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2019.03.17 움오름 주일 설교 - "내가 일러준 말로"(요 15:1-3)

2019년 3월 28일 업데이트됨




요한복음 15:1-3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설교문


1. 자기 파괴


젊은 시절 이룬 성공은 놀라운 일이며, 박수 받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성공 그 자체가 당사자에겐 위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 두고 옛어른들이 자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젊은 때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때이른 성공’이다.”

젊었을 때 이룬 너무 이른 성공이 자만과 교만을 불러오고 결국 인생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속으로 자기확장을 해야 할 시기에 겉으로 보여지는 삶에 노출되다 보면 자기를 바꾸고, 개혁해 가는 자기파괴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신문, 지상파를 무론하고 온나라 뉴스를 도배하고 있는 아이돌과 연예인이 있습니다. 그중 어떤 이는 아이돌로 시작해 나름 성공한 청년 사업가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어필했습니다. 그가 어떤 아이돌인지도 몰랐던 제가 처음 방송에서 보여지는 그의 행태를 접했을 때, 제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젊을 때 이른 성공을 조심하라고 했는데…”였습니다.

온통 보여주고, 보여지는 삶에 노출되었던 그들은 엿보기를 좋아하는 대중의 관음증(Peeping Tom)에 길들여가며, 그 대가로 받은 돈과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 결과 20대 젊은 시절 깊이 고민하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관리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또래의 젊은이들이 편의점의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며 미래를 위해 몸부림 칠 때 그들은 하룻밤에 수천만원짜리 파티를 즐겼습니다. 동시대 젊은이들이 최저시급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며 자신의 길을 닦아갈 때 그들은 돈으로 사람을 부렸습니다. 아이돌과 연예인이라는 허상을 배경 삼아 뭇 여성들을 농락하며, 유희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젊은 시절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가꾸지 않은 상태에서 얻은 이른 성공이 부끄러운 몰락을 초래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때, ‘성공의 가장 큰 적은 앞선 성공’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장 나지 않으면 부숴버려라’는 말처럼 자기파괴가 요구됩니다. <스스로를 공격하라>라는 책(이광현 저)에 보면 자기파괴를 가장 잘 해온 대표적인 기업 중의 하나가 ‘질레트’입니다.

안전면도기 세계 1위 업체인 질레트는 자신을 스스로 공격하여 파괴함으로써 변화를 창조하는데 남다른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질레트는 트렉Ⅱ라는 이중 면도날이 달린 면도기를 출시했습니다. 트랙 Ⅱ가 최고조의 판매율을 보일 때 면도기 헤드가 움직이는 아트라 회전 면도기를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아트라가 전체 시장을 석권하고 있을 때, 이중 면도날이 따로 움직이면서 충격을 흡수하는 센서라는 신제품을 출시했습니다. 이 제품이 기존 시장을 완전히 뒤집어 버려 전 세계 시장의 65%를 차지하고 있을 때, 질레트는 3개의 회전 면도날이 달린 마하 3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2019년에 레이저 핏이라는 반영구적 제품을 출시했을 뿐 아니라, 세계 시장의 70%대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혁신, 자기파괴의 작업을 오늘 본문 속에선 ‘가지치기’로 볼 수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 보겠다고 연약한 뿌리에 기초해서 바둥바둥 생존하던 가지를 농부 하나님은 αρω(아이로)하신다고 지난시간에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지 외에 또 다른 가지를 대하시는 농부 하나님의 방식이 ‘가지치기’입니다. 2절 하반절이 그 부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열매를 맺는 가지’란? 일단 들여 올려진 가지입니다. 다시 말해, ‘아이로’ 이후의 가지입니다. 이 가지는 잎도 무성하고 무성한 잎 사이에 몇 개의 포도송이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지에 대해 농부는 ‘깨끗하게’ 하십니다(요 15:2 下). 과실을 더 맺는 가지가 되게 하려고 가지치기를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정말 잘라내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곁가지, 잔가지를 제거해서 군살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전에 재직했던 교회의 정문 오른쪽 담장에는 머루포도나무가 넝쿨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한 해엔 온 가지마다 탐스럽게 머루포도가 열렸었는데, 그 다음 해가 되었을 때, 머루포도나무 2/3 가량의 가지에는 거의 포도가 달려있지 않았습니다. 달려있다고 하더라도 조금씩 듬성듬성 달려있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열매를 많이 맺었던 그해 겨울에 가지치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는 1년생 가지에서만 꽃송이가 2-3개씩 달려서 열매가 맺습니다. ‘결과모지’라 불리는 2년생 이상 가지에는 열매가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올해 많은 열매가 달렸었다고 그냥 두면, 내년에 결과모지가 될 올해의 새 가지에 꽃눈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열매가 없는 해걸이를 하게 됩니다.

