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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움오름교회

2021.07.04 움오름 주일 설교 - "신앙과 축적의 힘"(삼상 17장)

최종 수정일: 2021년 7월 10일








삼상 17장

17장

1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2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대하여 전열을 벌였으니3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4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5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6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7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8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9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10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11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12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가 많아 늙은 사람으로서 여덟 아들이 있는 중13그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으니 싸움에 나간 세 아들의 이름은 장자 엘리압이요 그 다음은 아비나답이요 셋째는 삼마며14다윗은 막내라 장성한 세 사람은 사울을 따랐고15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그의 아버지의 양을 칠 때에16그 블레셋 사람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17이새가 그의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지금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영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18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19그 때에 사울과 그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중이더라20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가 명령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마침 군대가 전장에 나와서 싸우려고 고함치며,21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들이 전열을 벌이고 양군이 서로 대치하였더라22다윗이 자기의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형들에게 문안하고23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전열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24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25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이 올라 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26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27백성이 전과 같이 말하여 이르되 그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이러이러하게 하시리라 하니라28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29다윗이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30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하매 백성이 전과 같이 대답하니라31어떤 사람이 다윗이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전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32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33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34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35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36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37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38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39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40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41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42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43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44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45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46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47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48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49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50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51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 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52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53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54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55사울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나아감을 보고 군사령관 아브넬에게 묻되 아브넬아 이 소년이 누구의 아들이냐 아브넬이 이르되 왕이여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매56왕이 이르되 너는 이 청년이 누구의 아들인가 물어보라 하였더니57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가 그의 손에 있는 채 아브넬이 그를 사울 앞으로 인도하니58사울이 그에게 묻되 소년이여 누구의 아들이냐 하니 다윗이 대답하되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 하니라



설교문


1. 축적의 힘


지난 주중 한 자매가 직장 면접을 보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경험해 보셨겠지만, 면접이라는게 떨립니다. 짧은 시간에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그곳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야 하니 떨리는 게 당연합니다. 게다가 몇번 채용이 안되다 보면,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라는 불안감이 자리 잡습니다.


이를 잘 아는 지혜로운 어머니가 면접하는 딸과 동행하며 이렇게 이야기해 주셨다고 합니다.

“괜찮아. 잘 될꺼야. 혹이라도 안된다 하더라도 이것은 축적의 시간이야. 하나씩 쌓이고, 또 쌓여서 언젠가 폭발력이 나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니 너무 긴장하지 마~”


지난 6월 27일 포천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뜻밖에 무명 임진희 선수가 우승했습니다.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으로 처음 골프를 접한 그녀는 넉넉치 않은 가정형편에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2부투어를 전전해 작년 상금랭킹이 85위(1986만원)에 불과했습니다. 후원사도 대기업이 아닌 대리운전회사입니다(모자에 1577-1577이라고 쓰여있음). 철저한 무명인 그녀가 기댈 것이라고는 ‘하루 1000번 스윙, 남보다 30분 더’라는 지독한 연습 말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축적의 힘을 믿고 그녀는 달려왔고 우승했습니다.


이처럼 어떤 공부를 하든지, 시험을 치르든지 우리는 축적의 힘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인식하든, 하지 못하든 간에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하나씩 쌓여서 오늘의 우리를 만듭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듯이, 사울은 기름부음을 받고 금방 왕이 되었지만, 다윗은 짧게는 15년, 길게는 23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즉위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맘에 들지 않는 사울왕을 얼른 폐위시키고, 다윗을 새왕으로 세웠으면 하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은 달랐습니다. 불필요할 것 같았던 23년의 시간이 다윗에게는 꼭 필요한 축적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을 거치며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합당한 왕으로 준비되었습니다.



2. 골리앗이라는 두려움


오늘 본문, 삼상 17장은 다윗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입니다. 교회 안이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이름은 이미 하나의 상징이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골리앗이 등장하는 전쟁은 사울의 군대와 대치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먼저 블레셋이 이스라엘에 속한 소고에 집결함으로써 엘라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양국의 군대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려 40일 동안 별다른 전투행위는 없이 블레셋의 일방적인 말폭탄을 듣는 것으로 시간이 갔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을 무시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조롱하는 말폭탄 앞에서도 사울을 비롯한 이스라엘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주도하는 블레셋 장수의 용모와 위용에 압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 장수의 이름은 골리앗, 무려 2미터 70센티미터에 달하는 키에 그가 걸친 갑옷의 무게만도 57kg에 달했습니다. 철로 된 그의 창날은 7kg이나 나갔습니다. 그는 놋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었을 뿐 아니라, 그의 앞에는 여러 명의 병사들이 방패를 들고 그를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고대 영화에서 보는 장면처럼 그는 이스라엘을 향해 자신과 맞짱을 떨 사람을 보내라고 종용했습니다. 둘 사이의 결투결과로 이긴 상대의 종이 되자고 제안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어느 누구도 거구의 용사 앞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 장면을 전력비교하며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다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서 삼상 16장에서 여호와의 영이 떠난 사울왕에게 악령이 괴롭히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을 기억하시지요? 삼상 17장에서는 그 연속 선상에서 또 다른 한 현상이 자리한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골리앗의 말만 듣고도 ‘놀라 크게 두려워 했다’고 합니다.


