕분에 다윗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누렸던 모든 것들과 결별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총사령관, 천부장으로서의 권한도, 공주의 남편으로서의 지위도 모두 내려놓고 광야 속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물론 이 광야는 다윗이 원해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야는 다윗으로 하여금 버려야 할 것은 버릴 뿐 아니라, 반드시 가져야 할 가치와 철학을 얻게했습니다. 그 광야를 통해 다윗은 진정한 왕으로 준비되어 갔습니다.

그러고 보면, 성경 가운데 하나님께서 믿고 동역하셨던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광야의 시간을 거쳤습니다. 요셉, 모세, 엘리야가 그러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세례요한 뿐 아니라, 예수님조차도 40일 금식하며 광야에서 보낸 이후 3년의 공생애를 시작하실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는데 꼭 필요한 것이 광야입니다. 그렇지만, 이와는 별개로 광야는 생존 자체가 가장 큰 이슈입니다. 정신을 온통 기울이고 있지 않으면 순식간에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 위험과 불확실성이 늘 내재한 곳입니다. 한 마디로 광야의 이중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광야 속으로 들어간 다윗은 앞으로 15개의 광야 이야기를 겪게 됩니다. 그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며, 잃을 것은 잃고, 버릴 것은 버리며, 찾을 것은 찾아갑니다.



2. 광야 -놉(삼상 21:1-9), 가드(삼상 21:10-15)


아무런 준비도 없이 도망치듯 왕궁을 떠난 다윗이 제일 처음으로 들린 곳은 놉이었습니다. 예루살렘과 기브아 사이에 있다고 추정되는 놉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소와 80명 이상의 제사장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윗은 자신에게 꼭 필요했던 2가지였던 양식과 무기를 모두 얻었습니다. 잠시 그 이야기와 그 속에 담긴 숨은 메시지를 들여다 보겠습니다.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다윗은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또한 그 전과만큼 이스라엘 전역에서 가장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유명인사가 된다는 것은 일반인들이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아무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없는다는 것과 결이 닿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명인사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그것도 홀홀단신으로 찾아 왔습니다. 그러니 제사장 이히멜렉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의 표현을 보니, 심지어 그는 두려워하기 까지 했습니다(1절).

다윗은 자신이 도망자가 되었다는 것과 놉에 나타났다는 것이 발각되지 않아야 했기에 아히멜렉에게 거짓말 했습니다. 왕의 비밀업무를 수행하고 있기에 홀로 은밀히 움직이고 있으며, 자신을 따르는 젊은 부하들은 모처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둘러댔습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을 성경은 숨기지 않지만, 동시에 도덕적 판단도 내리지 않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고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할까요?

거짓말은 당연히 좋지 않은 일입니다. 거짓으로 쌓아 올린 것이 선하다면, 종내에 무너질리가 없습니다. 거짓으로 형성된 인간관계의 끝이 좋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거짓은 당연 권할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사무엘서가 가감없이 다윗의 잘못된 행위를 기록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행위였다”와 같은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생명과 직결된 거짓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생명과 직결된 일 앞에서는 이성이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염치가 없어집니다. 사람의 이 약한 부분을 성경이 인정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허용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정한다는 것은 긍휼한 눈으로 본다는 의미입니다. ‘오죽 어려웠으면 네가 그렇게 했겠어…’라고 생각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삶에서도,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안 그래!’라고 단언할지 모르지만, 누구든 생존이나 밥벌이 앞에서는 초라해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기억이야말로 우리 주변 사람들을 마음에서 품는 출발이 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사람의 약한 부분을 용인했다 하더라도 계속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윗 역시 놉에서, 그리고 다음으로 잠입했던 블레셋 지역 가드에서 왕 아기스 앞에서 살기 위해 광인흉내를 냈습니다. 또 다른 류의 거짓으로 생명의 위기를 모면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생 이런 거짓을 반복하며 살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놉에서 다윗의 행위를 보며, 우리가 본 받을만한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전리품으로 보관중이던 골리앗의 칼을 무기로 취했다는 부분입니다. 이것이 왜 우리가 본 받을 부분입니까? 몇년 전만 하더라도 다윗에게 익숙한 무기는 물매였습니다. 그는 그것으로 거인 골리앗과 싸워 이겼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성공한 방식을 끝까지 고수하며, 아랫 사람들에게도 은연 중 강요합니다. 만약 군대장관이고, 천부장이었던 다윗이 끝까지 자기 성공에 도취했고, 그것만 고집하는 사람이었다면, 전부대원들을 자신처럼 만들려 했고, 자신 역시 칼이나 창 또는 다른 류의 무기는 다루려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일반 칼보다도 훨씬 크고 무거웠을 골리앗의 칼을 “그같은 것이 또 없습니다. 그것을 내게 주십시오”(삼 21:9)라고 말하며 취했을 리가 없습니다. 다윗의 말은 지난 수년동안 무거운 칼조차도 능숙하게 다룰 정도로 연습하고 훈련했던 수많은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우리의 인격과 믿음을 다듬는데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익숙한 것만 고집한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힘들더라도, 때로 버겁더라도 새로운 부분을 도전하고 또 연습한다면 이전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운 인격과 신앙으로 빛나게 될 겁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의 행위에서도 우리가 본받을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도 언급하셨듯이(막 2:25-26) 진설병을 배고픈 다윗에게 주었다는 점입니다. 근데, 레위기 24:9보면, 진설병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아히멜렉이 율법의 틀에 매여있던 사람이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는 종교 규칙을 넘어서 사람을 섬길 줄 알던 긍휼의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종교가 율법과 법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틀을 기본으로 진리를 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틀을 형성한 기본정신인 사람에 대한 사랑과 긍휼을 상실한 채 규칙과 법칙만을 고수한다면, 그것은 단연 종교주의, 율법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넘어서 긍휼함으로 다윗을 대한 아히멜렉을 통해 이 땅의 교회와 기독교 신앙이 어떤 모습으로 이 사회 속에 존재해야 할지를 봅니다.




