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2019.10.06 움오름 주일 설교 -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요 17:16-19)

2019년 10월 9일 업데이트됨























요한복음 17:16~19

16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17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8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19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설교문

1.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지난 주 성경본문(요 17:10-15)을 통해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2가지를 기도하셨습니다. 첫째는 제자들을 악에서부터 보존해 달라는 겁니다(11절, 15절). 이 기도는 고난과 어려움과 환난이 있는 이 세상에서 데려가 피하게 해달라는 소극적인 요청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악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싸우고, 견디면서도 깨어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도록 지켜달라는 주님의 적극적인 기도였습니다.


두번 째 기도는 제자들이 하나 되게 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 하나됨을 위해 주님은 무려 3번이나 반복하면서 제자들의 ‘보존’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체포되시기 바로 직전까지 그토록 제자들의 하나됨을 위해 기도하신 이유는 바로 제자들의 하나됨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들에게 나타나고 보여지는 주요한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보존과 하나됨을 위해 기도하신 주님은 이어 오늘 본문 속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16절입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말씀은 ‘세상에 살지 않았다, 속세를 떠나 별천지에 산다’는 의미가 아닌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사람들이 사는 생활공간을 떠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벧전 2:9이 말씀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한 나라의 국민은 누리는 권리만큼이나 그 나라의 법과 질서를 지키고,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하늘의 복을 누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법과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짜 그리스도인이냐? 명목상 그리스도인이냐는 누구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느냐에 따라 나눠집니다. 그래서 결국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싸움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어느 진영에 속하느냐에 따라 판별납니다. 누구의 말씀을 따르고, 어떤 가치를 갖고 살아가느냐는 것이 우리 관건이라는 의미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경건서적 중 하나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이 책을 통해 챔버스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정확히 갖고 있지 않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다며 이런 돌직구를 날립니다. “당신은 지금,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습니까?”


챔버스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사람, ‘위로부터 거듭난 사람’ 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사람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의 마음은 그리스도와 일치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전인격인 믿음을 갖고 기쁨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언제나 있는 곳에서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길어내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오스왈드 챔버스가 정의내리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편에 선 사람,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우리는 진정 이런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대로 하나님 편에 서서 역동적으로 살고 있습니까? … 지난 월요일 신학교 동기모임이 구리에 있는 한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제 동기가 개척한지 13년이 되는 교회로서 아이들 포함 50여명이 예배드리는 공동체였습니다.


4층 건물에 3층을 제외한 지층부터 옥상까지 모두 사용하는 그 교회의 담임목사는 그날 자신이 목회해 온 것에 대한 특강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질의응답시간을 가졌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선 회심하고 교회의 일원이 되면 첫째 모든 공예배와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케 합니다. 둘째,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두 철저하게 십일조하게 합니다.”


그때 한 동기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그것 너무 율법적, 현세적 가르침 아닌가?”


이에 그 담임목사의 대답은 더이상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못할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물질세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의 표현이 시간을 내고, 물질을 드리는 것 이외에 다른 무엇으로 가늠될 수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돈과 시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시간을 정해 예배드리고, 가진 것을 정성을 다해 헌금하는 것 외에 다른 무엇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까? 말해 보십시오!”


움오름교회 창립 이래 4년 6개월이 지났지만, 단 한번도 예배에 늦거나 빠지는 것에 대해 제가 뭐라고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 모두 나이드시고, 아실만큼 아시는 분들인데, 말씀드린다고 알고, 그렇지 않으면 모르신다고 생각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단 한번도 십일조하시라, 헌금하시라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


헌금이란? 강조한다고 드리고, 그렇지 않는다고 안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사랑이 있으면 저절로 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 동기가 담임하는 교회는 사뭇 달랐습니다. 아니 아주 많이 달랐습니다. 겉으로 보면, 예배출석, 헌금강조를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그만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면 보이는 물질 세계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고 있는가? 정말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를 묻고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 교회를 방문하고 이틀 지난 수요일, 새벽에 기도하기 위해 다락방에 올라갔을 때 교회 가족분들 한분 한분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감사하기도 했지만, 때로 안타깝기도 하고, 때로 가슴 아프기도 했습니다.


4년여의 시간이 지났는데, 더 자라지는 않고 왜 뒷걸음질 치실까… 마음이 아파 하나님 앞에 하소연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선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참석했던 신앙부흥회의 강사 하태호 장로님이 부른 자작찬양의 가사를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양때들아, 원망하는 네 눈초리,

애타하는 너의 심정 이 목잔들 알지 않으랴

독초먹고, 쓰러진 것, 미쳐 날뛴 저 어린양

잘못 먹인 내 실수요, 잘못 키운 나의 죕니다.


