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사순절 35일 움오름 묵상

2019년 4월 22일 업데이트됨


묵상의 말씀
  • 마 2: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 마 2: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성경 속으로


이 땅에 태어나는 대부분의 아기들의 출생은 축하받고 축복받는 기쁨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은 가슴아픈 잔혹의 역사였습니다. 피로 얼룩진 메시야의 출현은 그 출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베들레헴 주변의 2살 이하의 유아들이 집단학살을 당해야 했습니다.


유대인의 임금이 태어났다는 동방박사들의 소식에 깊은 위기감을 느낀 헤롯왕의 광기 때문이었습니다. 정통 유대인이 아닌 에돔 사람의 피가 섞인 헤롯은 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불안함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주위에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사람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숙청해 왔습니다. 이런 헤롯의 귀에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메시야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존재였습니다. 헤롯은 반정의 싹을 자르기 위해선 과감하고 철저하고,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메시야 탄생으로 예언된 베들레헴 주변의 2살 이하의 유아에 대한 광범위하고도 무차별적인 학살을 명령했습니다.


이에 요셉은 꿈에서 천사의 명령대로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떠납니다. 베들레헴에서 애굽의 국경까지 남서쪽 직선으로 160km떨어진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여느 길과 달리 광야의 길이었기에 산모와 갓난아기를 데리고 가야 하는 그 노정은 훨씬 힘들고 고달픈 피난길이었습니다. 가급적 뜨거운 햇볕을 피해 걷는다고 할 때 그 노정은 일주일 이상 소요되는 길고 험한 여행이었을 겁니다.

고단한 도망으로 시작한 인간의 삶, 예수님은 영접받지 못한 왕이었을 뿐 아니라, 철저하게 거부당하고 외면받은 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주님의 선택이었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었기에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간고를 많이 겪고, 질고를 아는 고난받는​ 종으로 사셨습니다.




그림 속으로


렘브란트는 아기 예수의 애굽으로의 피난과 관련한 작품을 모두 12점 남겼습니다. 그중 가장 먼저 그린 것이 1627년, 그의 나이 21세 때입니다. 그리고 가장 늦게 그린 것이 1654년, 그의 나이 48세 되던 해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작품은 가장 후기 작품이지만, 이 작품과 더불어 20대에 그린 작품을 비교해 묵상하시는 것도 좋은 접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1627년에 그린 최초의 그림을 보시면, 안정적 구도와 뚜렷한 색조대비, 그리고 뛰어난 묘사력 등이 보는 이로 하여금 현장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코발트 색 짙은 어둔 하늘 아래 아기예수의 가족은 빛의 인도하심 아래 애굽을 향하고 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여 여기 저기 경계하며 길을 가는 요셉은 신발도 채 신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팡이 하나만 의지하고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얼마나 다급하게 뛰쳐 나왔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양 어깨에는 메시야의 목숨을 책임진 영광과 고뇌를 표현이라도 하듯 빛과 어둠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발 앞을 비추는 빛의 인도를 따라 나귀를 끌고 있습니다. 왼손엔 나귀의 끈, 오른손엔 지팡이를 잡은 그에게 빛은 단지 한 걸음, 또 한 걸음씩의 앞만을 비추고 있습니다.


나귀 위에 앉아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마리아의 눈빛은 웬지모를 슬픔과 불안을 머금고 있는듯 합니다. 하지만, 아는듯 모르는듯 마리아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고, 아기 예수의 머리 뒤엔 후광이 비취고 있습니다. 지쳐있고, 불안해 보이기도 하는 이들을 태운 나귀 또한 고된 표정으로 늘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향해 머리를 떨군 채 걷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주제로 가장 후기인 1654년 작품은 어떠할까요? 이는 21세에 그렸던 최초의 작품과는 여러 부분에서 확연히 다릅니다. 21세에 그린 작품이 유화인 반면, 48세에 그린 그림은 에칭입니다. 앞서 21세에 그린 작품이 구도나 색조대비 부분에 있어 아주 뛰어났다고 말씀드렸는데, 이해 비해 48세의 작품은 웬지 허술해 보이고 빈틈이 많아 보입니다. 그 이유가 거친 선과 단색으로 표현한 에칭작품이어서가 아닙니다. 그 보다는 잘려나간 나귀의 발과 상반신만 보이는 요셉의 모습 등 불안정하게 보이는 구도로 인함입니다.


