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유산을 넘어 내일을 그리다”

쇼핑카트를 끌고 마트 무빙워크 위에 섰습니다. 몇 미터 앞에 선 모녀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둘의 자세와 표정을 보니 분명 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의 일이지만, 어떻게 풀지 궁금했습니다. 근데 그 답은 무빙워크가 끝나는 부분에서 드러났습니다.

많아야 고1로 보이는 딸은 성질이 났는지 앞서 걸어갔고, 엄마는 화를 못이겼는지 쇼핑카트로 힘껏 앞서 가는 딸의 엉덩이를 밀쳤습니다. 분명 딸은 아프거나 놀랐을 텐데도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출구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어쩌면 그런 엄마의 행동이 그날 한번이 아니라, 일상적이었기에 별로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그런 딸을 보며 엄마는 엄마대로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식식거리며 유제품 진열대로 향했습니다.

이 둘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문득 몇 년 전 설악산 어느 호텔에서 아침식사할 때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옆 테이블에 30대 부부가 갓난 아기와 3살 정도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식사하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아빠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던 아이가 갑자기 “앙~”하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아이의 부모도 놀란 눈치였습니다. 식사를 하며 그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아이의 부모가 어떻게 해결할지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갓난아기를 돌보고 엄마는 우는 남자아이를 데리고 급히 식당 밖으로 나갔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 엄마는 남들이 보지않는 곳에서 엄청 훈육을 합니다. ‘엉덩이 맴매’는 당연 따라오는 셋트이구요. ‘아마도 그 엄마도 그렇게 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금새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들어왔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아이 아빠에게 양해를 구하고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밖으로 데리고 나간 아들에게 왜 우는지를 물었더니 게임이 중간에 멈춰서 그랬다는 겁니다. 엄마는 아이의 눈을 보며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네가 울기만 하면 엄마가 도와줄 수가 없어. 그러니 그럴 때는 울지 말고 도와달라고 해~” 엄마의 말에 아이는 그제야 눈물을 닦으며 게임에 상한 마음을 웃음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아이 엄마의 설명을 듣다보니 또 다시 궁금한 게 생겼습니다. 어떻게 그런 훈육법을 가졌는지, 혹 자신들의 부모님이 그렇게 양육하셨는지를 물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웃으며 자신의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로 사셨기에 아이들을 살갑게 돌볼 겨를이 없었다고 합니다. 부모께 받지 못한 부족한 부분을 자신의 대에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배우고 또 연습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가 그날 아침의 풍경이었습니다. 세상엔 부모로 받은 부정적 유산을 그대로 전수하며 사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게 몸에 익었고, 다른 것은 생경하기에 자연스레 습관하된 경험을 표출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러한 유산을 상속받지 않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그리고 아픔의 옹이 위에 아름다운 무늬를 그려갑니다.

요즘 한국사회를 일컬어 ‘끓고 있다’는 표현을 씁니다. 갈등지수가 높다는 말입니다. 근데, 이 부정적 평가 안에는 지금껏 제도와사회, 정치적 환경으로 인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사람들이 그만큼 말할 수 있는 사회여건이 되었다는 긍적적인 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게 있습니다. 갈등을 풀어가고, 해결해 가는 방식입니다. 지금껏 우리는 ‘강 대 강’의 대립을 반복할 뿐 대화로 풀어가고 조금씩 양보함으로 공생하고 공존해 가는 법을 배우고 연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것을 유산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말이 안통한다고 판을 뒤집고, 폭력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교회와 사회에서 서로의 맘을 헤아리고 듣는 법을 연습해 가야 하지 않을까요? 말이 통하는 ‘말.통’사회! 지난 세대의 약함을 넘어서는 보다 건강한 내일을 그려봅니다.


-소의걸음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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