얼마만큼 그것이 두려웠냐 하면, 40일 동안 숨죽여 눈치만 살필 정도로 두려워 했습니다. 원래 우리가 알던 사울왕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함께 하실 때엔 용감하게 나서 용사를 모아 진두지휘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광주에 있는 초급장교를 육성하는 보병학교의 구호처럼 그는 “나를 따르라!”를 실행하던 용장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결코 주눅이 들어 40일 동안 숨어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완전 자신감을 상실한 채 숨어 있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의 내면에서 역사하시던 하나님의 영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지 않는 그는 더이상 용사도 아니었고, 용감한 지휘관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겁많고, 쇠약한 왕일 뿐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떠난 사울의 모습을 보며,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봅니다. 만약 목회자가 하나님 영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다면, 그를 하나님의 목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리스도인이 성령님의 통치를 받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3. 가족의 몰이해와 불인정


전투가 예상보다 길어지자(제대로 싸워보지도 않은 전투) 참전한 세 아들이 걱정이 된 아버지 이새는 막대 다윗에게 곡식과 떡과 치즈 덩어리를 쥐어 보내며 전장에 가서 안부를 확인해서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확인만 하고 올 것이 아니라, 18절을 보니 증표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새가 말한 증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을 보며, 아버지조차 제대로 아들 다윗의 됨됨이와 가치를 모르고 있었음을 재확인합니다.


비슷한 일이 삼상 16장에서 먼저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모든 아들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는데, 막내 다윗은 제외시켰습니다.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었으니 별 수 없었다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을 보면, 사무엘이 요청하자 다른 사람을 보내 양을 돌보게 하고 다윗을 오도록 했습니다. 처음부터 다른 사람을 임시로 보내 양을 맡긴 뒤 참여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새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막내 아들을 별로 중요치 않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도 같은 맥락의 연속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장에 가서 형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전달할 것 전달한 뒤에 오라고 하면 되는데, 그러지 않고 반드시 증표를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다윗의 말을 신뢰치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로서 제 자식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장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이새를 통해 확인합니다. 이 부분은 맏형 엘리압도 매한가지 였습니다. 골리앗과 싸우겠다는 다윗을 향해 그는 이렇게 독설을 내뱉었습니다. 28절입니다.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일반적으로 큰형은 품이 넓습니다. 특히 막내를 아끼고 잘 챙깁니다. 근데 이 집안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한 집안의 일을 우리가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만은 아버지와 형에게조차 저평가된 다윗의 모습이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훗날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머물던 광야 아둘람 굴에 아버지를 비롯해 형제들 가족이 와서 같이 지낼 때에 완전 반전이 일어납니다. 마치 야곱과 열 한 아들들의 가족들이 애굽의 총리 요셉에게 의탁하러 갔던 것과 유사합니다.


어쩌면 요셉의 어린시절처럼 다윗의 평소 행위가 가족들에게 미덥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철부지 아들이고, 어린 동생이었기에 가족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이 애굽의 노예생활을 겪는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해 갔듯이, 다윗 또한 쫓겨다니던 광야생활을 통해 넓은 어른이 되어 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단했고 힘들었던 삶이 그에게 준 선물이었습니다. 힘이 들지 않으면, 힘이 나지 않는 법이니까요. 아!, 그리고 우리가 그냥 지나칠수도 있는 다윗의 한 모습을 주목하셨으면 합니다. 사무엘상 17:20입니다.