포도나무를 심는 목적은 단 한 가지, ‘포도’수확입니다. 그러므로 농부는 아무리 무성한 잎으로 보기좋게 퍼져있더라도 다음 해의 풍성한 수확을 위해, 더 열매맺도록 전지가위를 들고 가지치기를 해야만 합니다. 그러고 보면, 가지치기란? 결국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것과도 연결됩니다. 삶의 목적을 재조정하고 내면세계의 질서를 재정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많이 열매맺는 가지가 되도록 만드시기 위해 우리 생의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이처럼 농부 하나님은 우리 삶의 가지를 잡으십니다. 때로 자녀로 잡으시고, 건강으로 잡으시며, 일과 직업으로, 그리고 인간관계를 통해 우리 생의 가지를 잡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가지치기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언제까지 불평하고 반항할 것입니까? 언제까지 타협하거나 도망칠 것입니까?

이제는 우리의 시선을 현재의 고통이 아니라 장래의 더 풍성한 열매에 고정한 채 가지치기 당하는 이 아픔과 당당히 맞서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포도 몇 송이 맺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고 위안하며 과거에 머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우리 너무 고집스러웠습니다. 이제는 농부되시는 하나님께 좀 맡기면서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2. 내가 일러준 말로


3절 말씀을 이어 봉독하시겠습니다.

  •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이 말씀을 읽으며 두 가지 의문이 듭니다. 첫째, 주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주님의 말씀으로 어떻게 가지치기 하신다는 의미일까요? 둘째, 주님의 제자들이 이미 깨끗하여졌다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둘째 부분은 다음주일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말씀으로 깨끗하게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찾아가 보겠습니다.

말씀으로 깨끗하게 된다는 것을 잘 설명해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는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1935-) 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그의 어머니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는 소설책을 헌책방에서 사주었는데, 그 책이 오에 겐자부르의 일생에 가장 큰 교훈을 주었다고 합니다.

<톰 소여의 모험, (The Adventures of Tom Sawyer)>에 등장하기도 했던 허클베리 핀은 1885년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이 쓴 소설이기도 합니다. 남북전쟁 직후 미국 사회, 특히 남부에서는 인종차별이 여전했으며, 전통, 종교, 관습 그리고 도덕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살았습니다.

허클베리 핀은 종교와 도덕과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는 삶을 옥죄는 그런 상황에서 도망쳐 모험을 떠나 미시시피 강을 흘러가던 도중 짐이라는 흑인 노예 친구를 만나 함께 여행을 합니다. 그때 짐은 노예에게 자유를 주는 주로 도망을 치던 중이었습니다. 비록 당시 미국이 노예해방이 시행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완벽하게 시행되지 않았기에 도망친 노예를 보호하거나 도와주면 큰 죄가 되던 시대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정직과 규칙과 도덕을 지키라고 교육받아온 허클베리는 고민합니다. 마음속으로 도망친 노예 짐을 신고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런 고민을 알 리 없는 짐은 자기와 함께 하는 허클베리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짐으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허클베리의 갈등과 고민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교차했습니다. ‘신고할까? 말까?’

신고하면 배신자가 되는 거고, 신고하지 않다가 걸리면 자기도 큰 벌을 받게 될 게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마침내 짐을 고발하는 내용의 편지를 쓰고 보내려는 찰나 허클베리는 다시 고민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짐이라는 친구를 배신하려 했다. 고발하려 했다. 밀고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만두겠다. 나는 교회에서 가르쳐준 것처럼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옥에 가도 좋다. 그래 지옥은 내가 가겠다.”

