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2020.08.16 움오름 주일 설교 - "다 이루었다"(요 19:28-30)








요한복음 19:28~30

28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29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설교문


1. 칼 바르트와 십자가의 예수


알프스 산지를 흐르는 2개의 지류에서 시작한 1,320km의 라인 강(Rhein)은 스위스의 한 도시를 지나면서 강줄기를 바꾸어 북쪽으로 흘러갑니다.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 독일의 레버쿠젠, 마인츠 등과 네델란드를 거쳐 마침내 북해와 만납니다. 여기서 문제 하나 드립니다. 이렇게 라인강의 흐르는 방향을 바꾼 스위스의 도시는 어디일까요?

바젤입니다. 바젤은 스위스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고, 주민의 2/3가 기독교 신자입니다.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바젤대학(Universität Basel)과 수십 개의 수준 높은 박물관이 있는 일명 문화의 도시입니다. 아름다운 중세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이곳은 도시 자체가 아름다운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그곳 바젤엔 일반인들에겐 생소하지만, 신학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기독교인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한 인물의 삶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입니다. 바젤이란 도시가 라인 강의 물줄기 방향을 북쪽으로 바꾸었듯이, 자유주의 신학이 지배하던 시기에 그 물줄기를 신정통주의으로 뒤바꾼 사람이 바로 칼 바르트였습니다.


*간략한 보충 설명

1)자유주의 신학

: 계몽주의, 경건주의,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역사주의, 인본주의를 강조하며, 성서에 나오는 기적들을 이성과 자연의 원리, 과학, 심리학 등으로 해석하려고 함


2)신정통주의 신학

: Neo orthodoxy, 과학적, 정치적, 사회적 사상의 시각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기반으로 하는 기독교 본연의 신앙을 재정립하려던 움직임



바젤 시내엔 바르트가 마지막 생(1955-1968)을 보낸 생가(Bruderholzallee 26, 4059 Basel, CH)가 있습니다. 소박한 2층 집, 그의 서제에 들어가면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두 그림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르트가 가장 좋아했다는 모짜르트의 초상화이고, 다른 하나는 바르트 책상 앞에 있는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ünewald, 1470-1528)의 《이젠하임 제단화 Isenheim Altarpiece》의 한 부분입니다.



바르트의 신학의 기초가 되었다는 그 그림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불립니다. 바르트는 예수님의 수난을 그의 모든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아 신학과 영적 여정을 함께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의 이성에 더욱더 중심을 두며 신화적 요소를 배제하던 거대한 자유주의 신학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중시할 뿐 아니라, 위기상황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만이 유일한 희망이며 대안이 될 수 있음을 피력했습니다.


지난 주중 만난 한 분이 요즘 교회관련 과학강의와 sns 등에서 많은 활동을 하는 분(우종학 교수)과 창조신학과의 대립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제 의견을 물었습니다. 일례로 ‘지구의 나이는 6천년인가? 46억년인가?’라는 젊은 지구론과 오랜된 지구론의 상충을 비롯해 여러가지가 혼란스럽다는 겁니다. 움오름 가족님들을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게 우리 신앙의 근본적인 부분과는 큰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고집스레 한쪽을 잡고 그것이 신앙인냥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은 당시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인간의 언어와 표현 내에서 기록케 하신 하나님의 설명법입니다. 그러니 그 표현 하나하나에 집중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틀 안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시대의 사람들과 호흡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과학적, 합리적, 이성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신앙이 ‘신비’라는 초월성에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이 시대의 다양성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하겠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유일성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 십자가의 예수님과 “내가 목마르다”


1) 가상칠언


예수님 십자가 사건의 마지막 부분을 기술하고 있는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과 함께 어떻게 숨을 거두셨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복음서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모두 7개입니다. 그 말씀을 가리켜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하며,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정리합니다.