아팠습니다. 모두가 제 잘못이고, 제 실수였습니다. 저의 얕은 실력과 열정 때문에 쓰러지고 뒷걸음 친 것이었습니다.교회 가족들을 생각하며 아파하던 제 마음은 어느새 저를 향한 안타까움으로 절절히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이렇게 하나님께 다시 아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더 하나님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제가 더 하나님 말씀 사모하며 살게 해 주십시오. 제 실수 입니다. 제 탓입니다. 제가 먼저 하나님 편에 서겠습니다. 제가 먼저 더 자라나겠습니다.”



다시 16절을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에 속하지 않기를 먼저 요구치 않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이 세상에 속하지 않기를, 하나님 편에 서기를 몸부림치셨습니다. 그렇기에 바쁜 중에도 밤을 새워 기도하셨고, 곤한 중에도 새벽 미명에 일어나 하나님 앞에 서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서 하나님 편에 서기 위해 이토록 애쓰고 몸부림 치셨다면 우리는 말해야 뭐하겠습니까? 본인이 애쓰고 노력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실력이 생기고, 내공이 몇 갑자 오르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치 않습니다.


2. 회색지대


검은 색과 흰 색은 서로 반대 편에 서 있는 색입니다. 이 둘은 각자 끝과 끝에 서 있기에 절대 만나지 않는 색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이 두 색 사이엔 두 색이 교묘히 혼합된 회색지대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에도 회색지대가 있습니다. 여타의 사상도 그러하지만, 신앙도 전혀 믿지않던 검은 지점에서 흰 지점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 중에 필히 거치는 지점이 검은 색도 아니고, 흰 색도 아닌 회색지대입니다. 좋게 말해 중도지점이지 결코 하나님 편에 서는 지점이 아닙니다. 그런데, 신앙의 회색지대가 너무 길면 그것이 우리 자신을 고착시킬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 장르 중에 ‘누아르’라고 불리는 것이 있습니다. 이 말은 본래 프랑스어 ‘noir’(검은색)에서 온 말입니다. 주로 범죄와 폭력을 다루면서 도덕적 모호함에 초점을 맞춘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누아르의 대표적인 한국영화가 2013년에 개봉한 <신세계>입니다. 이정제, 최민식, 황정민, 박성웅 등이 열연한 작품입니다. 이런 류의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폭력조직을 소탕하거나 맘대로 조종하기 위해 경찰이 해당조직에 신분을 속이고 들어갑니다. 그렇게 잠입한 경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직의 우두머리와 점점 친해져 의형제를 맺기에 이릅니다. 그 누구보다도 결기를 갖고 위험부담을 안은 채 적진 속으로 들어갔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 앞에서 점점 무너지고 물들어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동화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누아르 영화에 한하지 않습니다. 더 좋은 정보를 얻기 위해 취재원에 가까이 다가갔던 기자는 어느새 저널리즘을 상실한 채 해당 단체의 찌라시 대변인이 되어 받아쓰기만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어떤 기관은 스스로가 권력기관이 되어 이쪽과 저쪽을 저울질하며 위험한 정치행동을 일삼고 있습니다. 교회는 극우와 손을 잡고 광장의 선동교가 되어 자신들의 사역을 위해 전적으로 쓴다며 ‘헌금함’을 돌립니다. 자신이 머물러야 할 자리를 망각한 채 모호한 회색지대를 거쳐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을 통해 동화되고, 한 몸이 된 뼈아픈 결과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어느 누구도 이 회색지대를 거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길어지면 그 자체가 편안해 지고 익숙해 집니다. 나의 생각, 나의 행동, 내 정체성으로 굳어지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무리 우범지대에 살아도 3년 이상 되면 제일 맘 편한 곳이 되어 이사가지 않으려 한답니다. 오래되면 문제 의식도, 개선의지도 소멸될 수 있다는 말 일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현재 내가 서 있는 자리가 하나님과 무관한 자리입니까? 혹이나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회색지대입니까? 그런데도 전혀 불편하지 않고 평안하십니까? … 너무 오래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불편해야 합니다. 그곳을 벗어나 하나님께로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애쓰야 합니다. 몸부림쳐야 합니다.


3. 진리로 거룩하게


그런데 단순히 몸부림만 친다고 하나님 편에 설 수 있을까요? 사람이라는게, 습관이란게 그리 쉬운게 아닙니다. 한번 굳어진 것을 펴고 바로 세우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회색지대에서 흰색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주님은 17절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성경에서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성별한다’, ‘따로 세운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같은 세상, 동일한 시대를 살아가지만, 세상의 시류를 좇지 않고 따로 구별되어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주님은 ‘진리’라고 말씀하시며, 그 진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이론, 신념이 아닌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거룩해 질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편에 설 수 있고, 세상에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엔 하나님 말씀을 내걸어 자기신념을 포장하고, 진리를 내세워 거짓을 가려 우리를 미혹하고 현혹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목사의 말이라고 다 따르고 순종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전ㅇㅇ씨 같은 저급한 류의 삯꾼에게 공물을 바치며 추종하는 우매한 교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예 대놓고 막 나가는 전ㅇㅇ씨 같은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우리가 더더욱 경계해야 할 부류가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살자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교묘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자들입니다. 하나의 가슴 아픈 일화를 나눕니다.


