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사순절 38일 움오름 묵상

2019년 4월 22일 업데이트됨


묵상의 말씀
  • 마 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 마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성경 속으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며 세족식을 가진 뒤였습니다. 예수님은 감람(올리브)산이라 불리는 겟세마네를 향하셨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20여분 거리였지만, 짙은 어둠만큼 무겁게 내려앉는 고뇌로 인해 산을 오르는 걸음은 가볍진 않았습니다. 힌놈의 골짜기, 공동묘지를 지나는 그 길은 곧 다가올 십자가의 죽음이 더 현실감있게 다가왔습니다.


유다는 차가운 미소를 남긴 채 만찬자리를 뛰쳐 나갔고, 곧 이어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게 될 겁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제자들도 주님에게서 나가 떨어져 갈 겁니다. 배신당함과 버림받음이 마음의 공간을 차지 할때, ‘이러고도 계속 이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일까?’라는 마음도 마음 속 두레박 속에 담기지 않았을까요? 하나님 아들의 길과 사람 예수의 길, 죽음과 삶이라는 그 선택의 나들목에서 주님은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주님의 기도는 처절하고도 외로웠습니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것은 뜻을 묻는 기도라기 보다는 되돌리고픈 고뇌의 몸짓이었습니다. 몸은 고통의 대상이자 주체이었으나, 이제는 기억의 최후 저장장치라고 했나요? 차곡차곡 몸 안에 쌓이는 미래 고통의 기억들 앞에서 힘겨워 제자들에게 당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 부탁하셨습니다. 하지만, “깨어있으라”는 절절한 당부도 무색하게 그들은 하나같이 잠에 빠졌습니다. 누군가는 삶과 죽음의 선택 앞에서 처절한 고뇌를 토로하는데, 잠에 빠진 그들에겐 그들의 일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들에겐 1의 절박함도 애절함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 마 26:39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모세혈관이 터져 땀 속에 피가 섞이던 저 애절한 기도는 불과 돌 하나 던지면 도달할 거리 밖에서 부르짖던 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세 번이나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기도하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대답은 변함없었으며, 제자들은 여전히 잠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자고 있던 제자들을 깨우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마 26:45-46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깨어있으라고 당부했던 제자들은 잠들어 있던 것에 비해 주님을 팔려던 사람들은 그 밤에도 또렸하게 깨어있었으니 말입니다. 당신을 위해 중보하는 이 하나 없는 외로웠던 밤에 주님은 결국 당신의 뜻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십자가의 쓴 잔을 받아 드셨습니다.


이제 곧 횃불과 몽둥이를 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올 겁니다. 가룟유다는 차가운 입맞춤으로 위선과 배신을 가리려 할 겁니다. 때가 다가왔습니다. 분노와 두려움의 칼을 도로 칼집에 집어넣고 아버지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 지길 구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림 속으로



<렘브란트,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 1657년, 에칭>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라는 렘브란트의 에칭 작품은 1657년에 제작되었습니다. 그림의 무대가 되는 감람산, 겟세마네가 칠흙같은 밤에 둘러 있었듯 렘브란트도 짙은 밤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 무렵 사형선고처럼 내려진 파산선고에 평생 모았던 재산 뿐 아니라, 번화가에 있던 저택마저 압류 당했습니다. 가족들과의 사별 이후 다가온 경제적 파산… 화려한 시절 뒤 이토록 혹독한 시련의 밤이 기다리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당혹스런 고통의 감람산 위에서 렘브란트는 붓 대신 니들을 잡고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를 새겨 갔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중 가장 어두웠던 밤을 소재로 하는 이 작품에도 렘브란트 특유의 빛의 이용과 에칭의 날카롭고 섬세한 선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림의 중심부엔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그 기도를 돕는 천사가 자리해 있습니다. 왼쪽 하단부엔 잠에 빠져있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있습니다. 다가오는 현실을 인식할 수 없기에 육체의 요구에 완전히 함몰된 그들의 모습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짠합니다.


