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2020.09.06 움오름 주일 설교 - "예수를 거기 두니라"(요 19:38-42)

9월 13 업데이트됨








요한복음 19:38~42

38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39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41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42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설교문


1. 유대인들은 어떻게 매장을 했나?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를 지닌 예루살렘은 국제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엔 유대교의 시작지였으며, 기독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성지이며, 이슬람교에겐 무함마드(Muhammad)가 승천한 장소이기도 합니다(*fact: 632년 6월 8일 메디나에서 무함마드 사망).


대개의 경우 어떤 도시를 방문해서 도시전체를 조망할 때 전망대나 고층빌딩에 올라갑니다. 예루살렘의 경우 도시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은 감람산입니다. 도시를 보기 위해 감람산을 올라가다 보면, 산 허리에 가득찬 직사각형 돌들의 집합장을 보게 됩니다. 마치 채석장, 또는 돌조각장 같은 느낌이 드는 그곳은 다름아닌 유대인 공동묘지입니다.


일명 유대인들이 가장 선호하고 묻히기를 원하는 명당인 셈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감람산은 최고의 명당이 되었을까요? 지금까지 7만여개의 무덤이 들어섰고, 또 현재도 무덤이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감람산 묘지는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장을 하거나, 다른 곳에 매장을 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바로 이것이 감람산이 최고의 명당으로 꼽히는 이유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부활을 믿는 유대인들에게 화장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화장 자체가 금기사항입니다. 그러니 여태껏 이스라엘에는 화장터가 없었습니다. 물론 드물게 화장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들은 주로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신념으로 화장한 경우입니다. 종교적 신념이 화장을 허락지 않고, 또 육체적 부활을 믿다보니 유대인들은 하나같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연하여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가장 예루살렘성에 가까운 시신부터 부활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감람산은 최고의 명당이 되었습니다. 한정된 장소에 원하는 사람은 많다보니 현재는 유대인 중에서 엄격한 심사를 통해 자격이 있는 사람만 매장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성지연구소 이강근 목사의 글과 메신저를 통해 확인>


예수님 당시에도 장례는 매장을 추구했지만, 이웃한 이집트나 지배국인 로마와는 다른 매장법이었습니다. 이집트의 경우는 아시는 바와 같이 시신의 내장을 제거한 뒤에 방부처리하는 일명 ‘미라’식 매장이었습니다. 로마의 경우엔 지하동굴 및 복도식의 카타콤 매장법이었는데, 유대사회는 이와 조금 다른 2가지 매장법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주로 가난한 이들이 선호하는 평토장이었습니다. 눅 11:44에 보면, 땅바닥에 시신을 묻는 이런 평토장은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 식별이 불가하여 사람들이 그 위를 밟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둘째는 부유한 사람들이 선호하는 동굴무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거의 석회암(Limestone), 백악질(Chalk), 사암(Sandstone) 등으로 되어 있어 스며든 빗물로 석회성분이 녹으면서 작은 굴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부자들은 이런 굴들을 사서 집안 묘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부인 사라를 위해 샀던 가족묘 ‘막벨라 굴’이 대표적인 이런 경우입니다. 또 다른 경우는 사암으로 형성된 바위를 파서 시신을 선반 위에 올려놓는 경우인데,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을 위해 제공한 묘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2. 예수님을 거기에 매장한 3가지 이유


오늘 본문은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신을 향품처리하여 장례를 치르는 장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장지로 그들이 선택한 곳은 골고다 주변의 새무덤, 즉 새로 만든 동굴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자신의 무덤을 제공한데는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그날이 유대인의 준비일이었기 때문입니다.

: 42절을 다시 한번 더 봉독하시겠습니다.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날은 유월절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우리의 날짜 개념으로 보면, 하루 전날이지만, 유대인들의 날 개념으로 보자면, 유월절이 시작되는 저녁이 되기 전, 바로 낮시간입니다.


사복음서를 종합해 보면,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시간이 오후 3시, 해 지기 전,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까지 3시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수차례 말씀드렸다시피 유월절은 유대인들의 3대 절기 중에서도 가장 크고 중요한 명절이었습니다. 율법상 반드시 이 날을 지켜야 하는 유대인이었던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골고다 부근 언덕에 위치한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둘째, 42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무덤이 처형장과 가까왔기 때문입니다.

: 첨부된 지도를 통해 보시는 바와 같이 십자가 처형장인 골고다는 예루살렘 성전 위, 성 밖에 위치했습니다(*첨부된 그림 참조). 예수님을 감람산 중턱의 공동묘지에 매장하려면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가 기드론 시내를 건너 예루살렘 동쪽 구릉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명절을 맞아 수만의 유대인 순례객을 뚫고 도심을 통과한다는 것이 그들에겐 시간도 촉박했겠지만, 여간 부담이 아니었을 겁니다.


