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2019.11.17 움오름 주일 설교 -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요 17:25-26)

2019년 11월 18일 업데이트됨









요한복음 17:25~26

25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26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설교문

1. 감사주일 사행시


지난 주중 감사주일을 앞두고 ‘감사주일’ 사행시를 모집했습니다. 총 11분의 가족분들이 15회에 걸쳐 사행시를 지었습니다. 어떤 사행시는 진지한 신앙의 다짐을 담았고, 어떤 사행시는 넘치는 재치로 표현했고, 또 어떤 사행시는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움오름 단톡방에 올리신 내용들을 다시 하나하나 되새겨 보겠습니다.


황혁 집사

감. 감히 창조주 여호와께서 나를

사. 사람으로 빚고 당신의 생기를 넣어 주셨으니

주. 주님의 은혜와 사랑의 편지된 자로서

일. 일신우일신하는 그리스도인 되게 하소서.


윤성천 집사

감. 감사할 줄 모르는 당신

사. 사과할 줄 모르는 당신

주. 주님을 모르는 당신

일. 일본사람이지 너~


왕혜진 집사

감. 감사의열매는

사. 사랑이겠죠?

주. 주님!

일. 일희일비 하지않고 더욱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송병춘 집사

감. 감사주일을 맞아 성경 속 가장 감동적인 말씀이 무엇인가 곰곰 생각해보니

사. 사랑과 믿음과 소망 중에 사랑이 제일"이란 구절이네.

주. 주님의 이 말씀을 가슴깊이 새겨

일. 일상 속에서 이를 행하면 삶이 풍요롭고 행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영언 집사

감. 감사하며 살겠노라 다짐하고 살았건만

사. 사사로운 이익에는 그런마음 간데없네

주. 주 향한 감사의 마음

일. 일만번 다지노라


김재란 집사

감. 감미로운 유혹은

사. 사탄의 술수예요.

주. 주저함 없이

일. 일요일은 교회로


김정현 집사

감. 감 먹고싶어요

감. 사 먹을 돈이 없어요

주. 주시면 안되요?

일. 일원어치만 …. ㅋㅋㅋ


김정현 집사님의 사행시를 읽고 “제가 감 따서 드릴까요?”라며 윤집사님이 다음의 화답 사행시를 적으셨습니다.


윤성천 집사

감. 감나무에 감이

사.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 주렁주렁 열렸건만

일. 일꾼이 없다구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김정현 집사

감. 감히

사.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주. 주님은 아시죠

일. 일편단심 제 맘을…


양재웅 형제

감. 감사주일이 다가오네요

사. 사는게 모두 감사인데

주. 주일에만 주님께 감사하다고 기도드린건 아닌가 생각하네요.

일. 일단은 주일 대표기도 먼저 생각해야겠네요.


이미란 집사

감. 감사하라는 마음

사. 사랑하라는 마음은

주.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일. 일군의 마음가짐이지요


김정현 집사

감. 감감 무소식

사. 사는게 힘든가

주. 주님을 잊고사나

일. 일단 기도 해줘야지…


한혜리 집사

감. 감사해요

사. 사랑해요

주. 주님만을

일. 일편단심


정지원 형제

감. 감사한데요. 저는

사. 사양하겠습니다. 전

주. 주님 한분이면 되거든요. 그러니 세상 부귀영화

일. 일 없습니다


양재웅 형제

감. 감사주일이라는 사행시를 지어야 하는데요

사. 사실… 제가 글재주가 없어서요. ㅜㅜ

주. 주변머리도 없고, 글재주도 없고…

일. 일이라고 생각하니 더 힘든건 왜 일까요? ^^


하나같이 마음이 따뜻해 지고,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게 만드는 ‘감사주일’ 사행시였습니다. 위 사행시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를 생각케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대부분 어떻게 살아야 할지로 귀결이 되었습니다. 참여하신 분들에 대한 시상은 점심 나누는 자리에서 최우수 작품을 선정한 뒤 다음주일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정방식은 가족님들의 의견을 물어 제가 ‘편파적’으로 정하겠습니다. (^^)


감사주일을 앞두고 지난 주간 우리는 이렇게 사행시를 짓기도 하고, 우리와 함께 했던 분들, 잘 얼굴보기 힘든 분들, 움오름가족들의 부모님을 비롯해 우리가 후원하는 보육원 등에 제주 유기농귤을 나누며 감사의 의미를 새겨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기뻐하고 감사하는 우리와는 달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행시를 짓고 감사주일을 맞이하는 분도 있습니다. 제가 이전에 재직했던 교회에 다니는 교인이 얼마 전 이런 사행시를 보내왔습니다. 모두 4편의 감사주일 사행시였습니다.


