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2021.05.16 움오름 주일 설교 - "사무엘이 자라매"(삼상 2:12-4:1a)

5월 19일 업데이트됨










삼상 2:12~4:1a

2장

12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13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곧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14그것으로 냄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 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15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16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17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18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19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20엘리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다른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바친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매21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22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23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24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25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26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27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28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내 제사장으로 삼아 그가 내 제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29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30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31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32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33내 제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네 사람이 네 눈을 쇠잔하게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서 출산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34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35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36그리고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이르되 청하노니 내게 제사장의 직분 하나를 맡겨 내게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3장

1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2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3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4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5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6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7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8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9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10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11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12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13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14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15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의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16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이르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17이르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18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19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20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21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4장

1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설교문


1. 본문의 단락


룻기서부터 시작해서 설교형식이 바뀌었습니다. 설교라고 하는데, 성경공부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을 겁니다. 더 많은 분량을 다뤄야 하는 사무엘서에서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형식이 어떠했든간에 제가 바라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비평의 꿈은 작품만 남기고 비평이 소멸하는 것이며, 시 읽기의 궁극은 읽는 이가 행복하게 사라지며 새로 탄생하는 것에 있다.”고 했던 문학평론가 김수이 교수의 말처럼 설교도, 성경공부도 그렇게 되는 겁니다. 설교자나 인도자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읽고, 듣는 분들의 맘 속에 남는 것입니다. 부디 저의 이런 꿈이 사무엘서를 나누는 동안 실현되도록 저를 많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오늘 본문(삼상 2:12-4;1a)은 다음의 3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 1단락: 2:12-2:26 (엘리의 두 아들과 사무엘의 성장)

제 2단락: 2:27-2:36 (엘리 가문을 향한 예언자의 책망과 멸망 예언)

제 3단락: 3:1-4:1a (사무엘을 부르심과 엘리집안 멸망 예언, 그리고 사무엘의 등장)


이 단락별로 내용과 의미를 살펴 보겠습니다.



2. 1단락: 엘리의 두 아들과 사무엘의 성장(2:12-2:26)


1) 엘리의 두 아들

지난주일에 살펴본 한나의 기도와 찬미가 마친 뒤에는 바로 엘리의 두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삼상 2:12은 그 아들들을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여기서 행실이 나쁘다는 것을 우리는 사회적, 도덕적인 규범에 맞지 않을 때의 행위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실이 나쁨'과 ‘여호와를 알지 못함’을 연결지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원문을 보니, ‘행실이 나쁘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베네 엘리 베네 벨리야알(וּבְנֵ֥י עֵלִ֖י בְּנֵ֣י בְלִיָּ֑עַל). 말 그대로 직역하면, ‘엘리의 아들들은 벨리야알의 자식이다’는 뜻입니다.


‘벨리야알’이란? ‘무가치하다’라는 뜻이 있지만, 많은 경우 성경 속에서 ‘불량한’(삼상 25:25, 잠 6:12), ‘불량배’(삼상 30:22), ‘악인’(시 18:5), ‘사악한’(삼하 23:4, 나 1:11)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은 고후 6:15에서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라고 표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벨리알(마귀)을 대조시켰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적하는 적그리스도가 벨리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의 아들들이 행실이 나쁘다는 말은 그들이 제사장으로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른 신을 섬겼다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들의 삶이 이러니 어떻게 하나님을 알겠습니까? 만약 하나님을 알았다면 그렇게 살았을리도 없습니다. 그들이 이방신을 섬겼다는 구체적인 행위들이 2:13-17에 대표적인 2가지 행위로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무시한 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성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한 행위입니다.