3. 광야 - 아둘람(삼상 22:1-2)


블레셋 땅 가드에서 안전하게 거할 수 없었던 다윗은 이내 그곳을 빠져나와 아둘람에 있는 동굴로 피신했습니다(삼상 22:1).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온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금새 4백명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지지하고, 따르는 사람이 생겼으니 얼마나 든든하고 또 신났겠습니까? 그런데 꼭 그렇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아둘람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십시오. ‘환난 당한 사람들, 빚진 사람들,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같이 일반사회에서 삶이 불안정하고 심성이 오르락 내리락(up & down)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전투를 수행할 용사와는 거리가 먼 이런 사람들이 과연 다윗에게 얼마나 힘이 되고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치고박지 않으면 다행이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여기에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하심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광야를 겪었기에 다윗은 그 어떤 왕들보다도 백성들의 형편을 잘 듣고 헤아리는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백성들이 환난을 당하는지, 왜 사람들이 빚을 지고 터전을 떠날 수 밖에 없는지, 왜 억울한 일을 당한 뒤 해결받지 못한 채 원통한 맘으로 지낼 수 밖에 없는지를 알아갔습니다.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어떤 재난(환난)방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지를 계획했을 겁니다. 빚을 질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어떻게 개혁하고, 또 국가 재정과 복지를 제공해야 하는지를 연구했을 겁니다. 나아가 억울한 사람들이 하나라도 덜 생기도록 국가 사법시스템을 어떻게 정비하고 개혁해야 할지를 궁리했을 겁니다. 이 모든 것이 눈물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갔던 아둘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내 주변엔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혹이나 우리 맘에 차지 않고, 우리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마십시다. 우리 만남이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의 결과라면, 이런 우리의 모임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놀라운 다윗왕국을 만들어 가시지 않겠습니까!

아둘람 굴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고 기억해야 할 또 다른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둘람 굴에 머물 때 가장 먼저 그곳에 찾아온 사람들이 연로한 아버지와 형제들 가족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도망자가 된 후 생명의 위협을 느낀 형제들이 모두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내 목숨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도망자 상황에서 가족은 짐이고,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물자가 희소하여 나 혼자 살기에도 빡빡한데, 가족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을 믿고 찾아온 가족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훗날 자신의 증조모의 나라 모압 왕을 찾아가 자신의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부모님을 돌봐달라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게 다윗입니다.

살다 보면, 나 살기도 빡빡하고 바쁜데, 부모님, 형제 자매 가족들 살피고 돌봐야 할때가 있습니다. 이때 가족은 힘이 아니라, 짐이라고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것이 단회적이 아니고, 돌봄이 계속 요구되는 장기적인 사안이라면, 더더욱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나 혼자만의 살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처럼 나도 어렵지만, 가족들의 피난처와 버팀목이 되기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것을 선택하든지 우리의 자유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원하심은 어디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혹이나 지금껏 부모님과 가족을 책임지는 일로 어려우셨다면, 힘내십시오. 그리고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이 지켜보셨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셨듯, 우리 속에서도 역사하십니다.



4. 광야 -놉에서의 대학살(삼상 22:6-23)


다윗은 사울왕이 아히멜렉을 비롯한 놉 땅의 제사장 85명을 한꺼번에 학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자신이 놉에 갔을 때 몰래 지켜봤던 에돔사람 도엑이 사울에게 밀고함으로 아히멜렉과 다른 제사장들이 모두 처형당했던 겁니다. 다윗을 도왔다는 것이 죄목이었습니다. 놉에서 자행된 무자비하고 몰상식한 대학살 소식을 들으며 다윗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신이 도망자라고 정직하게 이야기한 뒤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자비를 구했다면, 그렇게 무참히 죽지 않았을텐데, 피할 수 있었을텐데라고 후회했지 않겠습니까? 거짓으로 생명과 안위를 구했던 자신이 미워서 자책했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나 하나 살자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거짓말은 하지 말자고 얼마나 다짐하고 또 했겠습니까!

