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2021.02.14 움오름 주일 설교 - "와서 조반을 먹으라 2"(요 21:7-14)










요한복음 21:7~14

7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8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9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10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11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12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13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14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설교문


1. 밥은 먹었느냐?


지난 2월 1일 유튜브를 통해 천연기념물(제243-1호)인 겨울 철새 독수리의 먹이활동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대략의 내용은 이렀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임진강 얼음 위에 쇠기러기 1마리가 죽어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10여 마리의 까마귀가 몰려들어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잠시 힘센 까마귀부터 쇠기러기 사체를 뜯어먹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어른 키만큼 큰 독수리가 넓은 날개를 펴고 활강해 날아들었습니다. 순간 까마귀들은 독수리의 위용에 놀라 주변으로 물러섰습니다.


독수리는 곧바로 강력한 발과 발톱으로 쇠기러기를 누른 채 부리로 뜯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까마귀 떼가 주위를 둘러싼 채 먹이를 차지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독수리는 가끔씩 날개를 퍼덕이거나 부리로 쪼아버릴 듯한 으름장으로 까마귀떼를 물리쳤습니다. 조금 있다 천연기념물(제243-4호) 흰꼬리수리 2마리가 나타났지만, 먹이를 독차지한 독수리가 고개를 들어 무서운 눈빛을 보내자 차마 다가가지 못한 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기를 20여분 지켜보던 흰꼬리수리는 먹이를 포기한 채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1시간에 걸쳐 쇠기러기 1마리를 뼈만 남기고 모두 먹어치운 독수리가 날아올랐습니다. 그제야 주변에 대기 중이던 까마귀 10여 마리가 몰려들어 남은 뼈에 붙은 조그마한 살점을 뜯어 먹기 위해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힘과 엄격한 서열이 존재하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사이좋게 같이 나누어 먹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강한 존재가 약한 존재를 배려해 먼저 먹인 후 자신이 먹는 경우는 어미가 새끼에게 하는 것 이외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와 자신의 먹이를 나눈다는 것은 본능을 거스르는 행위이고, 자신의 생명을 나누는 것과 동일하다 하겠습니다.


유럽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신선했고, 따뜻했던 것은 음식점이 아니라, 각 가정집에서 함께 나눈 식사였습니다. 참 많이 초대받았고, 부담없이 방문해서 밥을 얻어 먹었습니다. 저의 집 역시도 매주일 오후 적게는 10명의 청년들부터 많게는 30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와서 냉장고를 싹 다 비우고 가곤 했습니다. 밥을 함께 나누며, 고단한 삶을 서로 격려했던 겁니다. 많은 이유(특별히 문동호&최지혜 집사부부의 헌신, 청년들을 집으로 초대해 극진히 대접해 주신 권사님, 집사님들의 사랑의 수고)가 있었지만, 별것 아닌 것 같은 밥이 청년들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일 교회로 모이는데 일조 했습니다.


이 시간 ‘밥’에 관한 시 하나를 나누며, 밥의 의미와 나눔에 대해 좀 더 새겨보았으면 합니다.



<밥>

-신지혜


밥은 먹었느냐

사람에게 이처럼 따뜻한 말 또 있는가


밥에도 온기와 냉기가 있다는 것

밥은 먹었느냐 라는 말에 얼음장 풀리는 소리

팍팍한 영혼에 끓어 넘치는 흰 밥물처럼 퍼지는 훈기


배곯아 굶어죽는 사람들이

이 세상 어느 죽음보다도 가장 서럽고 처절하다는 거

나 어릴 때 밥 굶어 하늘 노랗게 가물거릴 때 알았다

오만한 권력과 완장 같은 명예도 아니고 오직

누군가의 단 한 끼 따뜻한 밥 같은 사람 되어야 한다는 거


무엇보다 이 지상에서 가장 극악무도한 것은

인두겁 쓴 강자가 약자의 밥그릇 무참히 빼앗아 먹는 것이다


먹기 위해 사는 것과 살기 위해 먹는 것은 둘 다 옳다

목숨들에게 가장 신성한 의식인

밥 먹기에 대해 누가 이렇다 할 운을 뗄 것인가


공원 한 귀퉁이, 우두커니 앉아있는 이에게도

연못가 거닐다 생각난 듯 솟구치는 청둥오리에게도

문득 새까만 눈 마주친 다람쥐에게도 나는 묻는다


오늘

밥들은 먹었느냐



2. 먹이시고 어루만지시는 하나님


성경엔 하나님의 다양한 모습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모습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되어 그 속에 하나님의 속성을 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런 호칭들입니다.