어릴 적 밥상머리교육을 받습니다. 그때 배고프다고 숟가락이 먼저 가면,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먼저 드시고!”. 어른이 먼저 드시고 난 뒤에 자녀들이 먹는게 예의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존중입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이런데, 하물며 하나님에 대해선 말해야 뭐 하겠습니까?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께 제사드리기도 전에 그 제물을 먼저 착취하고 약탈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찮게 봤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두번째로 엘리의 두 아들은 성막에서 봉사하는 여인들과 동침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성추행을 하거나 간음을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당시의 종교적인 행태를 고발한 겁니다. 농경문화 중심이었던 가나안 땅에서는 풍요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고대 팔레스틴에서 풍요란? 곧 비와 폭풍을 주관하는 바알과 창조와 번식을 주관하는 아세라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 결과 가나안인들은 바알과 아세라에게 제사하며 신의 모방적 행위로 신전 여사제들과 행음했습니다. 당시 이러한 행위는 신에 대한 헌신으로 평가되었기에, 가나안 토속 신앙에서는 버젖이 신전 매춘이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이 회막에서 봉사하는 여인들과 동침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바알과 아세라의 풍습을 그대로 좇아 배교행위를 했다는 것을 성경이 고발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이토록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우상의 원리로 배교행위를 하는 이단자들이었습니다. 외형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인데, 실제는 벨리알의 추종자들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벨리야알’이라는 단어가 이미 삼상 1:16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한나는 제사장 엘리에게 자신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말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악한 여자’로 번역된 단어가 원문에 바트 벨리야알(בַּת־בְלִיָּ֑עַל), ‘베리야알의 딸’입니다. 부연 설명드리자면, 엘리는 슬픔에 겨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한나를 보며, ‘벨리알을 섬기는 여자’로 봤다는 겁니다. 엘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하나님을 경배하던 한나를 ‘벨리알의 사람’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의 두 아들이 ‘벨리알의 신봉자’임을 알지 못한 무지한 제사장, 무책임한 아버지였다는 사실입니다.


2) 사무엘의 성장

이런 엘리의 두 아들과 엘리와는 달리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성장하고 있었음을 삼상 2:18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를 원문의 의미를 더 살려 재번역해 보면, “사무엘이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앞에서 흰 에봇을 입고 섬겼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젖을 갓땐 3살된 어린 사무엘이 하얀 세마포 옷을 입고 성막에서 봉사하겠다고 아장아장 거립니다. 어린 애가 하면 얼마나 하겠습니까?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를 귀하게 여기셨다는 겁니다. 그 마음을 받으셨다는 겁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제사장이라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이방신을 섬기는 교주가 되어 있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답답하셨겠습니까? 근데, 그 답답한 마음을 어린 사무엘이 다독여 드렸다는 겁니다. 이 일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이어지는 19절이 설명합니다. 매년 그의 어머니 한나가 커가는 사무엘의 몸에 맞게 세마포옷을 새로 지어 입혔기 때문입니다.


이런 한나의 모습을 귀하게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에 5자녀를 더 허락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엘리 집안을 향한 경고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하나님이 갚아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리 그 부분을 찾아 보시겠습니다. 삼상 2:30 뒷부분입니다. 제가 대표로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이 부분은 사무엘서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요,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한번 보십시오. 참 안타깝고도, 아이러니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른인 제사장은 하나님을 멸시합니다. 타락할 때로 타락한 세속사람입니다. 이에 반해 아직 어리고 힘이 없는 견습생 사무엘은 하나님을 힘을 다해 존중합니다. 가장 제사장답습니다.




3. 2단락: 엘리 가문을 향한 예언자의 책망과 멸망 예언(2:27-2:36)


엘리의 두 아들은 아버지의 충고를 듣고도 그 나쁜 행실에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삼상 2:25하)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의 두 아들을 죽이기로 하셨다는 것은 개인의 행위에 대한 심판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엘리의 두 아들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같이 멸망하는 것을 막으시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배교행위를 그대로 두면 온 이스라엘이 오염되어 다같이 멸망할 수 있기에 그들을 심판한 뒤 새로운 사람, 신실한 사람으로 다시 세워가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이 뜻을 선지자가 찾아와서 엘리에게 전했습니다. 부모와 선대 제사장으로서 마땅한 의무를 져버린 책임을 물어 엄중한 심판이 내릴 것이라 했습니다. 근데, 그 내용이 어마무시합니다. 31절-36절에 4가지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첫째, 엘리 가문의 제자장직이 영구히 상실될 것이다.(31절 - 33절)