허클베리는 지옥에 갈 생각을 하고, 짐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가 이 소설을 읽은 것은 초등학교 3, 4학년 때였습니다. 그는 이후 허클베리의 결심을 마음에 새기며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 지옥은 내가 가겠다.”

삶을 살아가면서 이익이 되고 편한 길이 있는가 하면, 힘들고 어렵지만 의로운 길이 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그럴 때면, 자신이 지옥으로 가겠다는 생각으로 편하고 쉬운 길보다 힘들고 어려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야구부원이 약한 학생에게서 10엔을 갈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약한 학생 편에 서서 그 사실을 공론화하면, 자기에게 어떤 위험이 다가올지 뻔했습니다. 그때 오에 겐자부로는 허클베리를 생각했습니다. “그래 지옥은 내가 가겠다.” 그는 교장 선생에게 그 사실을 알렸지만, 오히려 교장은 고자질쟁이라고 야단을 쳤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야구부원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1957년 <기묘한 일거리>를 써서 문단에 등단한 이후 23살 때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최연소로 수상하며 작가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1960년 결혼하고 3년 후 아들 오에 히카리가 태어났습니다. 불행히도 그의 아들은 태어났을 때 머리가 두 개 있는 것처럼 보일 만큼 후두부에 커다란 혹이 달려 있었습니다. 살지 죽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뇌를 수술하여 탁구공만한 뼈 덩어리를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그 댓가로 아들은 지적 장애를 평생 안고 살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심정도 들었고, 자신에게 이런 아들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오래전 읽었던 허클베리의 결심을 다시 한번 되새겼습니다.

“그래, 지옥은 내가 가겠다.”

오에 겐자부로는 그렇게 지적 장애 아들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칠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장애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로 써내려 갔습니다. 그 결과 ‘개인적인 체험’, ‘허공의 괴물 아구이’, ‘핀치 러너 조서’등 지적 장애아와 아버지의 관계를 모색하는 여러 작품을 집필했습니다.

그는 장애 아들과의 삶을 통해 반전과 평화, 민주주의 등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천황 제도와 국가주의를 반대하고, 우익의 협박과 테러를 포함한 모든 폭력에 맞서며, 자위대 해외 파병 반대 등 다양한 사회 운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정부가 사죄해야 한다"며 일본을 비판하고 사죄벌언 했으니 일본에선 매국노 취급받아 살해위협을 받았습니다. 이런 그가 일본 주류사회에서 얼마나 배제와 배격을 당했을지 충분히 상상이 되지 않습니까?

어렸을 때 읽었던 소설이 준 가르침을 평생 마음에 간직하고 그 말을 따라 살았다는 오에 겐자부로의 고백이 무거움으로 다가옵니다. 누군들 지옥에 가고 싶겠습니까? 아무리 악하게 살아도 죽을 때는 천국 가고 싶은게 사람의 심정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내가 지옥의 아픔을 감당하겠다는 결심, 그리고 그 결심을 따라 자신을 내어놓는 삶을 살았던 이의 삶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 삶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내 삶을 좌우할 수 있는 말씀으로 성경을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허클베리,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는 “그래 지옥은 내가 가겠어”라는 말을 따라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았습니다. 손해보고, 차별받더라도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갔습니다. 이처럼, 진리를 따르기 위해, 진리를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자신을 내어놓는 자기 파괴를 감당하는 것!!! 바로 이것이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는 삶입니다.




3. '저절로'는 없습니다


설교 전 성경봉독을 한 뒤 항상 같이 올려드리는 찬양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 됩니다”(시 119:105)

