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2020.05.31 움오름 주일 설교 - "보라, 이 사람이로다"(요 19:4-6)

6월 1 업데이트됨









요한복음 19:4~6

4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5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6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설교문


1. 우리 삶의 장바구니


“제 삶의 장바구니엔 하나님 나라가 부재했습니다.” … 이 말은 지난주일 ‘채찍질하더라 2’는 제목의 설교 가운데 제가 나눴던 고백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말 속에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장바구니’라는 실재의 개념 속에 실현되고 구체화됩니다.


사복음서 속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유일한 예수님의 이적이 ‘오병이어’(마 14, 막 6, 눅 9, 요 6)입니다. 그런데, 그 이적이 굳이 어린아이가 내어놓은 도시락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는 도시락이야 말로 어린 아이에게 실재하는 장바구니요, 하나님 나라가 임재하는 곳이었습니다. 자기권리를 내려놓고, 자기 것을 나누는 그 속에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미가 자리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자기편의 만을 추구하는 제국의 시스템 하에서는 결코 하나님 나라의 오병이어는 나타날 수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지자체와 정부의 재난지원금을 생각해 볼 때, 단순히 얼마만큼의 공돈을 받았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이의 고백처럼, 이전에는 좀 더 싸고, 가성비 좋은 것을 찾아 다니다 보니, 물건값과 물건만 눈에 들어왔다면, 동네에서 재난지원금을 쓰다보니, 그곳에서 일하는 우리 주변의 이웃이 보인다는 겁니다.


경제적인 부분 뿐 아니라, 환경과 기후 분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채찍을 휘두름으로써 우리 또는 인간의 이익을 계속 극대화 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모두 공멸할 수도 있습니다. 더 늦기 전, 지금이라도 우리는 주변의 이웃들과 공존의 방향을 모색하고, 공생의 방법을 연습해 가야 합니다.


지난주 월요일이었습니다. 매주 설교를 나누는 ‘설교와 목회’ 멤버들이 동기형이 목회하는 교회(합정동 다운교회 석정일 목사)에 모였습니다. 여러 나눈 이야기들도 유익했지만, 그 교회를 들어가면서 받았던 신선한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습니다. 그 교회 현관문을 들어서면 바로 오른 쪽에 조그마한 유리냉장고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그 냉장고 안에는 시원한 음료수들이 들어있고, 앞 면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택배기사님! 수고 많으십니다. 더운 날씨에 편하게 꺼내드세요”



2. 보라, 이 사람이로다


오늘 본문으로 갑니다.

흥분해 있던 유대인 무리를 진정시키고,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했습니다. 단순히 채찍질만 한 것이 아니라, 가시관을 만들어 머리 위에 눌러 씌웠습니다. 자색옷을 입혀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조롱하고 모멸했습니다. 한편으론 예수님을 구명하려는 듯 보였지만, 다른 한편으론 철저하게 정치적 계산에 의해 행동하는 빌라도는 영락없는 세속 정치인의 전형이었습니다.


4절은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고난을 가한 뒤 관정 밖에서 소리치는 유대인 무리에게로 다시 나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채찍질에 이미 온 몸이 찢겨 피투성이가 되고, 살점이 뜯겨져 간 예수님은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제대로 서는 것조차 버거운 예수님을 빌라도는 제사장 무리 앞에 세웠습니다. 예수님에게서 그들이 말하는 죽일 죄를 찾지 못했다고 말하던 빌라도는 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5절 후반절입니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매를 맞아 홀로 설 힘조차 없고,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의 모습은 한마디로 볼품없는 몰골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내보이며, 외친 말이 “보라, 이 사람이로다”였습니다. 그 말 속엔 이런 의미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디 한번 보시오! 당신들이 말하는 이 사회를 전복시킬 자의 모습이 이 사람 어디에 있습니까? 도대체 어디에 반역할 힘이 있습니까? 사람을 좀 보고 소리치시오!”



3. 렘브란트의 Ecce Homo


작년 사순절 기간에 렘브란트의 그림들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했습니다. 39일째 되던 날 바로 오늘 본문인 요 19:5과 더불어 렘브란트의 그림 Ecce Homo를 나누었습니다.