둘째, 두 아들(홉니, 비느하스)이 한 날에 죽을 것이다.(34절)

셋째, 엘리 가문을 대신할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실 것이다.(35절)

넷째, 엘리의 남은 자손은 경제적인 파산을 하게 될 것이다.(36절)


이 모든 것이 자식 잘못 둔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상 2:29은 그 원인을 이렇게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9절입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심판의 근본적인 원인은 엘리가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귀하게 여기고, 존중한 까닭이었습니다. 특별히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세상에 자식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당연히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사랑해야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리 귀하더라도 그 자녀를 허락하신 하나님보다 앞세우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녀를 더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하나님을 무시하며 가벼이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것을 넘어서 결국 자녀들과 자신마저 망치는 길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 <허준>역을 맡았던 배우와 몇명이 어느 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낼 때의 일입니다. 그날 요리를 맡았던 사람이 유명 연예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치과원장이었습니다. 안심스테이크를 요리하는 그의 뒤에 예쁘고 어린 두 딸이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딸들에게 먼저 음식을 떼어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 상에 모두 제공한 뒤에 고기의 짜투리를 구워 그 예쁜 딸들에게 주었습니다. 여느 젊은 부모들과 달랐기에 제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딸들은 앞으로 더 좋은 것을 먹을 기회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우선이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기에 집에서도 그렇게 해오고 있습니다”.


귀합니다. 사랑스럽습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가르쳐야 합니다.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사람의 본성이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잠 22:6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근데, 이미 다 큰 자식에겐 강요하지 마십시오. 괜히 분란과 갈등만 생깁니다. 그저 삶으로 보여주시고, 기도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믿음을 함께 나누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날이 올 겁니다.)


그런데, 잠깐 멈춰 생각해 보면, 현재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어디 자녀 뿐이겠습니까?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무수한 것들이 하나님 보다 앞서 있지 않습니까? …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0)



4. 3단락: 사무엘을 부르심과 엘리집안 멸망 예언(3:1-3:14)


사무엘의 등장은 엘리의 추락과 반대의 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삼상 3:1절과 2절은 사무엘과 엘리를 향해 대조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어린 사무엘, 늙은 엘리, 여호와를 섬기는 사무엘, 자기 처소에 누운 엘리 등입니다. 엘리의 눈이 어두워가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희귀해 갑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보여지고, 들려져야 할 하나님의 묵시는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이런 영적 빈곤의 시절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법궤 옆에 누워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서를 읽다보면, 어린 사무엘과 관련하여 반복되는 묘사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삼상 2:11, 2:18, 3:1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린 사무엘은 반면교사만 가득한 하나님의 성소에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곧이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부르셨습니다. 성소 법궤 곁에서 누워있던 사무엘은 엘리가 부르는 줄 알고 달려갔습니다. 그걸 3번이나 반복했습니다. 그때 엘리는 하나님께서 그 옛날 자신에게 말씀하셨듯이 사무엘을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에게 다시 가서 부르시면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9)라고 말씀드리라고 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셨고, 사무엘이 엘리가 명한 대로 대답하자 하나님께서 엘리집안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사무엘은 밤새 법궤 곁에 누워있다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아침일찍 성소의 문은 열었는데, 차마 어젯밤에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엘리에게 전할 수가 없어 침묵했습니다. 그러자 엘리가 사무엘을 협박하듯이 말하게 했습니다. 이에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엘리는 다음과 같이 반응했습니다. 삼상 3:18 하반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 권위를 인정하는 신실한 모습 같지만, 제게는 이 또한 충격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엘리의 입장이라면 울고 가슴칠 일입니다. 나와 내 집안과 관련된 일을 하나님께서 내게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도 2번이나.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예언하셨는데, 이제는 내가 양육하는 어린 사무엘을 통해 들었습니다. 얼마나 슬프고 비참합니까? 우리 생각에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장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통회해야지요. 가슴을 치고 회개해야지요. 자식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할 부분을 가르치지 않았고, 우선순위가 누구인지를 보여주지 못한 아비로서의 잘못을 용서를 구해야지요. 제사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자복해야지요. 그런데도 엘리는 마치 이제는 포기한 사람처럼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고 할 뿐이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엘리처럼 반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 57:15입니다.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욘 3:10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범죄한 엘리 집안에 그냥 벌을 내리시면 되지 왜 2번이나 예언하고 경고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결심이 견고하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돌아서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안돌아서니 심판이 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어지는 삼상 3:19-4:1은 엘리 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했다고 진술합니다. 희귀했던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을 통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긴 영적침체를 벗어나 여명을 맞이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사무엘이 처음에 여호와 앞에서 자라다가(삼상 2:11, 18, 22), 점점 자라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다가(삼상 2:26), 마침내 하나님이 즐겨 함께 하시는 선지자로 성장했다(삼상 3:21)는 사실입니다.