셋째, 위 2가지의 현실적인 이유와 더불어 매우 중요한 하나의 오묘한 이유가 여기엔 있습니다. 남왕국 유다의 제10대 왕인 웃시야가 죽던 해인 B.C.739년부터 제14대 왕인 므낫세(B.C.679-642년)가 통치하던 시기인 B.C.680년경까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남유다에서 활동한 선지자가 이사야입니다.


오실 메시야에 대한 가장 많은 예언이 기록되어 있는 이사야서에는 예수님의 죽음 이후 장례에 대해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사 53:9입니다.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아리마대 요셉이 죽은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무덤을 제공한 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했던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존귀한 공회의원이었으며(막15:43),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고대했던 아리마대 요셉은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눅23:50-51). 동시에 은밀히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던 '시름하는 동조자(the anxious sympathizer)’였습니다.


몇주에 걸쳐 말씀드리지만, 그가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루겠다는 것은 혹시라도 주어질 대제사장 무리의 보복과 제제를 받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한 행위였습니다. 그가 지니고 있던 부와 사회적 명예까지도 모두 잃을 수 있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큰 위험부담을 안고 그는 왜 나사렛 예수의 시신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무덤을 예수님께 제공했을까요?


그것은 그의 삶이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던 신앙이었으며, 그가 하나님 말씀을 구현해 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아리마대 요셉의 행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라며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내어드린 동정녀 마리아의 결단과 같은 류의 행위였습니다. 나아가 이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한 부분처럼 “나라가 임하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마 6:10)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인류의 죄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그리스도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신앙의 행위였습니다.



3. 혼합주의의 시대의 제자란?


장례 중 고인에게 입히는 옷을 일컬어 수의(壽衣)라고 합니다. 저의 유년시절만 하더라도 동네 어르신들 중 많은 분들이 생전에 삼베로 만든 수의를 미리 준비하시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의를 생전에 준비해 둔다는 것은 떠날 준비를 한다는 의미인 동시에 남은 삶을 잘 마무리하겠다는 어른들의 마음의 표시였습니다.


부자요, 공의회원이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기다렸던 아리마대 요셉은 생전에 자신의 무덤을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무덤을 미리 준비했다고 해서 그가 수십년간 피라미드를 건설하여 영생불사의 존재가 되겠다던 이집트의 파라오와 같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그만큼 오늘의 의미와 무게를 알고 한정된 삶을 종말론적으로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 그의 출생 700년 전 선포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그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통로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아리마대 요셉의 삶과 행동을 이렇게 종합적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요 19:38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라는 구절을 지극히 확대한 나머지 그를 ‘회색신앙자’로 바라봅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말씀드리지만, 검은 색과 흰색은 색체와 명도에 있어 분명한 경계를 가집니다. 이 색에서 저 색으로 가려면 반드시 통과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게 두 색을 혼합한 회색지대입니다. 신앙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회색지대는 의심의 시간이고, 회의하는 때일 수 있습니다. 비신앙에서 신앙으로 가기 위해선 필히 거치는 지점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아리마대 요셉이 회색신앙인이었다고 하더라도 크게 그것만 갖고 이야기할 바는 아니라고 봅니다. 되려 오늘날 우리와 동떨어진 사람, 또는 지극히 위인화된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지극히 비슷했다는 사실이 되려 희망이 됩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를 일컬어 한마디로 ‘포스트모던시대’라고 합니다. 국어사전에 보면, ‘포스트모던하다(postmodern)하다는 말은 ‘(형식이나 경향 따위가)기존의 틀을 따르지 않아 새롭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포스트모던이라는 것은 지금껏 절대적인 지위를 누려오던 신앙이나 권위, 또는 진리라고 하는 것들이 인정되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분야에서 경계가 모호합니다. 절대 진리가 없고, 혼재와 혼합의 다양성이 존중받습니다. 사회가 이러하다 보니, 신앙도 자연스레 이런 부분을 선호합니다. 1980년대나 1990년대에만 하더라도 다니엘과 세 친구, 또는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신앙의 모델이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다”며 끝까지 충성하고 신앙을 지키며 죽겠다는 모습이 신앙인의 롤모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되려 회색신앙인이라고 여겨지는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모습이 더 사람들에게 다가오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을 보는 것은 너무 단선적으로 보는 겁니다. 사람에겐 우리가 보지 못하는 많은 다층적 구조가 있습니다. 그 속에서 생의 사건과 의미있는 일을 겪으며 끝없이 움직입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의심의 지대에 있었다고 해서 영원한 회색신앙인이 아니듯, 한번 신앙의 자리에 있었다고 마지막까지 흔들림없는 믿음의 사람일 수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는 가운데 믿음을 향해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오늘도 걸음을 내딛음으로 인해 우리는 조금씩 더 믿음의 색을 덧입어 가는 겁니다.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4. 네 손의 떡 한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상가든 논 한가운데 천막이든 간에 십자가를 내걸기만 하면 사람들이 교회로 나아오던 때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신뢰하던 그런 때에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어두워지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신뢰와 매력을 상실했을 때, 특히 신앙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을 때에 여전히 신앙을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키기란 여간 부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때가 바로 이와 같은 때가 아닐까요? 성경에 보면, 이런 상황의 극한적인 때를 보여주는 것이 엘리야 선지자(BC 900년 - 849년) 시절입니다. 아합왕의 폭정과 왕비 이세벨의 바알숭배정책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호와 신앙을 떠났을 때 선지자로 산다는 것은 죽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 맘, 그런 결단으로 하나님의 말씀(“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다”)을 과감히 왕에게 전했는데, 하나님은 느닷없이 이제는 “숨으라”고 하십니다.


