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2021.02.07 움오름 주일 설교 - "와서 조반을 먹으라 1"(요 21:7-14)










요한복음 21:7~11

7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8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9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10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11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12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13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14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설교문


1. 모닥불, 생선, 떡


누군가 제게 성경66권, 1189구절 중에 가장 따뜻한 부분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없이 오늘 본문(요 21:7-14)을 꼽을 겁니다. 인간의 오감을 자극할 뿐 아니라, 마음을 만지는 감성적 터치가 있는 말할 수 없이 따사로운 이야기입니다. 눈을 감으시고, 제가 드리는 말씀을 따라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시면 좋겠습니다.


어스름한 새벽, 서서이 먼동이 밝아옵니다. 잔물결 이는 갈릴리 호수 위에 엷은 빛이 드리웁니다. 그런데 별안간 파동이 일며 수많은 물고기들이 그물 속에서 은빛 비늘을 드러내며 펄떡입니다. 긴 밤의 무력감과 고요함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생기와 활력이 자리합니다.


펄떡이는 물고기와 제자들의 탄성을 뒤로 한채 베드로가 돌아섭니다. 황급히 겉옷을 걸치고 물 속으로 뛰어듭니다. 거칠게 물살을 가르며 첨벙이던 그는 90여 미터를 헤엄쳐 호숫가를 향합니다. 베드로가 향하는 물가엔 모닥불이 피워져 있고 한분이 서 계십니다. 물가로 나온 베드로는 젖은 옷에 물을 줄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도 곧장 모닥불가의 그분께로 뛰어 갑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베드로와의 3번째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아직 다른 제자들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더 지나야 합니다. 반가움과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하는 베드로는 그저 주님을 바라만 보고 서 있습니다.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불 가에 앉게 하십니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는 장작불의 무곡에 맞춰 불꽃이 흥겨운 춤을 춥니다. 아, 어디선가 본듯한 장면입니다. 주님께서 잡혀 대제사장의 뜨락에 서 계시던 날 새벽입니다. 한 밤의 차가운 공기에 떨던 베드로는 그때도 모닥불 가에서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종들 틈에 몰래 숨어 있던 그에게 여종이 다가와 “갈릴리 사람, 예수의 제자 맞지 않느냐?”고 묻는 말에 모른다며, 저주까지 하며 맹세하던 그날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차마 들 수 없어 베드로는 고개를 떨구고 있습니다.


그 사이 젖은 몸이 조금씩 데워집니다. 불 그림자가 고개 숙인 베드로의 얼굴 위에서도 어른거립니다. 지글거리며 생선이 익어갑니다. 이미 구운 빵은 데워진 돌판 위에서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 말없이 그저 주님과 숯불을 앞에 두고 말없는 말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눈을 뜨셔도 됩니다. 어떠십니까?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그림의 느낌은 어떻습니까? 방금 그려보신 그 그림 속에 렘브란트처럼 우리 자신을 그리신다면 어느 위치에 어떤 모습으로 그려 넣으시겠습니까?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온통 자극시키는 이런 장면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장면에서 묘미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진한 감성적 터치가 이어집니다. 성경에서 가장 따뜻한 이 부분을 함께 살펴 보시겠습니다.



2. 153마리


요 21:12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이 부분이 왜 감성을 자극하고 터치합니까? 무언가 잘못 해본 사람은 압니다. 꾸중 들을 일이 있는데, 비난 받을 일이 있는데 아무 말씀하지 않습니다. 조목조목 비판하고 힐난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와라, 밥 먹자”는 말씀입니다. 이게 마음이 와닿습니다.


6명의 제자들은 잡은 물고기를 작은 배에 싣지 못한 채 그물을 물가로 끌고 왔을 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쏜살같이 달려가 다른 제자들과 같이 그물을 물 밖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그리곤 잡은 물고기 중 몇 마리를 골라 담아 주님 계신 불가로 가져 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불 위에 생선을 굽고 계셨는데, 왜 제자들이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고 하셨을까요? 복잡한 것 같지만,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손수 굽고 계셨던 것이 ‘사랑의 증거’라면,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는 ‘기적의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이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제자 요한에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는 11절 속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하던 때는 AD 90년경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 잡던 이 사건이 일어난지 무려 60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요한은 그때 잡은 물고기가 모두 153마리라는 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물고기를 세는 동안 베드로가 몇 마리를 먼저 가져 갔음에도 그것까지 포함해 그때 그 마리수를 명확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받은 충격이 엄청났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날 그 물고기들은 사랑의 증거인 동시에 기적의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3. 와서 조반을 먹으라


부활하신 주님을 앞서 2번이나 직접 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옛 생활로 되돌아간 제자들에게 얼마나 하실 말씀이 많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저 “밥 먹으라”고만 하셨습니다. 이 부분을 볼 때면, 이와는 완전 다르게 행했던 제 이야기가 떠올라 얼굴이 후끈거리고 합니다. 물론 당시에는 나름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난 후 당사자에게 참 미안한 맘이 일어나곤 합니다.


이전교회에서 20대 청년부에 이어 30대 청년부를 총괄하고 있던 어느날 수요예배에 후배목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30여명에 가까운 전임목사들은 예배시간 전후해 조를 이루어 해야 할 일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각자가 위치한 안내자리가 있었습니다. 해당 후배목사는 차량안내였는데, 같이 안내하던 목회자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는 겁니다.


다음 날 그 목회자를 증인으로 삼고, 그 후배목사에 대해 그때까지 들어왔던 민원사항을 10가지로 A4에 정리해서 그를 만났습니다. 한적한 별관사무실 문을 닫고 3명이 자리했습니다. 후배목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이 종이에 기록해온 10가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저에게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해 주고, 저를 제발 납득시키고, 설득시켜 주었으면 합니다.”