라틴어 Ecce Homo는 "이사람을 보라”는 빌라도의 말입니다. 렘브란트는 이 내용을 작품화하면서 판화 기법(etching)으로 만들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1655년 처음 제1판을 시작으로, 1665년 제8판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수정작업을 거쳐 완성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여타의 작품들보다 훨씬 더 작가의 삶의 여정과 잇닿아 있습니다. 아내에 이어 아이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고, 가세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져 갔습니다. 생의 끝자락에서 렘브란트는 그렇게 볼품없는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어떤 면에서 렘브란트는 빌라도의 법정 위에 초라한 인간 예수님과 더불어 자신을 세웠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생의 실패같은 몰락과 더불어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초라한 Ecce Homo의 예수님 속에서 렘브란트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Ecce Homo>의 제8판


보통 1판에 비해 재판을 거쳐 3판, 4판… 등 횟수를 더 해갈수록 작품은 점점 더 정교해 지고, 세밀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Ecce Homo>의 제8판은 이전 작품보다 훨씬 미완성 작품으로 보입니다. 작품의 하단 정면부엔 지운 흔적이 확연하고, 그 속에 유령같은 인물이 관객을 쳐다보고 있기도 합니다.


<Ecce Homo>의 제6판


렘브란트가 <Ecce Homo>의 6번째 판부터 뚜렷하게 고친 곳이 바로 법정 하단 부분입니다. 그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유태인 군중들을 제거하고 법정 하단 전면부에 두개의 큰 구멍을 만들었습니다. 마치 해골의 눈 같기도 한 두 구멍 사이에 머리카락을 풀어해친 한 사람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그리스 신화 속 죽음의 강과 지하의 신 하데스를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지구를 떠받치는 아틀라스의 형상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정확하게 어느 것이다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개신교인이었던 렘브란트가 그리스 신화에서 차용했다기 보다는 처절한 예언의 성취를 암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육체적 고통, 제자들의 배신, 사람들의 야유와 조롱, 아버지 하나님과의 완전한 단절 같은 것들의 형상화입니다. 나아가 십자가의 죽음 후 지옥에 있는 이들을 위해 그곳까지 내려가실 것에 대한 예시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서인지 예수님의 모습이 무척이나 나이들어 보이고 서글퍼 보이기 까지 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렘브란트의 <Ecce Homo>를 ‘가장 슬픈 왕의 초상’이라고 하기도 하며, ‘우리의 원죄가 해결받는 순간’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얼굴을 확대해 살펴보니 그 눈빛이 군중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분을 쳐다보는 우리를 향하고 계십니다. 물끄러미 그림을 보는 우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빛에 화들짝 놀라며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4. 이 시대가 잃어버린 것


누군가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중요한 것의 하나가 ‘초월적 형이상학의 바탕’이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말인 것 같은데, 간단히 표현하자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신)을 상실한 채 세속적인 물욕만 추구한다는 말일 겁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대에서 근원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관심 밖의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부정되는 시대 속에서도 스며드는 선명한 빛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렘브란트의 판화 <Ecce Homo, 이 사람을 보라>입니다.


비방과 모멸이 난무한 빌라도 법정에서 말없이 서 있는 예수님은 이해보다는 오해 받았고, 경외보다는 시기되었으며, 칭송보다는 비난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그분의 진실은 신성모독이라 오독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을 향한 주님의 사랑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말의 사랑이 아니라, 눈빛과 온몸에 배어 있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모함하며 죽이려는 그 사람들도 결국은 구원해야 할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 사랑,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인해 죽어가셨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사랑은 그처럼 강하지도, 순전하지도 않습니다. 허약한 체력을 드러내며 베드로처럼 칼이라는 손 쉬운 방법을 꺼내 듭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불법과 부정이 조작되고 자행됩니다. 변종이 본래의 것보다 훨씬 본질다워 보이고 강해 보이는 시대 속에서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눈멀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기에 하나님의 사랑마저도 잃어버린 채 변종적 사랑의 MSG에 길들여 살고 있습니다. <Ecce Homo, 이 사람을 보라> 속의 예수님은 우리가 잃어버린 사랑의 원형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이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해야 할지 보여주는 좌표가 됩니다.


이 땅, 그 누구도 기대치 못했던 모습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들에게조차 영접받지 못했던 하나님의 아들. 그분이 검정물감을 뿌려놓은 듯 검게 보이는 빌라도의 재판장 위에 서 계십니다. 점점 밀려오는 십자가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분은 피하지 않고 직면하겠다는 듯이 서 계십니다. 렘브란트의 <Ecce Homo> 이 작품 속에서 2천 전 부당하게 판결내렸던 빌라도의 법정을 봅니다. 그리고 오염된 신앙으로 정의를 억압하던 렘브란트의 시대를 그려봅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대신한 종교권력과 권력의 부나방이 되어 기획화된 수사와 판결을 하는 굽어진 우리시대의 법정을 봅니다.


