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상처받을 각오를 했습니까?”

아버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마을과 동떨어진 집에서 홀로 사셨습니 다. 2번의 뇌진탕 이후 보행조차 예전만 못한 어머니께서 마을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마실가는 것은 녹녹치 못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번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2층집에서 생활하는 것도 어머니에게는 부담이었습니다. 이런 어머니가 늘 맘에 걸렸기에 여러 난점이 있었지만, 어머니 집을 마을 내 신축하기로 했습니다.

이 결심을 하고 공사를 한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담장을 비롯해 마무리되지 못한 일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그간 여러 일들이 많았습니다. 조그만 집을 건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이 “집 짓지 말고, 있는 집 사서 살아라”고 하는지 이해할만 했습니다. 누군가를 배려(?)하여 공사경험을 쌓도록 시공을 맡겼는데, 이것이 큰 문제가 되어 돌아올지는 몰랐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자꾸 미워졌습니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요청을 들어주어 시공을 맡긴 게 후회마저 되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며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사랑을 입에 달고 살았고, 나름 사람을 사랑하고 배려하려고 노력도 해왔습니다. 근데, 사랑에 대해 제가 몰랐던 ‘심각한 무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일에는 ‘상처받을 각오’도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상처받을 각오없이 사랑하다 보니 사랑이 미움이 되고, 후회가 되나 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 나타나 가장 먼저 당신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시며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상처는 배신한 제자들을 사랑한 흔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흔적은 부활과 잇닿아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생각하다 보면, 상처없이 사랑이 가능하지 않고, 상처없이는 부활에 이를 수 없는 이유에 도달합니다.

알렝 핑켈크로트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사랑받는 사람은 항상 부활의 상태에 놓여 있다.” 그(그녀)도, 저도 부활로 가기 위해 다시 사랑의 길로 내딛어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상처받을 각오도 지닌 채.


-소의걸음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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