응원해 주는 이 하나없는 그 밤, 올리브유를 추출하기 위해 열매를 짓이겨 압착하는 것처럼 주님은 짓이겨 지셨습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진액을 짜는듯한 기도는 깊어 갈수록 짓누르는 고통도 더해 갔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담는 몸의 저장능력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그때 천사가 주님의 기도를 도왔습니다. 마침내 차갑게 짓누르던 어둠이 깨지고 밝은 빛줄기가 왼쪽 하늘로부터 내리 비췄습니다.


이처럼 렘브란트의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에는 어둠을 상징하는 검정과 빛을 드러내는 흰색이 조화를 이룹니다. 검정과 흰색은 예수님의 고뇌와 하늘의 위로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동시에 완전한 인간으로서 고뇌하는 예수님의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천사의 왼쪽 날개 뒷편엔 그 밤에 주님처럼 깨어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기도하기 위해 깨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길과 인간의 길 사이에서 고뇌하며 더 높은 뜻을 구하기 위해 깨어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들의 뜻에 반하는 하늘의 뜻을 제거하기 위해 그 밤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림의 상단 중앙부엔 암흑의 배경 너머 광원이 보입니다. 어떤 이는 긴 밤을 세우고 아침을 열어가는 태양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서편에 지는 달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질흙같은 밤 너머에 잠시 숨겨있을 생명의 빛 말입니다. 끝끝내 당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 순종으로 인해 곧 밝아올 부활의 그 빛 말입니다.

생을 밝혀주던 불이 꺼지고 어두운 밤이 무겁게 내려앉을 때 렘브란트는 홀로이었고, 또한 홀로가 아니었습니다. 희망을 포기한 채 주저앉고 싶을 때 그는 먼저 그 밤을 지났던 주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니들로 동판을 반복해서 후벼파는 막막한 밤중의 곤난 속에서 그도 기도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주님을 도왔듯이, 그도 자신을 안으시는 주님을 만났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도 주님처럼 자신의 뜻을 꺾고 하늘의 쓴잔을 받았을까요? 그도 이렇게 기도했을까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삶 속으로


생의 겟세마네에 오를 때마다 우리는 간절히 구합니다. 하늘의 뜻이 우리의 뜻과 같이 이루어지기를… 그 결과 우리의 기도가 더해 질수록 자아의 욕망은 끝없이 자라고, 하늘의 뜻은 점점 소멸해 갑니다.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곧 아버지의 뜻이라고 믿기에 하늘의 뜻을 묻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도 묻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뜻만 구하며, 그 뜻대로 하늘을 움직이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기도는 이런 류의 우리 기도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라고 아뢰는 주님의 기도에는 아버지의 뜻이 있습니다. 자신의 뜻을 하늘에 뜻에 드리는 ‘내어맡김’이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원함과 아버지의 뜻이 끝없이 이해충돌하는 삶의 노정에서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가 됩니다.


예루살렘 동편 골짜기 무덤의 숲을 지나 감람산에 오르면, 거대한 올리브 나무를 만납니다. 성인 여럿이 손을 맞잡고 둘러서야 안을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크기입니다. 적어도 수령이 수천년에 이를 것만 같은 그 나무 앞에 서면 2천년 전 가장 어둡던 밤에 그 골짜기를 울리게 했던 주님의 기도가 떠오릅니다.


보호수로 지정된 거대한 올리브 나무 앞 돌판엔 예상이라도 하듯 이런 글귀가 새겨 있습니다.

“MY FATHER, IF IT BE POSSIBLE, LET THIS CUP PASS FROM ME ; NEVERTHELESS NOT AS I WILL, BUT AS THOU WILT.(Matthew 26:39)”


“내 아버지여, 능히 하실 수 있사오니,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죽음의 그림자가 뒤덮던 그 밤에도 변함없이 드린 주님의 기도,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생의 고통을 기억하는 몸으로,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구한 그 기도를 되뇌이는 사순절 아침입니다. 그 묵직한 기도가 몸을 흔드는 고난주간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소의 걸음

예배 시간:

일요일: 11:30am - 1: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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