감. 감사하며 이 교회에 왔는데

사. 사실을 알고 나니 모두 거짓이네

주. 주일예배 설교가 위선이니

일. 일주일 살기가 고달프네


감. 감시가 본분인 듯 교역자 차량 블랙박스, 헌금 내역서 제출 요구하고

사. 사찰이 특권인양 인권 짓밟는 교회

주. 주구장창 담임들 권위만 내세우며 순종 요구하네

일. 일일이 그 무능과 폭력 열거하기에 4행시로 부족하네


감. 감시하고 사찰하고

사. 사주하고 거짓말하고

주. 주종관계 요구하다 거부하면 자르고

일. 일순간에 그 무례와 거짓 신앙이 심판 받으리


감. 감독(목사)는 선한 일을 사모하며 인격에 본이 되어야 하는데

사. 사장 행세나 하고 있으니 이를 어쩐다

주. 주일마다 권위주의, 아첨만 눈에 띄니

일. 일벌백계로 다스리고 좋은 목사 청빙하세!


어쩌다 모범적이고 세련된 매너와 교양 넘치는 교회라고 소문났던 교회가 이렇게 망가졌는지 슬펐습니다. 감사주일을 맞이하며 이렇게 사행시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분의 교회를 향한 안타까움이 절로 공명되었습니다. 이 시간 마음을 다해 바라는 바가 있습니다. 감사주일을 맞아 우리를 포함해 이 땅에 아파하고 신음하는 교회들이 감사해야 할 분 앞에서 제대로 섰으면 합니다. 의미없는 습관의 예배를 넘어 영으로, 진리로 예배하며, 입술이 아니라, 삶으로 사랑하며, 서로의 존재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며 함께 일구어가는 공동체되었으면 합니다.


2. 나를 사랑하신 사랑


악기상과 연주홀을 운영하는 한 분이 지난 주중 제게 질문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목회자들은 주님의 종이니 우리가 더 높은 것 맞지요?” … 몇번이나 진지하게 묻는 그 분의 질문에 제가 웃으며 “맞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종이라는 목회자이건, 하나님의 자녀라는 비목회자이건 간에 우리는 평생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그 신비 속에서 깊이 자라도록 부름을 받은 동일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자기가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행동이 다릅니다. 자존감이 강해서 매우 솔직하고 자신있게 자신을 표현합니다. 잘한 일이 있고 자랑거리가 있을 때만 당당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곤궁과 필요까지 거리낌 없이 내보입니다. … 아버지 부시 대통령<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의 부인 바바라 부시 여사와 관련된 일화 속에서 그런 부분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바바라 부시 여사는 남편 뿐 아니라, 아들(조지 워커 부시)도 미국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남편이 미국 대통령이 되자 퍼스트 레이디로 백악관에 입성했습니다. 그때 그녀가 특별히 구입했던 3줄짜리 진주 목걸이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특별했던 것은 진짜가 아닌 모조 진주, 쉬운 말로 ‘짝퉁’이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들을 ‘세계 최고 권력자’인 미국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이 가짜 진주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닌다는게 우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떤 행사장에 갈 때 평소와 다른 특별한 것을 입고, 또 착용하려 합니다.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바바라 부시 여사는 전혀 거리끼지 않고 가짜 진주 목거리를 하고 미국 국 내외 모든 행사장에 다녔습니다.


사치와 화려함을 추구하기 보다는 수수한 이웃집 할머니의 모습으로 문맹 퇴치와 여성 권리 증진에 힘썼습니다. 이런 소탈한 모습이 미국인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더더욱 받아 지금가지 퍼스트 레이디 중 가장 사랑받은 사람으로 존재해 있습니다. 그 결과 작년(2018년) 4월 17일(현지시간) 그녀가 92세를 일기로 별세했을 때 영결식장인 미 텍사스 주 휴스턴의 세인트마틴 성공회 교회엔 추모 행렬이 이어져 해당 교회는 자정까지 문을 열어 조문객을 맞이할 정도였습니다.


특별히 추모객 중 중년 여성들은 바버라 여사의 상징물과도 같았던 가짜 진주목걸이를 목에 걸고 장례식에 함께 했습니다. 아이들 중에도 진주목걸이 장식을 한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과 73년간 결혼 생활을 이어온 바버라 여사는 그의 목에 가짜를 걸고 있건 진짜를 걸고 있건 그런 것은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그녀가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고, 그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수십년을 가짜를 목에 걸고서도 당당할 수 있었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받았고, 누렸던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받지 못했고,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은 늘 자기자신을 증명하려 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보여주려고 애를 씁니다. 이렇게 끝없이 자신을 증명하는 일은 결국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사람들까지 피곤케 하고 망가지게 만듭니다. 사랑의 위로도 모르고, 사랑에 허기져서 어두움을 안고 살아 갑니다.