이 말 이후에 저는 지난 밤 사라진 일부터 그를 추궁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있었다는 말에서 시작하여, 점점 신촌의 서점에 갔다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서점, 무슨 책을 샀느냐는 이어지는 질문들에 계속 변명같은 거짓말을 하다 그는 결국 수요예배를 드리지 않고 그냥 집으로 퇴근했다는 것을 실토했습니다.


그의 거짓말에 화가 올랐지만, 차분하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는 몇년 전 수술 후 신장이 하나 밖에 없는 관계로 갑자기 컨디션이 뚝 떨어질 때가 있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데, 참 안쓰러웠습니다. 그럴 때면 내게라도 말하면 충분히 배려해 줄건데,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했더니 두려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날도 저는 선배요, 형으로서가 아니라, 관리자와 선생으로 그를 문책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날 잘 마무리한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날 이후 후배 목사는 제 눈치를 더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왜 그랬을까요? 저도 나름 잘 해보겠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이유는 다른 데 없습니다. 제 맘 속에 그를 향한 모닥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밥 대신 차가운 말로 그를 대했기 때문입니다.


제 지나온 걸음이 이렇다 보니, “와서 조반을 먹으라”는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한 없이 따뜻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말없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아픈 경험을 정리하며, 본문 속에서 함께 살펴볼 부분이 있습니다. ‘조반을 먹다’라는 동사가 ἀριστάω(아리스타오)인데, 우리말로 아침밥이라고 번역했지만, 눅 11:37에 보면, 점심이라고 번역했기도 합니다. 이 부분을 정리하면, ἀριστάω(아리스타오)는 아침밥이나 점심밥을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잘 차린 ‘정찬’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캄캄한 새벽, 제자들이 헛그물질에 정신이 없을 때에 그들을 위해 손수 생선을 손질하고, 빵을 빚으며 정찬을 마련하셨습니다.


이른 새벽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지어보셨는지요? 차가운 물에 시린 손을 달래며 재료를 다듬고 준비한다는게 여간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별로 갖춰진 도구가 없는 물가에서 여럿 제자들을 위해 새벽부터 정찬을 준비하는 것은 여간 번거롭지 않습니다. 이 사랑의 수고를 주님은 기꺼이 감당하셨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13절을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지은 죄가 있으니 와서 밥 먹으라고 해도 제자들은 뻘쭘하게 서서 먹지 못합니다. 쭈뼛쭈뼛 서로 눈치만 살핍니다. 보다 못한 주님께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직접 건네십니다. 생선도 일일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네십니다. 어찌 이리 품이 넓으신지 눈물이 다 납니다.


신학교 다닐 때 제가 다니던 교회(주님의교회)에서 각 부서별로 성경이야기를 연극화하여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그때 후배(박경삼)가 맡고 있던 유년부 교사들이 했던 연극의 한 부분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이 요 21장이었습니다. 제자들을 위해 모닥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신 주님께서 왕사발면에 물을 가득 부어서 제자들에게 건네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던 장면입니다.

“큰 사발 먹고 큰 일꾼 되어야지~”


모두들 배를 잡고 웃는 가운데 스며 오는 진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언제쯤이면 이 사랑, 이 맘을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을까요? 흉내라도 내볼 수 있을까요?



4. 타조알


제가 너무 무겁게 말씀을 나눈 것 같습니다. 지난 주중에 샀던 책(‘내 마음을 담은 집’, 서현, 효형출판)을 읽던 중 저를 웃음나게 했던 우화를 나눔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수탉이 동네 암탉들을 죄 불러모았습니다. 어디선가 타조알을 주워 온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지금 바깥 세상에서는 이런 알을 낳고 있습니다!”


그 무거운 타조알을 수탉이 어디서 주워 왔는지, 그 말을 들은 암탉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이야기는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아마도 타조알을 들고온 수탉은 계몽감에 충만했을 겁니다. 어쩌면 선진국의 사례라며 전파하고자 했는지도 모릅니다. 웃으며 수탉의 타조알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저 자신을 가만히 되돌아 보았습니다. 저도 타조알을 들고 “지금 바깥 세상에서는 이런 알을 낳고 있습니다!”라고 떠들며 다닌 것은 아닌지를.


이번주간에 구정 설명절이 있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민족대이동이 있겠지만, 5인 이상 집합금지명령이 있는 관계로 예전만 같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과 만나고 인사 나누며 보내게 될 겁니다. 우리 이번에는 타조알을 들고 가족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바라는 것 많겠지만, 그저 모닥불 곁에서 온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할 이야기 많겠지만, 따뜻한 정찬을 나누고 오셨으면 합니다.


오늘 본문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주일에 ‘와서 조반을 먹으라 2’로 나누겠습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팔딱팔딱 그물 속 물고기들이 요동치면

고요한 호수 위엔 성급한 파장이 일고


타닥타닥 장작불이 무곡을 연주하면

길고도 짧은 불꽃은 곡선을 그린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는 말씀에도

쭈삣쭈삣 눈치만 살피니

주님은 한 제자, 한 제자에게

갓 구운 빵을 건네고, 생선을 주신다.

-YOO HO



하나님~

얼음같은 말 대신 모닥불로 만나게 하옵소서.

차디찬 정죄 대신 따뜻한 밥을 나누게 하옵소서.

타조알을 들어 계몽할 것이 아니라,

그저 말없는 말을 나누고,

밥을 나누는 가족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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