-야훼(여호와) : 항상 살아계시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출 3:14)

-엘 로이 : 감찰하시는 하나님 (창 16:13)

-엘로힘 : 능력의 하나님

-엘샤다이 : 전능하신 하나님 (창 17:1)

-아도나이 : 주님 되신 하나님

-여호와 닛시 : 여호와는 나의 깃발 (출 17:15)

-여호와 라파 : 치료하시는 하나님 (출 15:26)

-여호와 샬롬 : 여호와는 나의 평강 (삿 6:24)

-여호와 삼마 : 여호와가 거기 계신다 (겔 48:35)

-여호와 이레 :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 (창 22:13∼14)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은 다양하고 여럿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양한 이름을 소개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다면적이고도 총체적으로 알아가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시편 9:10이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라고 고백했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써 그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잠언 18:10이 증거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에게 ‘견고한 요새’가 됩니다. 뜻하지 않고, 원치 않던 상황이 우리를 짓누를 때 우리가 알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실 뿐 아니라, 넘어진 자리에서 세우셔서 상황을 견디고 이겨가게 하시는 요새가 되십니다.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하나님의 이러한 이름 이외에 오늘 본문과 관련하여 제가 기억하고 믿는 하나님은 ‘먹이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마 6:26을 통해 이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1) 하갈을 먹이신 하나님


성경은 곳곳에서 이렇게 우리를 먹이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해 들려줍니다. 창 16장에는 고통 당하는 사라의 몸종 하갈이 등장합니다. 물론 그 고통의 1차적인 책임은 하갈에게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을 낳자 자신의 주인인 사라를 대놓고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분명 하갈의 잘못과 교만으로 인한 고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연약한 여인의 고통과 슬픔을 달래주셨습니다. 엄격함과 무자비함과 비판의 눈으로가 아니라, 이해와 용납과 사랑과 위로로 다가오셨습니다. 비록 그녀의 주인은 그녀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녀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품으셨습니다. 한때의 미숙함으로 인한 실수를 불쌍히 여기셔서 위로해 주시고, 그녀에게 마실 우물을 주셨습니다. 하갈은 그 우물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라고 지었습니다. ‘나를 살피시는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때의 경험적 지식이 그녀를 성숙시켰습니다. 죽기를 구했던 그녀를 살게 했습니다.


2) 엘리야를 먹이신 하나님


왕상 19장에 보면, 하갈처럼 죽기를 청하던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엘리야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 850명과 홀로 맞짱을 뜨며 믿음의 아이콘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불로 응답하심으로써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참 신이심이 드러내셨습니다.


이 일 후에 아합왕이 급히 갈멜산에서 내려와서 부인 이세벨에게 갈멜산에서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이세벨이 자기의 종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이세벨의 독기어린 말을 들은 엘리야는 두려운 나머지 남유다 왕국의 최남단인 브엘세바까지 도망쳤습니다. 광야 한켠의 로뎀나무 아래에서 그는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며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이렇게 구했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왕상 19:4)

‘넉넉하다’는 말은 ‘살만큼 살았고 할 일도 했다.’는 뜻입니다. 공동번역은 이를 ‘이제 다 끝났습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다’는 말은 ‘조상들에 비하면 더 못한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엘리야는 자기 인생을 매우 비관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 자신의 목을 들이대며 죽여 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의 이런 모습이 상상이 되십니까? 그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며 3년 6개월 동안 하늘에 비가 내리지 않도록 했던 선지자입니다(왕상17:7). 사르밧 과부의 집에 복을 빌자 통의 밀가루와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도록 한 사람입니다(왕상 17:14). 그녀의 죽은 아들을 기도하여 살려 주었던 사람입니다(왕상 17:22). 갈멜산에서의 승리 후 하나님께 기도하여 3년 6개월만에 비가 내리도록 한 사람입니다(왕상 18:45). 이런 사람이 자기를 죽이겠다는 왕비 이세벨의 말 때문에 줄행랑을 치고 죽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말이 안되고 이해가 안됩니다. 혼을 내고, 꾸중을 해야 합니다. 뒷통수를 후려쳐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십니다. 사자를 보내 자고 있던 엘리야를 어루만져 깨우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서 먹으라.”(왕상 19:5)


엘리야가 일어나서 보니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은 죽기를 구하며 잠이 든 엘리야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잠에서 깬 엘리야는 일어나 먹고, 다시 잠을 잡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또다시 다가와서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깨웁니다. “일어나 먹으라.” 엘리야는 일어나 또 다시 차려진 그 음식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움 속에서 죽기를 구하던 엘리야를 그저 품으셨습니다. 그의 잘잘못을 따지며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그의 지친 몸과 마음을 위해 2번이나 숯불을 피워 떡을 굽고, 마실 물로 위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먹이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살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지친 엘리야를 위한 하나님의 위로가 가장 부드럽고 짠하게 드러난 부분이, 왕상 19장 5절, 7절 속에 반복된 ‘어루만지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נָגַע(나가)입니다. 이 동사는 하나님께서 당신께 속한 사람을 어루만져 주실 때 사용되었습니다(단8:18, 10:16),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루만져 주신 대상은 필히 변화되었습니다.