2019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 총회장으로 선출된 김태영 목사는 지난 104기 총회에서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사회에서 이름값을 하고 건재할 수 있는 자본은 은금과 지식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그 무엇보다도 사회적인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당면 과제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나, 중계방송을 통해 이 설교를 듣던 사람들은 안도했고 감사했습니다. ‘아, 이제는 통합교단이 제대로 서 가겠구나!’ 하지만, 그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이 설교 후 명성교회 세습을 허락하는 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장로교를 세습교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정신차려야 합니다. 저를 포함해 어떤 목사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할때, 정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것이 맞는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분별할 줄 알려고는 하는데, 그 말씀을 평소 읽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데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진리되신 하나님의 말씀은 활자 속에 갇혀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말씀이신 주님이 육신을 입고 오셨듯이, 우리가 읽고 들은 그 말씀이 우리 속에서, 우리 삶에서 움직일 때 진리로 드러납니다.


4. 예수 잘 믿으세요


지난 9월 26일(목) 한 방송사의 앵커브리핑의 제목은 “예수 잘 믿으세요”였습니다. “예수 잘 믿으세요”라는 말씀은 영락교회를 창립하고 목회하다 은퇴한 추양(가을 햇살) 고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이었습니다. 1973년 영락교회에서 은퇴한 뒤 일부러 교회와 멀리 떨어진 남한산성 자락에 은거하던 한 목사님을 교계 목사들이 찾아뵈었을 때입니다. 좋은 말씀 한마디 해 달라는 그들의 요청에 한 목사님은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라고 말씀하셔서 거기에 있던 사람들을 당황케 하셨다는 일화입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예수의 복음을 매일같이, 잘 전한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목사들을 향해서 도리어 "예수를 잘 믿으라”니… 그런데 한 목사님의 그 말씀은 뼈아픈 일성이었습니다. 목사고, 장로고, 교인이고를 떠나 세상엔 예수를 제대로 믿는 사람, 하나님 편에 서서 진리를 몸으로, 삶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그만큼 찾기 어렵다는 사실의 역설적 표현이었습니다.


그 역설적 표현을 앵커 브리핑이 차용하며 이 땅의 목사와 교회를 향해 말로 예수 믿는다고 하지말고, 삶으로 그 믿음을 보이라고 요청했던 겁니다. 세상이 교회를 해석하는 시대. 세상이 성경을 이해하는 시대, 교회는 세상에 조롱받는 시대, 그러면서도 교회는 되려 성경을 무시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들어서 교회를 심판하시는 시대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는 세상을 향해 “회개하라!”고 감히 외칠 수 없습니다. 그게 현 시대 교회와 우리의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주님께서 세상을 들어 교회를 향해 “회개하라!” 하실 때 그 말씀을 들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019년 예장 통합교단의 표어는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였습니다. 이를 위한 주제성구가 느 2:17엡 5:26-27이었습니다.


느 2: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엡 5:26 -27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면서 더더욱 수치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주님 앞에서 영광스러운 교회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자면서 금권에 굴복하는 타락한 교회로 세워버렸습니다. “말씀으로 세워지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목사와 장로들의 유전’이었고, 그들의 ‘신념’이었습니다.


5. 사명을 감당하게


우리는 위와같은 목사와 장로들의 행태를 보며 적어도 결기를 갖고 비판할 줄은 압니다. 하지만, 혹 거기까지가 다는 아닙니까? 날카로운 이성과 상식으로 그들을 향해 비판하면서 우리 자신을 향해서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진정 진리로 나를 바로 세우고,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얼마나 일으켜 세우고 있습니까?


본문 18절 - 19절을 보면,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이신 진리로 바로 세워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이 땅에 보내셨듯이, 우리를 보내십니다. 여기서 “보내다”는 동사가 ἀποστέλλω(아포스텔로)입니다. 여기서 나온 명사가 ἀπόστολος(아포스톨로스) “사도, 대사”입니다.


우리는 그냥 대충 우리 한 사람 구원받아서 천국가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주님을 대신해서 보내는 사도,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로 보내시기 위해 우리를 택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세워가십니다.


그래서 유진 피터슨의 the messege는 위 구절(요 17:18-19)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사명을 주셔서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그들에게 사명을 주어 세상에 보냅니다. 내가 그들을 위해 나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은 그들도 진리로 거룩하게 구별되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께 보냄을 받은 사도로서,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로서 이 시대, 이 사회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시렵니까?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게 하옵소서(엡 4:21-24).


우리로 잘못된 신념과 인습과 시류를 좇는 데에서 떠나 진리로 우리를 구별케 하는 하나님 편에 선 사람들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무엇보다도 예수 믿는다는 것이 부끄러움이 되어 버린 이 시대 속에서 예수 잘 믿는 그리스도인 되게 하옵소서. 비록 외로운 소수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참된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주님의 사도,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 속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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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시간:

일요일: 11:30am - 1: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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