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2021.04.25 움오름 주일 설교 -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룻 3:1-18)

5월 5일 업데이트됨










룻기 3:1~18

1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2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3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4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5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6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7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8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9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10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11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12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13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14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15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16룻이 시어머니에게 가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니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17이르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 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하니라18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설교문


1. 룻기 3장을 그리다


지난주일 1시간 넘게 룻기2장을 나누면서 매우 미안했습니다. 말씀 전하는 저도 힘든데, 듣는 분들은 얼마나 더 힘드실까를 생각하며 설교했습니다. 설교 후 제 은사님을 비롯한 몇몇 분들이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 중에 한분(포천중리교회 송영윤 목사)은 제게 이런 말로 권면했습니다.

“아무리 잘 한 설교도 길면 은혜가 떨어지고, 아무리 못한 설교도 짧으면 은혜가 된다”

이런 여러 이유로 이번부터는 분량을 확 줄여 더 핵심적인 부분만을 나누려 합니다.

룻기 3장은 소설형식에 비추면 절정에 해당합니다. 3장소(집 - 타작마당 - 집)가 배경이 되는 3장은 3문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룻 3:1-5은 집에서 나오미가 룻을 위해 세운 계획을 이르며 시키는 내용입니다. 룻 3:6-15은 보아스의 타작마당에서 룻이 고엘(기업 무르는 법)제도를 들어 청혼을 하자 보아스가 응답하는 내용입니다. 룻 3:16-18은 아침이 되어 귀가한 룻에게 나오미가 상황을 묻고 당부하는 내용입니다.



2. 책임이행


저는 룻 3장을 13절 하반절의 내용을 바탕으로 풀어보려 합니다. “…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이 부분에서 ‘책임’이라는 핵심어를 중심으로 각 인물들이 어떻게 책임을 다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나오미의 책임이행

먼저 나오미의 책임이행입니다. 보리추수 때에 이삭줍는 일로 만났던 룻과 보아스의 만남은 밀추수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물론 매일같이 두 사람이 조우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룻은 나오미와 자신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었기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추수하는 밭으로 나갔습니다. 보아스도 농촌에서 한 해 소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추수상황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을터이니 자주 현장을 방문했을 겁니다. 그리고 혹이나 나오지 못한 때에는 일 책임자에게 그날그날의 상황을 보고받으며 특이사항으로 룻에 대해서도 들었을 겁니다.

추수하는 여러 날이 지나고 탈곡하는 날이 이르렀습니다. 베들레헴에 온 이래 이른 아침마다 들녘으로 나가던 룻도 모처럼 어머니와 여유로운 아침을 맞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여유는 주워왔던 양식이 떨어지면 끝나는 한시적인 여유였지만 말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보리차로 모닝커피를 대신해 마시던 중 나오미가 룻의 장래를 걱정하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1절입니다.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나오미에게 있어 룻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며느리가 아니라, 딸입니다. 제 몸으로 낳은 자식과 진배없었습니다. 그런 룻이 자신처럼 나이들어 외롭게 홀로 남는다는게 아팠습니다. 그래서 룻을 다시 결혼시켜 새 삶을 살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나오미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룻을 위해 안식할 곳을 ‘구하다’라고 하는 동사를 미완료형태를 사용했습니다. 될 때까지 찾고, 또 찾으며 끝내 룻의 짝을 찾아주고 말겠다는 나오미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계획안이 2절-4절에 나열되어 있습니다. 요약하면…

첫째, 보아스와 결혼시키려 한다.

둘째, 오늘 밤에 보아스의 타작마당에 찾아가라.

셋째, 가기 전에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옷을 잘 갖춰 입고 가라.

넷째, 보아스가 잠 들면 그 발 아래 가서 누워 있어라.

다섯째, 그 후의 일은 보아스가 알려 줄 것이다.

나오미의 계획안이 매우 구체적입니다. 그냥 네가 알아서 하라가 아닙니다. 보아스의 일정을 사전조사했고, 그가 오늘밤 어디서 머물 것인지까지 파악한 상태였습니다. 룻이 밭일 나간 사이에 그냥 쉬고 있을 줄 알았던 시어머니가 발품을 팔고, 보아스의 측근에게 물었는지 정확한 그의 일정을 알아 왔습니다. 또한 그에 맞춰 룻이 어떻게 해야할지 구체적인 계획도 이미 세워 놓았습니다. 룻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고, 또 구하겠다. 찾을 때까지 구하겠다”는 나오미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나오미는 왜 룻의 결혼상대이자, 기업 무를 자(고엘)로 보아스를 선택했을까요? … 12절의 보아스 말에 의하면, 1순위자가 있는데도 왜 2순위자를 선택했을까요? 그 답은 이미 1절의 나오미의 말 속에 들어 있습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재혼시켜 보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안식할 곳’이었습니다. 안식할 곳이라는 히브리어 마노아흐(מָנוֹחַ)는 창 8:9에 노아방주를 나가 고단한 날개짓을 하던 비둘기가 찾던 바로 그 쉴 곳이었습니다. 지친 몸과 영혼이 쉬고 격려 받아 다시 살아갈 힘을 내는 곳이 바로 ‘마노아흐’, 안식할 곳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이런 마노아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가족이 서로에게 마노아흐가 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 당연하고, 마땅한 마노아흐를 상실했다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 저의 존재가 상처난 가족들의 안식이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이 교회가 안식처가 되기를 구합니다. 지친 몸과 영혼이 이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기운을 내는 마노아흐 되게 해 주십시오.”