이쯤에서 우리 각자를 정직하게 되돌아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생존의 현장을 살고 있습니까? 어떤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고 만나고 있습니까?



5. 광야 - 그일라(삼상 23:1-14) & 셀마하마느곳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냥 말이 아니고, 실제 우리 삶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다윗도 이런 일을 만났습니다. 자신도 사울을 피해 계속 동가식서가숙하는데, 블레셋사람들이 그일라를 쳐서 곡식을 탈취해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윗은 즉시 하나님께 이 문제를 여쭈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그와 함께 있던 용사들이 하나같이 반대했습니다. 지금 제 코가 석자인데, 누굴 구원한다는 말입니까? 일리있고, 타당한 의견이었습니다.

근데, 하나님께 기도하니, 여전히 가서 도우라고 하십니다. 함께 한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찬성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일라를 구하러 갔습니다. 무얼 생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며 설득했다는 겁니다. 그들의 마음을 돌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친 뒤 그일라에 간 다윗과 일행들은 블레셋을 물리치고 그일라를 구했습니다. 근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일라 사람들이 사울에게 다윗이 그곳에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이를 알게 된 다윗이 하나님께 여쭈보니, 그일라 사람들은 심지어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줄 것이니 어서 달아나라고 하셨습니다.

내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위기에 처한 그일라를 구해줬는데, 이게 무슨 경우란 말입니까? 일이 이렇게 되자 다윗 주변의 사람들이 다윗에게 뭐라고 이야기했겠습니까? “봐라! 오지 말자고 했잖느냐!” “왜 위험을 자처하느냐?” “은혜도 모르는 저런 사람들은 도와줄 필요가 없다” …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얼마나 많은 원망과 불평을 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왜 이런 것들을 감수하면서까지 그일라를 구하러 갔을까요? 당연히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셔서 그랬기도 하지만,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이후부터 이스라엘의 왕이요, 목자였기 때문입니다. 왕이라고 하는 이는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정적제거에만 올인하고 있는데, 그 왕에게 쫓기던 다윗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돌봐야 할 양을 돕는 목자로서의 임무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런 헌신과 배신을 겪으며 다윗은 인생의 목자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헤아리는 왕으로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그일라 사람들에 이어 십사람들도 다윗을 사울에게 고발했습니다. 아마도 놉 제사장들의 집단 대학살을 전해 들은 사람들이 겁을 먹었기 때문일 겁니다. 목격하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그들 또한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런 행동을 하도록 유발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무엘상 23:26 이하를 보면, 다윗을 추격하는 사울 무리의 모습을 다소 코믹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제 다윗 상황이 웃겼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사울의 군대가 산 이쪽으로 가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으로 도망갔습니다. 이걸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 코믹하기는 하지만, 목숨이 달린 일이니 얼마나 다급하고 짠했겠습니까!

근데, 이 일이 어떻게 해결됩니까? 다윗 무리가 거의 잡힐 무렵 다급히 외치는 전령 하나가 옵니다. 블레셋이 침략해 왔다는 긴급상황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도 어떻게 사울이 계속 추격했겠습니까? 급히 회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급했던 상황, 가까이 다가왔던 죽음과 분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신 손길이 누구이신지를 알기에 그곳 이름을 ‘셀마하마느곳’이라고 지었습니다. ‘분리하는 바위’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곤경에 처한 다윗을 구원하셨듯이, 오늘 우리 삶 속에서 죽음과 환난으로부터 우리를 분리하십니다. 우리를 삼키려는 사울의 손으로부터 우리를 분리하십니다. 시련 속에서 우리를 일으키시고, 그 아픔으로부터 우리를 분리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총이 이번 한 주간의 삶 속에서도 충만하게, 또한 편만하게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되시며>라는 찬양의 가사를 나눈 후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환란중에 우리의 힘과 도움이시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환란중에 우리의 힘과 도움이시라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됨 알지어다

영광과 세계가운데

주가 높임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환란중에 우리의 힘과 도움이시라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됨 알지어다

영광과 세계가운데

주가 높임을 받으리라

…(하략)…

광야 속으로 들어간 다윗의 삶을 통해 우리 삶의 광야를 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비록 우리가 원치 않고, 계획한 것이 아니지만, 주어진 광야 가운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압니다. 광야를 통해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백성을 진정 위하는 목자요, 왕으로 준비되어 갔듯이, 우리 삶의 광야를 믿음으로, 인내로 겪어가는 신앙의 사람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원자, 죽음과 환난으로부터 우리를 분리하시는 ‘셀마하마느곳’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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