빌라도의 법정 위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주님의 눈과 시선을 맞추다 보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나는 저 법정 어딘가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5. Ecce Homo와 진젠도르프, J. 웨슬리, F.R 해버갈


1) 진젠도르프(1700년-1760년, Nicholas Ludwig Von Zinzendorf)


도미니크 페티의 <Ecce Homo>


렘브란트 이외에도 <Ecce Homo>라는 제목의 작품을 남긴 화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탈리아 화가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ti, 1589-1623)입니다. 그의 그림은 렘브란트의 것과는 전혀 다른 초상화 타입입니다. 빌라도가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라고 소리치자 예수님이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입니다.


페티의 그림에 대중이 주목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한 사람을 그 그림 앞에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그를 통해 교회의 역사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가 바로 페티가 세상을 떠난 지 100여년이 지난 1719년 5월 어느 날, 이 그림 앞에 서 있던 열아홉 살 청년 진젠도르프였습니다. 그는 개신교적 신앙 때문에 독일에서 망명한 오스트리아 귀족 집안의 후예였습니다.


진젠도르프는 그림의 맨 아래에 적혀 있는 "Ego pro te haec passus sum, Tu vero quid fecisti pro me” (“나는 너를 위해 이것을 하였다.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왔느냐?”)라는 라틴어 문구 앞에서 더 이상 자신을 자기 것으로 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의 것인지, 자신을 얻기 위해 주님께서 어떤 값을 치러야 하셨는지를 자문했습니다. 그 후 그리스도 예수께 자신을 온전히 헌신했습니다.


생태적 백작으로서 누릴 수 있었던 안온하고 호화로운 삶을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자기 소유의 저택도 예배와 모임의 장소로 내어놓았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체코에서 이동한 모라비안 교도들(체코의 개혁자 존 후스를 따르는 루터 이전의 개신교도들)을 자신의 영지인 헤른후트로 피신하게 해 그곳에 정착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모라비안 형제회를 조직해 본격적인 경건주의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 모라비안 운동이 할레대학과 함께 근대 선교의 불을 일으켰고 1832년 7월, 한국 최초의 선교사인 칼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ützlaff, 1803-1851)를 조선의 서해안으로 보낸 시초가 되었습니다.

2) 웨슬리(John Wesley, 1703년-1791년)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떤 이들보다 훨씬 더 헌신적이었지만, 모라비안 교도들은 당시 개신교 신자 누구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옥스퍼드 출신의 존 웨슬리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1729년, 미국 선교에 실패하고 영국행 배에 올랐다가 풍랑을 만나 두려워할 때 뜻밖에 찬양하는 모라비안 교도들을 만난 뒤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평화로운 그들의 모습에 웨슬리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잠시 후면 영광스러운 주님을 뵙게 될 텐데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라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말을 듣고 웨슬리는 자신이 아직 구원받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 영적인 문제로 고민하던 1738년 5월, 런던 올더스게이트의 모라비안 교도 집회에서 웨슬리의 영혼이 거듭났습니다. 그것이 영국신앙의 본격적인 갱신운동의 시발점이었고, 감리교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3) 해버갈(Francis Ridley Havergal, 1836-1879)


그로부터 다시 100여년이 훨씬 지난 1858년, 영국의 시인이요 찬송가 작사자인 프란시스 해버갈이 독일 유학 중 친구를 따라 뒤셀도르프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 옛날 진젠도르프가 보았던 도메니코 페티의 그림 <에케호모>와 문구를 보았습니다.


그 작품을 보는 순간 해버갈은 온몸의 힘을 잃은 듯 그림 앞에 주저앉았습니다. 예수님의 눈길이 그녀에게 머무는 듯 했습니다. 그때 그녀는 머리 속에 흐르듯 떠오르는 찬송시를 종이에 써 내려갔습니다. 그 시가 바로 찬송가 311장(I Gave My Life For Thee)입니다. 그 첫 소절의 가사가 이러합니다.