이 특별한 만지심과 음식으로 기력이 회복된 엘리야의 행동을 왕상 19:8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호렙산(시내산)에 이른 엘리야는 그곳에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부르시는 그날까지 그때 받은 소명을 다 감당하다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베푸신 음식은 사람으로 두려움을 딛고 일어서게 합니다. 어렵고 아프고 힘든 현실을 딛고 일어서게 합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걱정에 잠 못드는 밤에도, 포기한 마음으로 울다 잠이 든 밤에도 다가와 어루만지십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시고, 따뜻한 음식으로 새 힘을 갖게 하십니다. 엘리야와 함께 하셨던 이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3. 와서 조반을 먹으라


복음서를 읽다보면 예수님께선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식사하시는 것을 즐거워 하셨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얼마나 좋아하셨으면 예수님을 비방하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일컬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눅 7:34)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듯이, 주님은 밤새도록 헛그물질에 지친 제자들을 위해 손수 아침정찬을 준비하셨습니다. 이른 새벽 모닥불을 피워 떡을 굽고, 생선을 손질하여 구운 후 지친 제자들을 초대하셨습니다. 미안함과 죄책감에 차마 수저를 들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 친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떡과 생선을 건네주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날 제자들이 먹은 음식은 단순한 떡과 생선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갈이 마신 우물이었고, 엘리야가 먹은 떡이었습니다. 엘리야를 어루만지시던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새롭게 소명을 받는 하나님의 산 호렙이었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는 주님의 말씀은 “일어나 먹으라”며 엘리야를 깨우시던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날 갈릴리 호수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상을 베푸시는 거룩한 광야였습니다. 제자들의 잔이 넘치는 광야의 식탁이었습니다. 그들의 평생에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따르는 그 시발점이었습니다(시편 23). 부르시는 그날까지 받은 소명을 다하는 새로운 시작, 호렙산이었습니다.



4. 세상의 밥이 되어


제자들을 먹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줍니다.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 속에서 존재해야 할지를 제시해 줍니다. 그것은 밥을 나누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세상을 위한 밥이 되는 교회입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쌍용차 해고노동자). 그분들이 일상을 복원하기 위해선 ‘나도 옛날에 이렇게 살았지, 이렇게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지'라는 자극을 일상에서 많이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분이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 식당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치유의 시작이자 핵심은 일상의 기본인 밥을 먹는 것입니다. … 엄마가 따뜻한 밥을 해 주듯이 기본적인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상처받은 사람들을 일상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중에서 핵심적인 것이 바로 밥을 먹이는 것이랍니다. “밥힘으로 산다”는 말처럼 밥은 지친 몸에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우리 모두 밥 잘 먹고 힘내었으면 합니다. 우리만 잘 먹을게 아니라, 주변의 어려운 이들과 같이 밥을 나누며 그분들도 힘나게 했으면 합니다. 희망이 꺾인 사람들이 다시 기운을 내어 일어서도록 돕는 밥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친 그분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하나님의 손길이 되었으면 합니다.


끝으로 한 그리스도인이 이사야 58장에 기록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을 읽은 뒤 쓴 7년 전 글을 나눕니다([박복규수전] 나는 기독교인이다 2015.10.30, 딴지일보) 이분의 다짐을 보며, 이번 주 수요일(2월 17일)부터 시작하는 사순절을 어떤 마음과 자세로 보내야 할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올바른 금식은 끼니를 걸러 아낀 돈을 제 주머니에 넣는 게 아니라, 고아와 과부를 위해 바치게 되어 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께도 염치없이 부디 여기 조금이나마 동참해 주십사 부탁하려면 나부터 먼저 조반을 대접해야 하는 것이 솔선수범의 원칙일 텐데, 그러나 요즘 들어 지지리 돈이 없는 나로서는 도대체 현금을 어떻게 만들까 요리조리 궁리를 거듭했다. 그러다 유레카! 드디어 발견했다! 내 하루 식비가 8,000원 정도 드는데(눈에 불을 켜고 생전 찌꺼기 같은 것만 사다 먹어서) 오늘부터 10일간 금식해서 그 돈을 밀양의 조반 기금으로 만들기로 작정했다. …(중략)…


내가 초라하고 박복하다고 생각하는 날에 나는 늘 그 말씀을 떠올린다. "와서 조반을 들라." 그러면 부자는 못되더라도 떡과 생선이나마 조촐하게 차린 조찬을 이웃에게 대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 생긴다. 어차피 사람으로 태어났으니까. 남에게 아침 한 번은 먹여 줘야지. 다 제 것 긁어모으기에 혈안이 된 이 세상에서 우리라도 지친 이들에게 조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로드샵에서 아이섀도 한 구 살 돈, 커피 한 잔 마실 돈, 우리가 별생각 없이 쓰는 잔돈들이라도 모아서 힘을 합쳐 밀양 송전탑 아래의 이불이 되고 컵라면이 되고 생수가 될 수 있다면 이 밤에 적어도 당신 덕분에, 어떤 사람들은 따뜻할 수 있을 테니까.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지치고 곤한 사람들을 위해 친히 음식을 차려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슬픔에 잠든 어깨를 어루만지시며 토닥이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드립니다. 친히 생명의 빵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을 찢어 나누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이 사랑으로 힘을 내어 일어서기를 원합니다. 그 능력으로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따뜻한 밥을 짓고 나누는 그리스도인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세상의 밥으로 드리는 교회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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