2) 룻의 책임이행

두번째로 룻의 책임이행입니다. 룻을 향한 나오미의 책임이행은 구체적인 계획안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나오미의 사랑이 말과 혀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함과 행함이라는 터 위에 서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룻의 책임이행 또한 구체적이고도 일관된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아니, 룻은 책임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 책임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룻 1:16-17에서 어머니를 따르겠다는 그녀의 간청과 맹세는 말의 향연이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진실함과 행함에 바탕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함께 머물기 위해 룻은 손에 물집이 잡히고, 그것이 굳은 살이 되도록 일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남의 밭에 가서 떨어진 이삭을 주워?’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룻은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진 이삭을 주웠습니다. 수백번, 아니 수천번 허리를 굽혀서라도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다면, 그리하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아침 추수꾼들의 뒤를 따랐습니다.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지 않겠습니다”(룻 1:17)는 룻의 약속은 그녀의 의지였고, 삶 자체였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사랑이 뜨거운 감정과 면을 맞대고 있지만, 결코 감정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감정을 훨씬 뛰어 넘는 의지입니다. 감정이 다 소모되더라도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의지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사랑의 정의라고도 하는 고전 13장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라는 부분을 읽어보십시오. 사랑이 어떤 것입니까?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디는 것. 이 모두가 의지와 연결된 행위입니다. 본디 사랑은 이런 겁니다. TV와 미디어가 색칠해 놓은 감정의 모조품이 아니라, 의지로 한 땀, 한 땀 만들어 가는 작품입니다. 룻의 행위가 이러했습니다.

이런 룻의 행위를 소문을 듣기도 했고, 직접 보기도 했던 보아스는 룻을 11절 후반절에서 이렇게 평했습니다.

“…네가 현숙한 여자인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우리말 사전은 ‘현숙’이라는 말을 ‘마음과 행동이 어질고 바르다’고 했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의미는 좀 다릅니다. 지혜서로 일컬어지는 잠언의 마지막 장인 31장은 ‘현숙한 여인’에 대해 다루며 지혜에 대한 잠언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언 31장에서 말하는 진주보다 더 귀하다는 현숙한 여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남편이 집안 일을 다 맡길 정도로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엄청 부지런해서 집안 사람들의 의식주를 책임질 뿐 아니라, 종들에게 매일 해야할 일들을 지시하고 확인합니다. 곤고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봅니다. 한마디로 내조의 여왕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여인입니다. 이쯤하면, 현숙한 여인은 슈퍼-판타스틱-울트라-킹-왕-짱짱입니다.

멋모르던 주일학교 때에 잠언 31장을 읽을 때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철이 좀 들었을 때는 정말 대단한 여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비판적 사고가 생겼던 시절엔 이것은 여인에 대한 압박이자 학대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부인은 죽어라고 일하는데, 남편이란 작자는 성문 앞 광장에서 유력한 장로들하고 말놀이나 하고 있고, 남편이 부인 덕에 인정받는다는 것 이게 뭔말이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있어?’라며 의구심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현숙한 여인은 실존이며, 실재라며 그 예로 룻을 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말 성경은 사사기 다음에 룻기를 위치시켰지만, 원래 히브리어 성경엔 잠언 31장 다음에 룻기가 자리한 이유입니다. 힘을 다해 사람도리를 다하고, 하나님 앞에 살았던 룻이야 말로 현숙한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3) 보아스의 책임이행

세번째로 보아스의 책임이행입니다. 저녁이 되자 곡식단을 모아 놓은 보아스의 밭엔 온통 횃불을 밝히고 탈곡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왜 밝은 날에 탈곡을 하지 않고 해가 진 뒤에 하는지 의문이 드시지요? 오늘처럼 컴바인을 갖고 추수와 더불어 한번에 탈곡까지 하면 굳이 밤에 작업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대엔 탈곡기계라는 것이 매우 단순한 형태였습니다. 툇돌이나 홀태를 통해 곡식단에서 이삭을 분리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키질같은 것을 해서 곡식을 부스러기와 분리해야 했는데, 이 작업 때에 바람이 불어야 작업이 원할합니다. 이 바람이 해가 지면 지중해에서 부터 동으로 불어옵니다. 그래서 해가 진 뒤에 타작하는 이유입니다.