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가 명령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마침 군대가 전장에 나와서 싸우려고 고함치며,


비록 아버지는 몰라주고, 형은 오해했다 하더라도 다윗은 자기 일에 책임감을 갖고 챙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삯꾼에게 양을 맡기고, 아버지가 명한 일을 빠짐없이 꼼꼼히 할 정도로 그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4. 사울의 갑옷과 물맷돌 5개


40일 동안 갖은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아무도 골리앗과 대결하려 하지 않자 어린 다윗이 나섰습니다. 당시 군대 징집 대상 나이가 20세(민 1:3)였음을 감안해 보면, 다윗의 나이가 아무리 빨라도 16세 정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위로 군 징집되지 않은 형이 4명이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린 다윗이 나서자 안쓰러웠던 사울이 그의 갑옷을 벗어 다윗에게 입혔습니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 높이가 큰 사울의 체격으로 볼 때 10대 소년 다윗에게 맞을리가 없습니다. 또한 그가 빌려 준 칼도 무겁고 다윗에겐 익숙치 않은 무기였습니다. 많은 경우 ‘사울의 갑옷’은 당사자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 도구나 방법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 그들 나름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울의 갑옷’을 강요합니다. 우리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도 부지간에 다윗에게 우리의 갑옷과 칼을 입히려 해 왔을 수 있습니다. 사울의 갑옷과 칼이 그에게는 가장 좋은 싸움의 도구가 될지 모르나, 다윗에게는 부자연스러운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군장으로는 도저히 싸울 수 없음을 깨닫고 자신에게 익숙한 옷으로 다시 입었습니다. 목동의 지팡이와 물매만 가지고 골리앗과 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싸움에 자신이 익숙한 것, 자신의 강점을 갖고 하는 겁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창립한지 6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개척교회’, ‘작은교회’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니는 우리교회는 기존교회들이 갖고 있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조직과 제도, 시스템과 효율성으로 다가서는 ‘사울의 옷’은 없습니다. 하지만 움직이는 데 민첩하고, 결정 과정이 단순하며,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다윗의 물매돌’을 갖고 살아가면 되는 겁니다.


싸움에 앞서 다윗은 먼저 엘라 골짜기로 내려가 돌맹이 5개를 골랐습니다. 20여년 전 저 역시 엘라골짜기에 내려가 돌맹이를 고르며 돌들에게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3천년 전 한 소년이 돌맹이를 고르던 것을 기억하느냐?”고. ^^


근데, 여기서 잠깐 궁금한 게 있습니다. 다윗은 왜 굳이 돌맹이 5개를 골랐을까요? 만약 이것이 별 의미가 없는 행위였다면, 성경은 다윗이 돌맹이를 골랐다고만 쓰지 굳이 돌맹이 5개를 골랐다고 기록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개라고 명기해 둔 것은 그만큼 분명한 의미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무엘하 21:15-22에 보면, 블레셋 거인들을 죽인 다윗의 용사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4명의 블레셋 거인 이름이 나옵니다. 이스비브놉(16절), 삽(18절),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19절), 손가락과 발가락이 24개인 사람(20절), 모두 4명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다윗이 엘리 골짜기에서 골리앗과 싸우기 전에 그의 눈에 들어왔던 거인은 골리앗을 비롯해 모두 5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그날 돌 하나에 한명씩, 그러니까 돌 5개로 거인 5명을 모두 쓰러뜨리겠다고 작정하고 돌 5개를 고른 겁니다.


다행인지 아닌지, 골리앗이 쓰러지는 것을 본 골리앗의 동생 라흐미를 비롯한 4명의 거인들이 모두 줄행랑을 치는 바람에 그날 목표를 다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도망갔던 그때 4명의 거인들은 훗날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다윗의 모습에 용기를 얻은 다윗의 부하들에 의해 모두 처리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그룹 안에서 누군가가 넘지 못할 것 같던 벽을 넘으면 그것이 새로운 기준이 됩니다. 그것을 보고 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됩니다. 이런 현상이 가정에서 일어나면, ‘가풍’이라 하고, 교회에서 일어나면 ‘교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시대 속에서 일어나면 그것이 사회를 변혁하는 ‘시대정신’이 될 수 있습니다.



5. 자신감의 출처 & 현실감각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이 2가지 있습니다. 첫번째, 다윗이 가진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리앗 한명만 보고도 주눅이 들어 40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윗은 골리앗 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4명의 거인들까지 차례로 쓰러뜨리겠노라고 결심하고 덤벼들었습니다. 다윗의 이 자신감이 어디에서 왔겠습니까? 그것은 그가 사울왕 앞에서 밝혔듯이 2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사자나 곰과 싸우면서 까지 양을 지켰던 평소의 실력 때문입니다(34절-35절). 맹수들을 물리치기 위해 매일매일 수도없이 던졌던 물매 실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국방군의 탄도학 전문가인 에이탄 허시(Eitan Hirsch)는 전문 투석병이 35미터 거리에서 날린 보통 크기의 돌이 초속 34미터(시속 122.4킬로미터)로 골리앗의 머리를 맞힐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골리앗의 두개골을 관통해서 의식불명에 빠뜨리거나, 심지어 죽이고도 남을 만한 위력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되기까지 쉼없이 물매를 던지고, 또 던지며 일상을 살았습니다. 그 축적의 힘이 다윗의 자신감입니다.