도대체가 햇갈리는 믿음의 때에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요단강 앞 그릿시냇가에 몸을 숨깁니다. 부정한 새로 인식되던 까마귀가 날라다 주는 떡과 고기로 하루하루 연명해 갑니다. 하늘이 주시는 대로 먹으며 생을 맡기는 삶이었습니다.


마치 모세를 기르시기 위해 유대인의 적이었던 바로의 공주를 사용하셨듯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제일 박해하던 청년 사울을 택하셔서 사도 바울로 세우시듯이 하나님은 불결한 새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을 살려 가셨습니다. 이 속에서 선지자 엘리야는 인간의 고정관념을 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언제는 “외쳐라”고 하셨다가, 이제는 “숨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변덕’ 앞에서도 그는 마음으로 순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릿 시냇가에서 엘리야를 훈련시키신 하나님은 마침내 그 시내를 마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바위에서 생수가 터지게 해서라도 그 시내만은 마르지 않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외를 허락지 않으시고, 엘리야를 위기 앞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느닷없이 시돈(현재 레바논의 SIDON)의 한 여인을 찾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릿 시냇가에서 사르밧까지는 120km, 사막같은 광야를 지나야 했습니다. 충분한 물도 양식도 준비해 주심없이 그냥 떠나라 하십니다. 이때 엘리야의 심정이 어떠 했겠습니까? 피곤하고 지쳤는데,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광야의 땡볕을 걸어가라고 하시니 얼마나 힘들고, 또 섭섭했겠습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엘리야로 떠나가게 하셨고, 엘리야는 군말없이 순명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씀하신 시돈의 한 여인에게 도착해 보니, 부자는 커녕 형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홀로된 여인이 자식을 먹여 살리기에도 버거워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하나님의 그 선지자’ 아닙니까! 가난한 여인의 마음을 잘 알것 같은 엘리야가 불쌍한 그녀에게 한 말입니다. 왕상 17:10-11입니다.


10절: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1절: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니, 동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으면 선지자가 어떻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겠습니까? 가뭄으로 인해 물이 금같은 때에 물을 달라고 해서 가지러 가니까 이제는 없는 양식마저 내놓으라고 합니다. 위로해 주고, 뭐라도 하나 챙겨주려고 해야 그게 하나님의 사람이고, 선지자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없고 가난한 여인의 손의 떡 하나마저 요구하니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여기에 신앙생활의 비밀이 있고,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점점 더 위험한 곳으로, 더더욱 최악의 상황으로 이끌려 가봤던 선지자는 막다른 곳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역사하시던 하나님의 섭리를 그는 직접 몸으로 겪어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역사를 위해 불쌍한 한 여인을 더 끝으로 내몰았던 겁니다.



