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사순절 25일 움오름 묵상

2019년 4월 22일 업데이트됨


묵상의 말씀
  • 창 22: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성경 속으로


25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습니다. 75세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약속이 무려 100세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실현 되었습니다. 중간에 우여곡절도 없지는 않았으나, 큰 민족을 이룰 약속의 아들이 부인 사라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노년의 아버지는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꿈만 같은 달콤한 나날이었습니다. 늘 원거리를 바라보며 하늘을 쳐다보던 그의 시선이 가까이에 있는 아들에게 고정된지도 십수년이 지난 어느날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 창 22:2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차라리 귀가 어두워 듣지 못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니 이러실꺼면 애초 내게 허락치 마셨으면 더 좋았을 것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그 아들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어떤 존재인지 뻔히 아시면서,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 하십니다. 말이 제물로 바치는 것이지 이건 아버지더러 아들을 살해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의 족속들의 타락한 종교문화를 그토록 싫어하시던 분이 어떻게 그들과 똑같이 인신제사를 요구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창세기 22장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이나 이삭의 순종이라는 고정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종교적 결단을 위해 아픔에도 눈 감는 행위야 말로 고귀한 믿음이요, 순종이다는 가치를 학습 당했습니다. 그런데,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죽임을 통해 자신의 신앙과 순종을 증명해 보이려는 행위가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일까요? 이런 의문을 갖고 이 이야기 속으로 한 걸음 내디뎌 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아브라함은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하인과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팬 뒤 모리아산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를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길을 떠나는 것과의 간격은 그저 하룻 밤의 어둠으로만 적시되어 있을 뿐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아마도 말로 표현할 수없는 아버지의 긴 숨, 그 탄식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주거지인 브엘세바를 떠나 길을 나선지 사흘째 되던 날, 그들은 모리아 산에 도착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인들을 산 아래 남겨둔 채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불과 칼을 들고 산을 올랐습니다. 아마도 두 하인들이 함께 한다면 자신의 부당하고 비정상적인 행위를 막을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었을 겁니다.


부자가 산을 오를 때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묻는 질문이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저미게 합니다.

  •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 22:7)

차마 그 양이 아들이라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미어오는 울음을 삼키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창 22:8)


이 대답은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을까요? 아니면, 아들을 속이려는 거짓말이었을까요? … 성경은 아브라함의 감정에 대한 일체의 설명도 언급도 회피한 채 담담히 그 과정만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산을 올라가는 긴 시간 동안 부자지간에 나눈 단 한번의 대화, 그리고 긴 침묵의 시간이 지난 밤을 덧칠했던 어두움보다 더 짙게 가슴을 덧칠하고 있었습니다. 먹먹함을 안고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산을 오른지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장소에 다다랐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었습니다. 그리고 별안간 아들 이삭을 결박해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아들은 얼마나 당황했고, 황당했는지 일체의 반항도, 단 한마디의 외침도 내뱉지 않았습니다. 마치 아버지의 신앙에 체념한듯, 아니면 대부분의 믿음 좋다는 사람들이 언급하듯 순종한듯 그 어떤 거부도, 몸부림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노구의 몸으로 자신의 몸을 결박하는 아버지의 주름지고 못 박힌 손에 자신을 내맡겨 장작 위에 올려집니다(이 부분에 대해 성경은 일체의 진술 또 묘사를 허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여야 하는 이 비극은 어떻게 끝이 날까요? 성경은 그 다음 이야기를 이렇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한 순간 천사가 다급하게 외칩니다.

  •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너의 아들,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창 22:11-12)


아브라함의 마음 중심을 확인한 하나님은 뿔이 수풀에 걸린 한 숫양을 가리키시며 그것으로 아들 이삭을 대신해 번제드릴 것을 명하십니다. 이로부터 연유된 ‘여호와 이레’, 하나님의 준비하심, 예비하심은 비극에서 하나님의 복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드라마틱한 이 사건은 좋은 신앙의 예시가 되어 순종을 강조하는 대표 사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의 공포와 고통과 눈물을 제거(Out Focusing)한 그의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남아 있습니다.




그림 속으로


희생제물이 되는 이삭의 모습을 렘브란트는 두 번에 걸쳐 화폭에 담았습니다. 한 장은 대략 1635년에 그렸고, 다른 한 장은 20여년 후인 1655년에 그렸습니다. 두 작품은 시간의 차이 뿐 아니라, 그림의 재료와 구도에 있어서도 여러모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짧게나마 두 작품을 비교를 해 보면…


1) 1635년 <이삭의 희생>

먼저, 1635년에 그린 <이삭의 희생>입니다. 그림에는 불안정한 사선구도 속에서 세 인물이 등장합니다. 맨 왼쪽 위쪽에 천사가 중간 부분에 위치한 아브라함을 말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엔 결박당한 아들 이삭이 장작더미 위에 누워있습니다.