넓은 농지를 소유한 보아스였기에 타작하는 일꾼들도 많았고, 늦은 시간까지 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었을 겁니다. 일찍 저녁식사를 거하게 한 일꾼들은 타는 횃불 사이에서 노래를 부르고, 왁자지껄 거리며 탈곡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보아스도 흥에 겨워 포도주를 한잔 두잔 기울였습니다. 늦은 밤 일꾼들이 집으로 돌아가자 타작마당을 한바퀴 돌아본 뒤 아직 남아있는 곡식단 사이에 이불을 깔고 누웠습니다. 곤함과 술기운에 잠이 곧 쏟아졌습니다.

얼마가 지났는지 모르는데, 갑자기 발에 뭔가 걸렸습니다. 깜짝 놀라 “누구요?”라고 물으니 룻이 대답하며 “당신이 저와 시어머니의 기업 무를 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룻의 청혼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며, 보아스는 10절에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보아스는 이방여인 룻이 유대율법을 따라서 반드시 나이든 자신과 결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래 젊은 여성들처럼 그렇게 살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시어머니의 말에 따라 집안을 책임지려 자신에게 청혼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마음을 보았기에 보아스는 룻에게 “너의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다”고 말했던 겁니다.

보아스는 두려워하며 청혼한 룻을 안심시키며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자기보다 더 우선순위의 사람에게 날이 밝으면 당장 의사를 물어보겠다고 했습니다. 만일 그가 책임을 포기한다면, 두말없이 자신이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보아스의 이 말을 보면, 흔히 헐리우드의 나이든 남자배우들이 딸 뻘되는 젊은 여자와 같이 사는 것과는 격이 다른 품위를 느낍니다. 상대방의 잃어버린 재산을 찾아주고, 대를 잇게 해야 하는 의무를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 이행하고자 합니다. 그에게 율법은 사람을 옭아매는 죽은 법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랑, 율법의 완성임을 봅니다. 그에게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낍니다.



3. 하나님, 그리고 우리의 책임이행


하나님이 만드신 구원역사의 물줄기는 괜히 보아스와 룻이라는 두 사람을 통해 다윗에게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흘러간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홀로된 며느리에게 최선을 다해 책임을 이행하려 한 시어머니 나오미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의지와 삶으로 시어머니를 사랑하며 의무를 넘어선 책임을 다하려 한 인애의 룻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의무를 지켜야 하는 우선순위자가 있었음에도, 본인이 나서 기꺼이 그 책임을 다하고자 했던 보아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책임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말 사전을 이를 ‘맡아서 행해야 할 의무나 임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영어나 독일어에서는 이를 동일하게 ‘응답’과 ‘능력’의 합성어로 설명합니다(영 responsibility, 독 Verantwortung).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이 책임인 겁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부르신 소명에 대답하는 겁니다. 때로 가족이나 주변의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 것이 버겁습니까? 혹은 주어진 일이 내게 버겁습니까? 그래서 얼른 벗어 던지고 싶습니까?

이해갑니다. 충분히 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버거운 것들을 하나씩 해가면서 사랑을 연습해 왔지 않습니까? 그 결과 사람이 되고, 또 진짜 어른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내 몸으로 낳은 자식인데도 어떻게 저러는지 이해되지 않는 자식을 보며, 부모님께 했던 우리 모습을 돌아보지 않습니까? 그래서 버릴 수도 없는 혈육을 끝내 품으면서 사랑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요?

룻기 3장의 등장인물들을 보며 오늘 우리가 감당하고, 감내해야 할 책임을 되돌아 봅니다. 나아가 이 시대와 사회 속에서 교회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 부르심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서로에게 책임을 다하고, 서로에게 응답하며 함께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하나님의 리듬 위 멜로디가 되고 구원의 노래가 되어 화음을 이룹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이어 부를 우리의 노래가 됩니다. 하나님의 노래가 됩니다.

이 노래를 우리로 부르게 하옵소서. 감정의 색이 바래더라도 의지로 노래하게 하옵소서.

의무를 넘어서 부름에 응답하며 회피하지 않고 끝내 감당해 가게 하옵소서

말을 넘어 사랑으로 준비한 나오미, 책임을 넘은 인애로 섬긴 룻, 손해와 이익의 밖에서 응답한 보아스처럼 오늘 우리도 부르심에 응답하는 책임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회 34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