첫째 말씀 :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둘째 말씀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셋째 말씀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넷째 말씀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막 15:34; 시 22:1)

다섯째 말씀 : “내가 목마르다”(요19:28)

여섯째 말씀 : “다 이루었다”(요19:30)

일곱째 말씀 :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위 가상칠언(架上七言)에 비춰볼 때, 오늘 본문 속 예수님의 말씀은 5번째와 6번째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28절은 ‘그 후에’라는 시간경과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후’라는 것은 앞서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의탁하신 후에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의미합니다. 가상칠언에 따르면 그 사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그 이후에 하신 말씀을 28절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읽어 보시겠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내가 목마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육체적인 갈증을 표현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이 기록될 당시인 AD 90년경 기독교신앙을 위협하던 대표적인 이단사상(영지주의)이 주장하던 것이 ‘가현설’(Docetism)입니다. 예수님은 영만 이 땅에 계셨고, 육신은 없었다는 내용인데, 한 마디로 가짜로 나타나셨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십자가 아래에 가장 가까이서 주님의 죽음을 목격했던 요한은 분명히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갈증을 느낄 정도로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2) 목마름


보통 사람의 몸은 70%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세분해 보면, 인체는 나이에 따라 체내 수분량이 다르다고 합니다. 아기 때는 체내에 많은 수분을 보유 하지만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수분은 점점 줄어 듭니다. 성별, 개인별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연령대별 평균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생아: 75 - 85%

*20-30대: 70%

*40-60대: 60%

*60대 이상: 50 -55%


이 내용을 보다가 과학적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 들어갈 수록 눈물을 잃어가는 것이 혹시 체내 수분량이 줄어들기 때문은 아닐까?’. 일반적으로 사람의 사망시 체내 수분함량은 45%에 근접한다고 합니다. 나이 들어갈수록 체내 수분량이 점점 줄어들다 절반 아래로 떨어지면 이 세상을 떠난다는 말입니다. 점점 줄어들어가는 체내 수분량과 관련하여 갈증과의 상관성이 제기 되었습니다.


몸에서 수분이 줄어들고, 점점 빠져나감에도 불구하고 갈증을 느끼지도 못하고, 혹은 갈증을 무시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목마르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육신을 갖고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까? 무엇에 갈증을 느끼고, 무엇에 안타까와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5번째 가상칠언은 목마름의 고통을 호소하신 절규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의 목마름과 고통을 아시고, 이해하시는 주님의 체휼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목마름으로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근원으로 인도하실 겁니다. 우리를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하실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영원한 생명, 더 풍성한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실 겁니다.


여기서 “목마르다”고 하는 διψάω(디프사오)는 ‘갈망하다’라는 또 다른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과 갈망으로 짧은 삶을 불꽃처럼 강렬한 갈망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걷는다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 대해 목말라 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갈망하지 않는다면, 그러고도 하루를, 일주일을 보낸다면,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혹이나 우리 영혼이 점점 고사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영혼의 수분함량을 되돌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3. 다 이루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목마르다고 하시자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스펀지)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의 입가에 대었습니다. 여기서 신 포도주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신맛이 강한 포도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병사들에게 배급되던 음료수 포스카(posca)를 의미합니다. 포스카(posca)는 식초로 넘어가기 직전의 시큼한 와인을 물에 타서 섞은 것입니다. 유럽은 물에 석회성분이 많습니다. 또한 고대엔 오염된 물로 인해 수인성 질환이 퍼지면 급격한 전투력 하락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로마가 군인들에게 배급한 일명 희석와인식초가 신 포도주 포스카(posca)였습니다.


마 27:34을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사람들(유대인)로부터 ‘쓸개 탄 포도주’를 받았으나 맛만 보시고 마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쓸개(몰약) 탄 포도주는 마취성분이 든 음료로서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이 흉악범들을 처형할 때 마취진통제로 주던 음료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로마군인들이 마시던 신 포도주 포스카(posca)는 받으셨습니다. 마취와 마약성분을 지닌 쓸개(몰약) 탄 음료를 거부하시고, 고통을 그대로 감내하시며 운명하신 겁니다. 그런데, 마약 성분이 든 음료를 거부하신 예수님께서 왜 로마군인이 주는 신 포도주(posca)는 받으셨던 걸까요? 그것은 시편 69:21 말씀의 실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숨을 쉬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당신의 남은 삶을 통해 이루어 지길 원하셨습니다. 몇주 전 ‘움이 트는 생각’란에 제가 ‘칼 푀르스터 정원(Der Karl-Foerster-Garten)’과 관련한 다음과 같은 글을 나누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9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여 년 동안 포츠담 보르님(Bornim)에 머물며 정원을 가꾸었던 칼 푀르스터가 생전에 남긴 말 한마디가 큰 울림이 되어 돌아옵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고 또 태어나도 정원사가 될 것이다.”

...


