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줄곧 대구에서 목회하고 있는 고향교회 형이 있습니다. 그 어떤 이들보다 따뜻함과 정의로움으로 책임있게 사는 사람입니다. 5년전 아버지가 소천하신 새벽 3시에 문자를 보냈는데, 곧 바로 대구의료원 장례식장에 와서 제주에 머물던 제 대신 장례절차를 다 준비해 준 그런 형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피고 챙기니 주위에 얼마나 사람이 많겠습니까? ... 근데, 지난 월요일 형은 제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문득 누군가와 커피 한 잔 하고 싶을 때 마실 친구가 주위에 없더라...”

형이 말한 친구란? 단순히 커피마실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서로 토닥이며,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일컫는 것임을 압니다. 일 주일 내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사람과 연락하지만, 정작 내 맘을 드러내 보일 사람이 없다는 형의 말이 왠지 서글펐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과 미디어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파랑새를 날리고 (트위터), 얼굴책에 ‘좋아요’를 누르고(페이스북), “까톡 까톡”하면서(카카오톡) 소식을 전하고 서로를 묶습니다(connected). 근데, 정말 우리는 잘 묶여 있습니까? 수많은 연결 속에서 고립을 외면하고 있거나 고립을 방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연결은 과잉되어 있는데, 관계는 결핍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우는 이들과 함께 울고, 즐거워 하는 이들과 함께 즐거워 하는’ ‘함즐함울’의 공감 유전자는 아직 살아있습니까? 혹이나 ‘강건너 불구경’이라는 경구처럼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핸드폰에 수많은 연락처가 있지만, 정작 커피 한잔 마실 사람이 없이 바쁘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제 여수에서 목회하는 동기가 몇년 만에 연락해 왔습니다.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정리하다 제 이름을 보고 연락했다고 하길래 “아이구! 안받았으면 내 번호도 지워질 뻔 했네요!”라고 말하니, 상대는 깔깔 웃으며 오는 가을에 한번 오라고 합니다. 가을전어가 아주 맛있다며... 같은 날 1년 만에, 군복무 때 소대원이었던 형제가 연락이 왔습니다. 대치동에서 자기 이름을 내걸고 학원을 하는 원장인데, 다음 주 지나 교회가 있는 양재시민의숲으로 오겠답니다. 같이 식사나 하잡니다. 얼마 전에는 3년 전 결혼집례를 했던 새댁(?)이 전화를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냐고 했더니, 그냥 생각나서 걸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냥 전화해서 미안합니다”라고 하길래, ‘그냥’이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 말인지 아느냐며 그 의미를 설명했더니, 바로 제 연락처를 ‘그냥 생각나는 목사’라고 바꾸고는 캡쳐해서 보내왔습니다.

수없이 관계된 과잉연결(overconnected)의 사회 속에서 그래도 사람들은 진심 연결된 누군가를 바라나 봅니다. 십대시절 코팅해서 외우고 다녔던 유안진 시인의 <지란 지교를 꿈꾸며>처럼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를 그리나 봅니다.

흐린 날에 노을도 남기지 않은 채 해는 지고 땅거미가 창밖에 드리웁니다.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비 내린 저녁에 고무신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그러다 문득 저녁 숲 마냥 검게 잠들어 있는 핸드폰을 바라봅니다. 누군가 혹 전화올지 모르겠습니다. “커피 한 잔 합시다~”라며...


-소의걸음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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