렘브란트는 왜 이토록 불안정한 구도를 사용했을까요? 어쩌면 어색하게 장작더미를 베고 누운 이삭의 불안을 묘사하려던 것은 아닐까요? 종교개혁 이전 카톨릭의 가르침 속에서 믿음과 순종의 모본이 되어 자주 강론되고 회자되던 아브라함 행위 속에 가려있던 아들 이삭의 불안과 고통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투박하고 큼직한 아버지의 왼손은 아들의 얼굴을 온통 감산 채 짓누르는 느낌마저 듭니다. 아들은 눈도 입도 가려진 채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는 순종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왜 아버지는 아들의 인생인데도 그에게 단 한번도 묻지 않고, 본인의 판단과 결정으로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일까요?


그런데, 렘브란트의 그림 속 이삭은 어리고 유하여 아버지에게 제압당할 수 밖에 없는 아들이 아니라, 아주 건장하고 근육질인 아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굵게 드러나 근육, 여전히 힘이 있는 모아진 두 다리는 언제든 자기 의지로 그 상황을 모면하고 벗어날 수 있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삭의 결박당함이 아버지의 무모한 강요만이 아닌, 암묵적인 아들의 동조와 순종 하에 이루어진 일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빼놓을 수없는 압권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바로 떨어지는 칼입니다. 칼을 든 아브라함의 오른손을 천사가 잡자 그 아래로 칼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비스듬이 떨어지는 칼의 각도가 동적인 느낌을 주려고 그려둔 것인데, 묘하게도 가장 동적인 동시에 가장 정적으로 이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순간에 관객들의 시선을 묶어 두려는 듯한 화가의 의지가 서려있습니다.


그런데, 렘브란트가 그린 칼을 다시 주목해 보십시오. 매우 남다릅니다. 아브라함이 허리춤에서 나와 이삭의 드러난 목을 향하던 칼이 슬며시 잡은 천사의 손(힘있게 꽉 잡지 않았음)에 의해 아브라함의 손에서 힘없이 떨어집니다. 그 칼날의 끝은 무디고 달아 둥그렇습니다. 어떤 희생제물의 목도 벨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마치 이 칼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장식용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렘브란트가 그런 칼을 그림의 중심에 배치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쩌면, 차마 찌를 수 없는 그의 마음, 아니 아들의 목을 향해 찌르기 전 지난 밤 수도없이 자신의 가슴을 향해 찌르고 또 찔러 무디어 진 것을 형상화 한 것은 아닐까요? 포악하고 무자비해서 아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신앙과 순종을 강요하는 모진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아들을 죽이기 전에 자신을 먼저 죽인 아파하는 아버지를 그린 것은 아닐까요?



2) 1655년 <이삭의 희생>

1655년, 처음 그림을 그린 20여년 후 렘브란트가 다시 같은 주제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먼저 작품이 희생 직전에 아브라함의 손을 낚아채는 긴박감이 느껴지는 반면, 후기 작품은 희생 의식에 더 진지하게 몰입해 있습니다. 앞 작품이 이삭의 두려움과 예상치 못한 천사의 출현에 놀라는 아브라함을 묘사했다면, 후기 작품은 보다 진지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삭은 안정된 자세로 무릎을 끓고 앉아 있습니다. 이전 작품과는 달리 운명을 따르고 하나님의 뜻과 아버지의 뜻에 따르려는 차분함이 느껴집니다. 흘러내리는 피를 받기 위한 커다란 쟁반도 의식의 의미를 한층 부각시킵니다.


그림자가 드리워져 움푹 패인 아브라함의 눈은 그의 깊은 슬픔과 아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사의 모습도 이전 작품과는 달리 날개의 크기나 표정에 있어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말리려 잡은 손 또한 급히 잡아채지 않고 훨씬 더 차분하게 두 팔로 그를 감싸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을 가만히 보니 이전보다는 더 어린 아들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는데, 결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두 손은 그냥 앞으로 내민 채 무릎꿇은 모습이 그냥 아버지에게 자신을 내어맡긴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른쪽 구석에서부터 사선으로 내리비치는 한 줄기의 빛입니다. 이 한 줄기 빛이야 말로 다 표할 수 없어 입을 닫고 눈마저 가린 아버지와 아들을 아픔과 슬픔으로부터 건져내 줍니다.


이 그림을 그렸을 때 렘브란트는 50대에 접어든 나이였습니다. 1642년에 <야경>이라는 작품을 그린 이래 그의 명성은 떨어지고, 사람들은 그를 한물 간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여러모로 아픔과 어려움이 몰려 왔습니다. 그런 속에서 렘브란트는 흑백 톤의 에칭으로 작품을 남겼습니다.