또 다른 자심감의 출처는 여호와 신앙입니다(37절). 37절을 같이 봉독하시겠습니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다윗에겐 양을 칠 때 맹수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주셨던 하나님께서 이 싸움에서도 반드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자신감 때문에 골리앗을 향해 달려 나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다윗이 평소에 물맷돌 연습도 안하고, 양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해하는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본인이 성실히 습득하고 훈련해야 할 부분까지 신앙을 핑계로 요행을 바랍니다. 그것은 훈련을 통해 갖춰야 할 실력의 영역입니다. 그 실력의 영역 위에 함께 하실 하나님의 은혜, 바로 신앙의 영역입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윗은 뛰어난 현실감각을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 “다윗은 약자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제게는 《티핑 포인트》,《아웃라이어》, 《1만 시간의 법칙》 등으로 익숙한 사람입니다. 그가 쓴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책에 보면, 골리앗은 말단비대증의 부작용으로 시력이 형편없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인들을 벌벌 떨게 만든 거구가 실제로는 물체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거리를 측정하는 시력에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반면, 다윗에게는 민첩성이 있었습니다. 불리한 근접전투를 피하고, 거리를 둔채 선제공격을 날렸습니다. 상대방의 신체 중 유일하게 보호되지 않은 이마를 타격했습니다. 싸움의 규칙을 바꾸었습니다. 다윗은 작은 몸집과 낯선 무기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 덕분’에 이 육중하게 움직이는 거인을 해치울 수 있었던 겁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골리앗을 바라봅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현실을 직시한다는 겁니다. 더불어 온통 우리의 자신감과 용기를 빼앗아 가고, 의욕을 상실한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에게 현실감각이란 이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것은 사자의 입과 곰의 발톱에서도 지켜주신 하나님을 인식하는 겁니다. 그 하나님께서 골리앗과 만나는 그 엘라골짜기에도 계신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겁니다. 그리고 내게 없는 골리앗의 능력이 아니라, 내 손에 있는 물맷돌을 인식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가진 신앙의 현실감각입니다. 우리가 견지해야 할 믿음의 현실감각입니다.



6. 축적의 시간을 신앙으로 일구다


오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익숙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에 바탕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마무리 지으며 몇 가지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졌으면 합니다.


1) 나는 내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축적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내 손안의 돌맹이 5개는 무엇입니까?


2) 나는 여호와의 영이신 성령님과 친밀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3) 나는 어떤 현실감각을 견지하고 있습니까? 골리앗을 바라보는 현실감각입니까? 아니면, 그 자리에 함께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현실감각입니까?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시와 그림'이 부른 찬양 <​허리를 숙여 돌을 주으라>를 오늘 우리의 기도로 올려 드립니다.

허리를 숙여 돌을 주으라

물러서지 마라. 눈을 감지 마라.

오늘 내가 이곳에서 너와 함께 함을 똑똑히 보라.

네 발 옆의 그 돌을 주으라.

자신 없어 마라. 예비 된 돌이니

지금 내가 너와 함께 서 있을 것이라.

너 믿음의 돌을 주워 골리앗을 향해 던져라.

내가 너의 손을 빌려 그 돌을 던지리니 두려워 마라.

내가 너에게 오늘 승리를 줄것이다. 너의 돌을 들어라.

세상 다 산 얼굴하지 마라

힘들어 죽겠단 언어를 바꿔라

오늘 내가 이 곳에서 너와 함께 함을 똑똑히 보라

버틸 수 없다. 말하지 마라.

더 이상 서 있을 힘이 없다 마라

지금 내가 너와 함께 서 있을 것이라

너 믿음의 돌을 주워 골리앗을 향해 던져라

내가 너의 손을 빌려 그 돌을 던지리니

두려워 마라. 내가 너에게 오늘

승리를 줄 것이다. 너의 돌을 들어라

승리를 줄것이다. 허리를 숙여 보라​


자비하신 하나님~

올려드린 이 찬양의 가사처럼 우리 삶을 이렇게 살게 하옵소서. 반복되는 생의 들판에서 양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허리를 숙여 돌을 줍게 하옵소서. 그 힘으로 골리앗 앞에서도 당당하게 하옵소서. 골리앗은 이기지 못할 만큰 큰 것이 아니라, 맞추기 쉬운 만큼 큰 것임을 기억하며 우리 생의 골리앗을 대면케 하옵소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손이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심을 믿으며, 오늘도 믿음의 돌을 날리는 다윗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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