우리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일을 하겠다는 그 마음으로 우리의 일을, 현재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 <미스터 션샤인>의 대사 한 마디가 문득 떠오릅니다.


“그렇게 환하게 뜨거웠다가 지려하오. 불꽃으로...”


예수님은 마지막 숨을 쉬는 그 순간까지 ‘환하게 뜨거웠다가 지셨습니다. 불꽃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남기시고 운명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는 말, Τετέλεσται(테텔레스타이)는 ‘완성하다, 성취하다’라는 동사 τελέω(텔레오)의 완료 수동태 3인칭 단수형으로서 ‘신적 수동태’(the Divine Passive)의 문장입니다. 신적 수동태란? 어떤 구체적인 행동과 동작의 대상은 있으나 그 행동과 동작의 주체가 명시되지 않을 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경우, 그 행동 및 동작의 주체는 바로 하나님이 됩니다.


그러므로 신적 수동태인 “다 이루었다”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어떤 일을 성취하셨다는 의미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이루고자 하신 그 일들이 모두 성취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잘 반영한 대개의 영어성경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It is finished”(그 일이 이루어졌다. KJV, NASBM NIV)



4. 이루시는 하나님


지난 주중 신학교 앞 지하방에서 같이 살았던 동기 형의 어머니께서 소천하셔서 문상을 갔습니다. 불과 몇주전에 장 절제술을 받은 86세의 아버님은 건강해 지셔서 빈소를 지키고 계셔서 마음이 짠했습니다. 별 문제 없을 것이라 여겼던 어머님께서 병원에 입원하신지 10여일 만에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참 당혹스러울 수 있을 것 같은 그곳엔 슬픔을 감싸안고 있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하늘의 소망을 이야기하는 아들의 말에 2번 “아멘, 아멘”하시며 어머니는 숨을 거두셨습니다. 남은 가족들에게 하늘에 대한 소망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이야기를 유산으로 남기고 아주 평온한 얼굴로 가셨습니다.


우리의 마지막이 이처럼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행 20:24)을 마치고 “아멘, 아멘”하며 갈 수 있다면 얼마나 복 될까요? 남은 가족들에게 얼마나 소망이 될까요? 우리의 마지막이 남은 이들에게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 오신 하나님에 대한 증거가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시편 기자는 시 57:1-2을 통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1절: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2절: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 생애 가운데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를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야훼”(렘 33:2)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아버지가 되십니다.


광야 40년 동안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고, 발이 부르트지 않도록(신 8:4) 섬세하게 돌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선 날마다 우리의 필요를 예비하시고, 채우시며, 치료해 가십니다. 이것을 믿기에, 이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마 6:31)고 권면하셨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기록된 말씀이 2번 나옵니다. 하나는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창 2:1)는 천지창조 완료의 선언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본문 속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하신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루신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창조, 구속의 역사를 다 이루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75년전 아무 희망이 없던 이 땅의 짙게 드리워진 흑암을 걷어 내시고 빛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 민족에게 광복과 해방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고, 상상치 못했던 방법으로 36년간의 속박을 끊게 하시고, 빛의 길로 이끄신 하나님은 어두운 전염병의 시기에도 이루시는 하나님,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현재 우리의 삶이 우리 생각의 길 위에 놓여있지 않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 아래서 우리를 살게 하시고, 우릴 통해 그 뜻을 이루어 가실 겁니다. 그 결과 언젠가 우리 역시 신적 수동태로 이렇게 고백할 날이 올 겁니다.


“다 이루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삶이 하나님 손 안에, 계획 안에 있음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아버지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의 도시가 강줄기의 방향을 바꾸듯이, 우리 생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옮기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묵상함이 즐겁게 하시고, 하나님으로 인해 날마다 목마른 영혼으로 살아감이 기쁨이길 원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하셔서 종내 우리 삶의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다 이루심을 신적 수동태로 고백하는 자리에 서길 원합니다.


75년전 희망없던 이 땅에 빛을 회복시켜 주시고, 소망을 주셨던 하나님~

오늘 이 전염병의 시기에도 잃어버린 일상을 회복시켜 주시고, 천덕꾸러기가 된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바로 감당할 수 있도록 다시 세워주옵소서.


새롭게 지구 구석구석과 이 시대와 교회를 창조해 가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소중한 동역자로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그리스도인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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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11:30am - 1: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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