에칭(etchin)이란 동판화 기법 중 유일하게 부식이 아닌 뾰족한 도구를 사용해 동판에 수없이 많은 선을 그어 작품을 만드는 기법입니다. 렘브란트가 그런 작업을 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쩌면 유화 작품을 그릴 물감을 살 돈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자식을 잃은 아픔을 아는 아버지로서 차마 색으로 표현할 수 없어 동판 위에 수천 수만번 긁어(동판에 새긴 상처) 아버지와 아들의 원형적 아픔을 형상화하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생의 아픔과 눈물을 머금은 화가가 밝은 색채가 아닌 작은 동판(16x13cm) 위에 수천번, 수만번의 선을 그어 작품을 완성했다는 사실이 가슴 먹먹함으로 다가옵니다.


렘브란트 그는 20여년의 시간이 지난 뒤 왜 동일한 주제의 작품을 남겼을까요? 붓이 아니라, 날카로운 못조각을 잡고 수없이 많은 쇠소리를 만들어 내며 작업하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 해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의 아픔 앞에서도 입을 닫고 눈을 닫았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안정적인 자세와 시선을 가진 인물들의 모습 속에 있지 않을까요? 오른쪽 윗쪽에서 사선으로 내려오는 한 줄기 빛 속에 그 대답이 있지 않을까요?



삶 속으로


‘여호와 이레’… 교회에서 자라고 배우는 동안 얼마나 많이 되뇌이고 들었던 말씀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준비(예비)하심으로 가기까지 검게 칠해진 그 긴밤과 그림자로 처리되어 보이지 않는 아브라함의 아픔을 보지 못했습니다. 잘난 아버지, 믿음의 거장이 된 아버지의 신탁 아래 결박당해 장작 더미 위에 올려진 이삭의 당혹함과 슬픔은 아웃 포커싱(Out Focusing)했습니다. 그것이 참된 신앙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전한 순종이라 여겼습니다.


아브라함이 왼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이삭의 얼굴 표정을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려져 있다고 보려고 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과정을 생략하고 고통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얼굴을 다 가린 투박한 손 아래 떨고 있는 이삭의 아픔을 보아야 합니다. 끝이 무디고 둥글어져 장식품처럼 보이는 칼의 모습 속에 수없이 자신의 가슴을 찌른 아버지의 눈물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신앙은 참된 신앙이라기 보다는 무속에 가까운 기복신앙일 뿐입니다.


상상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차마 쳐다볼 수 없어 손으로 가린 아들 이삭의 보이지 않는 얼굴을 상상해 봅니다. 가장 고통받는 이의 그 아픔에 눈 감았던 지난 날의 믿음 좋다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온갖 경건을 흉내내고 모범적 신앙을 설교했지만, 보아야 할 것을 외면한 바리새적 모습... 인간의 고통을 마주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신앙이 과연 참 신앙인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믿음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 손으로 아들의 얼굴을 감싼 채 다른 한 손으로 칼을 든 아버지의 모습은 다른 누군가의 죽음을 담보로 하여 자기 신앙을 증명해 보이는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처참히 죽은 아들을 안고 말없이 하늘을 향해 오열하는 어머니의 아픔 ‘피에타’였습니다. 칼은 든 아브라함의 모습은 눈물을 흘리는 사라였습니다. 허리감개와 확연히 드러난 몸, 누구인지 알 수 없게 손으로 가려진 얼굴, 하늘의 빛을 발하는 몸, 죽은 듯 움직임이 없는 몸 등이 피에타의 구성요소들과 일치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모든 것은 이삭의 모습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오늘은 사순절 기간이자, 71년전 당시 제주 인구의 1/10인 3만여명이 참혹하게 희생된 날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지금껏 이 땅엔 수많은 아픔과 죽임당함이 끊이지 않고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 눈물이 마르지 않은 남겨진 가족들이 먼저 보낸 이를 가슴에 안고 견디며 살아가는 잔인한 사월… 그 죽은 땅, 황무지에 하늘로부터 내려오던 그 빛줄기 처럼 이 땅을 치유하는 라일락 향 드리워지길 손 모읍니다.


그 향은 자연스레 피어나는 향이 아니라, 이 땅에 누군가가 심은 나무에서 베여나듯이 소리없는 아브라함의 울부짖음, 마리아의 찢긴 가슴의 소리를 듣고 보는 이들을 통해 아물어 갈 것입니다. 가려진 손 아래 이삭의 눈물과 예수님의 고통을 직시하는 이들에 의해 치유되어 갈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이 물음에 답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소의 걸음



<렘브란트, The Sacrifice of Isaac, 유채, 1635, The Hermitage, St. Petersburg>

<렘브란트, The Sacrifice of Isaac, 유채, 1655, The Hermitage, St. Petersburg>

예배 시간:

일요일: 11:30am - 1: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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