요셉의 외모는 초기작품에 비해 완전 노쇠한 노인의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근육이 사라진 외모, 아래로 길게 늘어진 수염 등이 얼마나 고단한 삶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팡이를 꽉 훔켜쥔 그의 손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아기와 아내를 지키겠다는 가장으로서의 다짐이 보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근심과 걱정을 띈듯한 그 얼굴은 웬지 자신의 신세한탄이 아니라, 자신들을 바라보는 관객을 향한 걱정과 눈빛으로 다가옵니다.


점점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는 요셉과 나귀의 모습은 마치 요단강에 법궤를 매고 먼저 발을 담그는 제사장들을 연상케 합니다. 또한 시내를 건너기 위해 점점 더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는 요셉은 홍해를 가르고 건너던 이스라엘을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발을 요단에 담근 그들로 인해 요단의 창일했던 물이 멈추고 벽을 이룬 것처럼 도도하게 흐르던 죄의 물결도 갈라져 갈 것입니다.


그런데, 렘브란트의 1654년 에칭작품을 가만히 보니, 당시 다른 화가들이 그린 같은 주제의 작품들 속이는 아기 예수 가족의 위풍당당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흔한 후광 하나 없습니다. 아기 예수의 가족은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도 모른채 초라한 짐과 행색을 길을 떠납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아무도 기댈 곳 없어 서로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평범한 난민가족으로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




삶 속으로


렘브란트는 아기 예수의 가족, 이른바 ‘성 가족(holy family)’을 그리면서 왜 후광 하나 넣지 않은 평범한 난민의 모습으로 그렸을까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요? 어디서 성 가족의 현실적인 도피적 모습을 그려낼 영감을 얻었을까요? 이는 평소 렘브란트가 누구를 자신의 시야에 담고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렘브란트 당시 암스텔담에는 구걸하는 집시가족들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해상무역으로 인해 급속히 유입된 자본주의의 발전은 양극화와 도시화를 촉진시켰으며, 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유랑하던 사람들이 점점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렘브란트는 이렇게 유랑화된 집시들의 모습을 여러 차례 다양한 모습으로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 중 헤롯왕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가는 아기예수 가족의 모습을 당시 암스텔담에서 구걸하던 집시가족에게서 발견했습니다.


그는 길에서 곧잘 만나던 이런 집시가족에게서 거룩한 가족의 이집트 피난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모습 속에 굳이 다른 화가들처럼 후광을 넣은 인스탄트 거룩을 넣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의 신앙 역시 인위적 거룩의 상품화를 원치 않았던 것을 아닐까요? 그는 이렇게 지극히 작은 이들 속에서 예수님을, 지극히 세속적인 것 속에서 가장 거룩한 것을 발견하던 진주장사(마 13)였습니다.



나귀를 타고 애굽으로 향하신 주님을 보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신 주님을 생각하는 고난주간 월요일 아침입니다. 렘브란트의 시선을 통해 아주 평범한 난민가족의 모습 속에서 이집트로 피난을 떠나는 성 가족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도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의 아픔 속에서 우리 주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주님을 우리 마음의 화폭에 담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고난에 함께 하는 길 아닐까요? 어쩌면 그리하는 것이 애굽으로 향하고, 십자가로 향하는 주님과 함께 걷는 발걸음 아닐까요?




소의 걸음


*p.s: 왜 예수님 가족의 피난지가 애굽이어야 했을까요? …



<렘브란트, ‘이집트 피난: 시내를 건너며’, 에칭과 드라이포인트, 1654년>

<이집트로의 피신, 유화, 프랑스의 투르 미술관 소장, 1627년>

예배 시간:

일요일: 11:30am - 1: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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