5. 사무엘이 자라듯


오늘 본문 속에 엘리의 아들들과 한나의 아들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각기 심화되어 갔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배교와 타락의 길로 깊어 갔고, 한나의 아들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더해 갔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건강한 신체와 고결한 인격이 함께 성장한다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이는 자신에게 뿐 아니라, 자신과 함께 하는 주변 사람들과 시대에 있어서도 복입니다.


슬픈 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런 노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다지만, 우리의 신앙과 하늘의 은총이 점점 고갈되어 간다면 이것은 참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주중에 제 은사님과 줌 미팅을 하는 중에 선생님께서 젊은 시절 사회참여했던 일을 들려주시며 한 사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한 사람입니다. 군부독재시절 학생운동하고 사회참여까지 했다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극우에다 극친일적인 발언과 책 출판까지 할 정도로 완전히 배교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당시 학생때 사회참여하게 되었던 계기가 법대생이었던 제 선생님을 따라 갔던 것이었다고 그 사람 책에서 밝히고 있답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변질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제 선생님은 그게 변질이라고 보지 않으셨습니다. 자신도 잘 인식하지 못했겠지만, 처음부터 그의 마음은 그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겁니다. 남들이 보면, 변질이고, 배교인데, 실은 스스로가 평생 그 길을 마음 밑에서부터 추구하고 걸어온 결과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진리를 새기지 않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배교자로, 타락한 사람으로 나이들게 됩니다. 흐르는 물에서는 가만히 있거나 적당히 헤엄치면, 떠내려 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적당히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언젠가 생명과는 상관없는 명목상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제사장이라는 직책이, 교회의 직분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못합니다. 학교에 학생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저절로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니듯, 좋은 교회에 있다고 저절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과 함께 날마다 우리 삶의 면을 맞대어야 합니다. 우리 맘을, 우리 형편을 하나님이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새벽부터 기도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맘을 알아드리기 위해 시간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분의 뜻을 알고자 말씀 곁으로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그때 사무엘의 키가 자라며 점점 하나님의 사람으로 견고히 세워져 갔듯이, 우리 또한 하늘의 은총의 머금은 사람으로 우리 인생을, 우리 시대를 밝히며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생이 날이 가고, 세월이 갈수록 더더욱 하나님의 은총으로 채워지는 삶 되길 원합니다. 희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릴 통해 전해 지게 하시고, 우리 삶이 하나님의 뜻이 전해지는 통로 되길 원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책임질 수 있도록 마땅히 알아야 할 바를 가르치게 하시고, 주님의 법도로 견고히 양육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더 해 주옵소서.


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존중하고, 귀하게 여김으로써 하나님께 버림받은 엘리의 집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사무엘을 하나님 앞에 드린 한나의 집안으로 존재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가길 소원합니다. 우리 삶이, 우리 가정이 그리되게 하셔서 우리 평생에 말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시대를 밝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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