1절: 내 너를 위하여 몸버려 피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 (이하 생략) …



6. Ecce Homo와 성령강림주일


“Ecce Homo”, “이 사람을 보라”고 빌라도가 외칠 때, 그 앞에 서 있던 나사렛 청년 예수는 초라했고, 볼품없었습니다. 곧 쓰러질 듯이 서 있던 그의 몰골 그 어디에도 우리가 흠모할 만한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중세의 가을’이라고 일걷는 14세기-16세기의 르네상스(Renaissance) 운동과 그를 이은 18세기의 계몽주의 (Enlightenment)의 영향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자연을 보는 사람들의 눈이 달라졌습니다. 나아가 이성과 과학적 사고의 바탕 위에서 합리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신의 부재의 시대엔 볼품없는 나사렛 예수는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빌라도의 법정 위에 선 그 나사렛 예수로 인해 삶이 바뀌고, 생이 달라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초라했던 그 예수가 자신들의 전 생애를 맡길 주와 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 예수로 말미암아 변화된 그들로 인해 시대의 어두움이 밝혀졌고, 그 사회가 정화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은 계몽주의 시절 한 사람, 도메니코 페티의 손 끝을 통해 Ecce Homo의 예수님을 화폭에 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한 장의 그림을 통해 진젠도르프를 불러 경건주의 운동의 기수로 쓰셨습니다. 이어 그 뿌리에서 또다시 존 웨슬리를 불러 감리교 운동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땅에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통로되게 하셨습니다.


이게 사람의 생각과 계획 덕분일까요? … 천만의 말씀입니다. 한치 앞 자신의 운명도 알지 못하는 인간이 어찌 수백년, 수천년의 일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진행할 수 있겠습니까? … 굴곡진 그 시대마다 사람의 속에 역사하셨던 성령 하나님 덕분입니다. 성령님께서 사람의 속에 생명을 불어넣어 숨 쉬게 하셨고, 힘있게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의 부재의 시대, 더군다나 전염병의 시기에 어느 누가 우리의 행위를 아름답게 보겠습니까? 날씨도 더운데 마스크 착용하고 이렇게 예배드리는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고, 인생낭비로 보이겠습니까? … 하지만, 이 초라함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성령님이 믿는 사람들 속에 임재하신 날을 기념하는 오늘,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임재하셨던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시기를 구합니다. 불의 혀와 같은 모양으로 임하셔서 사람의 언어를 바꾸시고, 사람과 사람을 소통하게 하셨던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언어를 바뀌시고,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교통케 하시기를 구합니다.

칼 라너와 더불어 20세기 가장 뛰어난 신학자로 손 꼽히는 한스 큉에 의하면, 고대 성서 시대의 사람들은 영(Geist)과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역사를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붙잡힐 듯 하나 붙잡히지 않고, 볼 수 없으나 강력하며, 사람들이 숨쉬는 공기와 같이 삶에 필수적이며, 바람과 폭풍처럼 힘찬 것이 성령이다.’


성령님의 이러한 역사가 창조적으로 또는 파괴적으로 우리 삶 속에 역사하셔 우리의 선배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동역자로 세워지길 구합니다. 모세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사사들을 비롯하여 왕들과 예언자들을 감동시키시고, 사도들과 제자들 가운데 역사하셨던 것처럼 우리 속에도 침투해 들어오시기를 구합니다. 


꺾이고 초라해진 삶을 거쳐 마침내 생의 기쁨을 새로이 발견한 어떤 이의 고백은 이러했습니다. “시간이 너무 아까워!!!” … 그렇습니다. 우리 생의 시간이 너무 아깝습니다. 20대는 머지 않아 30대가 될 것이고, 장년은 금방 노년이 될 것입니다. 아름답다는 시절이 다 가기 전에 단 한번이라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라고 맛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리는 영(고전 15:45)으로 우리 속에서 오신 하나님의 영과 더불어 살리는 교회, 살리는 그리스도인으로 단 한번이라도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cce Homo”, “이 사람을 보라.”


하나님~

우리는 누구를 보고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를 바라고 있습니까?

볼품없고, 초라한 나사렛 예수님 속에 생명이 있고, 그분의 영이 오늘도 믿는 사람들 속에서 ‘살리는 영’으로 역사하시는데, 우리 속엔 진정 그 영의 움직임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분의 생명으로 되살아 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신의 부재의 시대에 우리 믿음이 관념화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보다 실재적이고, 생명력 있는 믿음의 역사이기를 소망합니다. 신앙을 향해 우호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고 여겨지는 시대에 우리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살리는 역사를 만들어 내는 생명의 산실되게 하옵소서.


생명을 위해 빌라도의 법정 위에서 온갖 수모와 모멸을 견디신 예수님의 영이 오늘도 우리 속에 힘있게 역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오늘도 우리 시대의 어두운 곳에, 눈물진 곳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명의 징검다리 놓는 교회와 그리스도인 되게 하옵소서. 비록 그 길이 주님처럼 초라하고 볼품없는 Ecce Homo의 자리에 서는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를 주목하실 하나님으로 인해 기꺼이 감당해 가는 Ecce Homo의 그리스도인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에 감동된 교회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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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시간:

일요일: 11:30am - 1: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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