야곱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어머니의 편애를 받았지만, 반면 아버지의 선택의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형 에서였다는 생각으로 늘 괴로워 했습니다. 그는 형보다 잘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형과 대결했고, 형의 약점을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러다 고향을 떠나 오랜 시간 되돌아 올 수 없었던 그는 외삼촌 집에서도 경쟁하며 자신이 괜찮은 사람임을 나타내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와 함께 하는 부인과 자녀들 또한 서로 경쟁하며 우열을 가리려는 집단으로 전락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빈곤의 악순환이 끊기기 시작한 것은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 후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난 뒤 부터 였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그날 밤 얍복강가에서 일어난 씨름의 승자는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손을 들어 슬쩍 내리 쳤는데도 야곱은 엉덩이 고관절이 위골되어 더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끝까지 천사를 붙들고 복을 간청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고 하시며, 야곱이 당신을 이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야곱이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져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누구보다도 야곱 자신이 잘 아는 것입니다. 평생 이기려고 애쓰고, 그것으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쓴 야곱으로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분에게서 양보와 사랑을 받았다는 그 사실이 충격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경쟁을 멈추고 하나님 안에서 순명함으로 승리하는 법을 배워가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동이 터올때 온 몸이 흙먼지 투성이를 한 채 다리를 절면서도 형 에서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엎드릴 수 있었습니다. 더이상 잘 나게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이기려고 발버둥 칠 필요도, 괜찮은 사람임을 증명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저 과거의 못났던 모습에 대해 엎드려 겸허히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를 사랑하시는 분, 그분의 사랑 때문에 초라한 행색에도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3. 완벽을 넘어 사랑으로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세속적 기준으로 보면 어느 것 하나 내세울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가진 것도 없었고, 자랑할만한 집안배경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당당하셨고, 주저함이나 거침이 없으셨습니다. 주님을 두르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주님을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게 했고, 당당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던 사건은 마 3:17, 마 17:5에 2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 때와 변화산에서 들었던 음성입니다. 전혀 다른 것 같은 두 사건, 그런데 거기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세례도 죽는 것을 의미하고, 변화산 위에서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나눴던 대화 역시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은 하나님께 있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규정이요, 정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의 확인이요, 확증이었습니다. 정체성에 대한 명확함과 사랑에 대한 견고함이 있었기에 주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통한 십자가와 인간구원이라는 소명을 감당해 가실 수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당신께 예수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2번에 걸쳐 강조하셨습니다. 이토록 견고한 하나님의 사랑과 지지 안에서 주님은 평안을 누렸고, 당신의 정체성과 소명 모두 잃지 않고 이루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누렸던 예수님은 주님을 따르는 우리를 향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 우리에 대한 명확한 정체성 규정입니다. 이 부분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으나, 아주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기독교 신앙은 ‘도덕적 변화’ 이전에 ‘정체성의 변화’가 먼저 온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하라, 하지 마라”로 구성된 윤리적 가르침에 속박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아내는 존재로 변화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6절에서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당신을 그리스도되게 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이 우리 안에도 있기를 구하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 역시 우리 안에 함께 내주하심으로써 우리가 당당하게 이 땅을 살아가기를 비십니다. 이때 비록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존재와 당위라는 우리의 본분과 소명은 우리 삶 속에서 건강하게 상호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비하와 자기 위안을 넘어서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자신의 삶을 살아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완벽주의자가 되어 살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될 수도 없겠지만, 만약 완벽한 사람이 되었다면, 아마도 우리가 손대는 일마다 생명이 앗아가져 주변엔 남아있을 사람이 없게 될 겁니다. 완벽한 악기가 꼭 좋은 울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듯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실수하지 않고, 비난할 것 없는 사람이 좋은 울림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울림은 자기 삶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 때 생깁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주의 사랑이고, 그 사랑으로 서로 나누는 우리들의 사랑입니다.


차가운 계절에 우리 삶에 따뜻한 울림이, 서로 속에서 아름다운 공명이 일어나길 구합니다. 현악기의 울림을 더 아름답도록 밀착되게 만드는 것이 활에 묻히는 송진이듯이, 우리 삶의 각 현에 부딪혀 오는 농밀한 감사가 우리 삶을 더 울림있게 합니다. 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그 사랑에 대한 감사를 더 새겨봅니다. 남은 2019년의 기간, 감사와 더불어 더 아름다운 생의 소리로 채워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드립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감. 감사(感謝)할 때의 ‘감(感)’은 느끼다는 뜻이고,

사. 사(謝)는 사례하다, 고마움을 표하다는 뜻인데,

주. 주신 것 뿐만 아니라, 가져가신 것에 대해서도 느끼고, 고마움을 표하며 살아왔는지?

일. 일일이 하나하나 되짚어 보며, 되새겨 보며 감사하는 주일



하나님 아버지~

지금껏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드릴 곳을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화려한 예배당이 아닌 평일 소박한 사무실이요, 일터로 사용되는 이곳이 우리의 예배당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곳이 그러하듯 사람의 눈물과 땀으로 얼굴진 우리의 일터 자체가 예배되길 소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하시고, 사랑받는 사람으로 이 땅을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깨닫게 하신 정체성에 대한 명확함과 사랑에 대한 견고함으로 우리 소명의 길을 잘 걸어가게 인도해 주옵소서.


감사주일을 맞아 화려한 꽃장식이나 과일장식이 아닌 소박한 나눔으로 예배의 자리를 채웁니다. 올려드리는 이 향기를 받아주시고, 움오름과 우리 삶의 정체성과 존재이유, 그리고 존재방식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바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아파하고, 신음하는 이 땅의 주님의 몸된 교회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교회가 왜 존재하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사랑받던 교회가 어디서 첫사랑을 잃어버렸는지 되돌아보게 하셔서 그것을 회복해 가는 감사주일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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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시간:

일요일: 11:30am - 1: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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