이는 우리의 고백이요, 다짐이기도 합니다. 캄캄한 이 세상의 길을 걸을 때 말씀에 비추어서 한 발, 한 발 내딛겠다는 다짐입니다. 아무리 좋아보이더라도 말씀의 빛이 비추시는 것에 검증하며 내 삶의 길을 살아가겠다는 결단의 고백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 주님의 말씀에 이처럼 밀착된다면, 등불과 빛 속에서 날마다 새로워 지지 않는 것이 되려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날 이 사회 속에서 왜 하나님의 말씀과는 동떨어진 기독교, 그리스도인이 범람하는지, 왜 우리 삶이 하나님의 말씀과 너무나도 괴리되었는지 그 이유는 자명해 집니다. 주님의 말씀을 발의 등불 삼지 않고, 길에 빛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효암학원 채현국 이사장께서 ‘어떻게 해야 좋은 어른이 되느냐'는 질문에 ‘잘 늙을 생각 하지 말고 젊을 때 잘 살아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분 말씀이 좀 직설적입니다. 전후 좌우 살피지 않는 돌직구로 하신 말씀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젊을 때 정신 안 차리면 저 모양으로 늙어요. 노망나서 저러는 게 아니야. 난 늙어서 나빠지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젊을 때는 나쁜 걸 잘 감추다가 늙었을 때는 감출 필요가 없으니 결국 드러나는 거지. 그러니까 젊었을 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돼.”

최 이사장님의 말씀처럼 젊을 때 버릴 것 버리고, 자를 것 자르지 않으면 잘 감춰뒀던 것들이 나이 들면 나타납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3대 깡패(‘나이, 계급, 보직’) 중의 하나인 나이가 들면, 그리고 다른 두 요소 중의 하나라도 더해지면 시너지 효과가 나타납니다. 우리 속에 감춰두고 묻어 두었던 못된 것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어른들의 면모를 보십시오. 하나같이 배울만치 배우고, 오를만치 오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그 사람들이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그런 일을 저질러 파장을 일으키는 장본인이 되었을까요? 젊은 시절 성공을 좇아 자기포장을 하는 동안 자기 내면을 돌아보며 자를 것 자르고, 떨쳐버릴 것 떨치지 못한 결과입니다.

정신과 의사 김혜남 선생은 그의 저서 <어른이 된다는 것>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선과 악을 비롯한 다양한 힘들을 적절히 조절하고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아프더라도, 힘들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젊었을 때에 가지치기 하지 않으면 우리는 점점 더 기득권에 익숙해지고, 뻔뻔한 노인이 되기 십상입니다. 나잇값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흰머리를 휘날리면서도 결코 나이로, 계급으로 남을 지배하려는 에너지가 없는 성숙한 어른,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한 말씀이라도 기대어 듣고 싶어하는 어른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그렇듯 연륜이 더 해갈수록 더 풍성한 열매를 맺어가는 그리스도인 또한 세월이 간다고 저절로 주어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선과 악을 주님의 말씀으로 지금 적절히 조절하고 통제하는 법을 연습해 가는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오늘은 사순절 둘째주일입니다. 사순절은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에 순명한 주님께서 “그래, 지옥은 내가 가겠다.”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것을 기억하며 따라 걸어가는 절기입니다. 봄의 화려함과 죽음이 갈수록 대비되는 이 계절에 나는 어떤 말씀을 따라 사순절의 숲을 지나시렵니까? 나는 무엇으로 내 속에 감춰있는 선과 악을 비롯한 다양한 힘들을 조절하고 통제해 가려 하십니까?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말씀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우리 발의 등불로, 우리 길의 빛으로 삼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천국을 사모하면서도 이 땅에서의 지옥을 감당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지옥은 내가 가겠다’는 천국의 정신은 내버려둔 채 산 결과였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들을 주님의 말씀으로 조절하고 통제하는 법을 연습함으로써 가능한 일임을 다시 마음에 새겨봅니다. 주님의 말씀이 오늘도 우리의 이기적이고 계산에 빠른 우리 삶을 가지치게 하옵소서.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현혹되어 내면을 돌아보며 정리할 것 정리하고, 버릴 것 버리지 못하는 젊음의 시간되지 않게 하옵소서. 1년이라도 더 젊고, 하루라도 더 젊을 때 우리 속에 감춰두고 묻어 두었던 못된 것들을 자르고 파괴하는 ‘자기파괴의 그리스도인’되게 하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천국을 소유케 하시기 위해 스스로 지옥의 길을 걸으셨던 주님을 묵상하는 사순절. 우리 또한 누군가의 천국을 위해 오늘 이 아픔의 지옥을 감당하는 용기와 사랑의 그리스도인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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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11:30am - 1: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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