5. 그 통의 가루, 그 병의 기름


엘리야의 무리한 요구에 가난하고 불쌍한 여인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왕상 17:12 입니다.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지금도 여인 홀로 자녀를 키우며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철저한 남성중심사회였던 2,700년 전에 그것도 비가 내리지 않아 흉년이 연이어지던 때에 가난한 여인이 그렇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녀에겐 상시로 준비된 빵이 없었습니다. 양식을 담아두던 통 안에는 겨우 한 움큼의 밀가루와 그것을 구울 기름 몇방울 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 불쌍한 여인은 그 사실을 선지자에게 과장함 없이 있는대로 고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고 생을 마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더이상 어떠한 빛도, 일말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말 성경의 번역과 달리 히브리어 원문의 순서를 따라 해석해 보면, 여인의 말 속엔 다른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이런 겁니다. “한 움큼의 밀가루와 기름 조금은 있습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여인의 대답을 보면, 그녀는 없는 것을 먼저 보지 않고, 조금이지만, 있는 것을 보는 여인이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책임감 강한 여인이었습니다. 자기 자녀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고자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왕하 6장에 보면,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대에게 포위되었을 때 굶주렸던 여인들이 의논하여 아들들을 삶아 먹었던 기록이 나옵니다. 자기 살기 위해 자식이라도 희생시키며 잡아먹던 비슷한 시대의 어머니들에 비하면, 이 여인은 마지막까지 자기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던 책임감 강한 어머니였습니다.


곤란한 중에도 할 수 있는 부분을 다하고, 책임을 다하던 사람, 없는 중에도 조금이라도 있는 부분을 바라보며 사실을 직시하던 사람. 바로 이 사람이 시돈의 가난한 여인이었고, 아리마대 요셉이었습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이 여인의 대답을 경청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상 17:13-14입니다.


13절: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엘리야의 말을 보면,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누가봐도 막막하고 두려운 상황인데, 엘리야의 요청은 상황을 더 두렵게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먼저’라는 단어를 말했습니다. “먼저 나를 위하여 … 내게로 가져오라”


우리라면 이러한 요청에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아마 대동소이할 겁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요청에 지극히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우리들이 보기엔 거절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여인은 극히 어려웠던 때에 지극히도 불합리한 신앙의 요구 앞에 순종합니다. 그 결과를 왕상 17:15-16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15절: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절: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6.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고단한 세상, 그렇지 않아도 변수가 많아 힘든데, 전염병까지 장기화되면서 더더욱 어려운 시절입니다. 본인들은 나라를 위한 일이었다고 힘주어 말하지만, 극우화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방역에 비협조적인 행위와 일탈행위로 인해 교회에 대한 인식과 신뢰는 이 땅에 기독교가 전해진 이래 최저 밑바닥을 내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탈기독교화, 탈신앙화는 10대와 20-30대 속에서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중에 만난 한 장로님은 제게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우리 세대는 그나마 신앙생활을 했는데, 다음세대는 어떻게 전도하며 신앙생활하라고 이렇게 망가뜨려 놓을 수가 있습니까!”


이런 시대 속에서 신앙생활하는게 마냥 즐겁지 않으시지요? 가까운 사이라도 복음을 전하기가 민망하시지요? 그런데 이것 아시는지요? 여호와 신앙이 죽어가던 2,700년 전에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던 선지자와 여인이 있었습니다. 구조화되고 집단화된 극우 종교집단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며 따르는 이들을 위협하던 때에도 생명을 걸고 예수님을 장사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둡고도 참혹한 오늘날에도 믿음으로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그루터기같은 밑둥치를 직시하며 믿음의 눈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이가 엘리야 혼자인 것 같았지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의 사람들이 짙은 흑암의 시기를 밝혔던 것처럼 오늘도 무너지는 교회, 쓰러지는 교회를 일으켜 세워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록 회색지대에 머물던 것 같았지만, 믿음으로 일어서던 그들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을 입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 위에서 분명히 이루어 질 것입니다. 2,700년 전 믿음으로 의심의 시대를 밝혔던 엘리야와 가난한 여인처럼, 2천년 전 과감하게 자신의 무덤을 내어놓았던 아리마대 요셉처럼 말입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믿음으로 살기 힘든 시절입니다. 핍박이 심해서라기 보다는 부끄러워서, 민망해서, 고개를 들기가 어려워서 그러합니다. 하지만 시절이 아무리 그러하다 하더라도 믿음으로 자신의 시대를 밝혔던 신앙의 선배들 처럼 우리도 우리의 시대를 믿음으로 반응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코로나의 장기화로 인해 점점 더 코너로 내몰리고 극단에 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뉴스로 나옵니다. 이런 시기, 이런 사회 속에서 신앙의 그루터기 되는 교회, 그리스도인 되기를 원합니다. 긴 회색지대를 지나 온 만큼 더 선명한 믿음의 색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명하는 사람들 되기를 원합니다.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일하심 앞에 우리를 도구로 기꺼이 내어드리는 이 땅의 니고데모들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 구석구석, 희망없는 죽음의 자리에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며, 주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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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11:30am - 1: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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