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사순절 24일 움오름 묵상

2019년 4월 4일 업데이트됨


묵상의 말씀
  • 행 7: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 행 7: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 행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성경 속으로(역사 배경과 더불어)


시장 경제 속에서는 누구나 상품을 팔아 살아갑니다. 그것이 유형적 상품이든, 노동이라는 무형적 상품이든 간에 각자의 상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 갑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종교를 상품화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하려고 합니다. 이른바 ‘이타심’을 판매하여 자기 이익을 극대화 한다는 것이 이기적인 인간들에게 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고대로부터 그 효율성을 이미 입증받은 이기적 전략입니다.


로마제국의 통치 하에 있던 예루살렘 성전은 거대한 종교산업이었으며, 예루살렘 경제의 근간이었습니다. 이타심을 팔아 막대한 부를 챙기는 그 종교산업의 맨 꼭대기에는 귀족적인 대제사장 가문이 있고, 아래에는 매년 두 번 성전 일을 돕는 지방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24개조로 편성되어 차출되는 지방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제사장에 비하면 소작농에 가까왔습니다.


성전 엘리트가 독식한 부와 권력 때문에 고위층 제사장과 지방 제사장 사이는 틀어졌고, 가난한 지방 제사장들은 종종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후 유대 반란 때 성전 제사장들과 일반 제사장들 사이에서 증오가 폭발했고, 두 진영은 서로에게 욕하고 돌을 던졌습니다. 요세푸스는 유대 반란 직전에 몇몇 가난한 제사장이 굶어죽었다고 기록합니다. 대제사장들이 이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십일조를 틀어쥐고 있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상권이 그들의 감독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지방 제사장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사장들의 회심사건은 성전 제사장 입장에서는 일반 백성들의 개종보다도 훨씬 심각한 사태로 인식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이처럼 기존질서에 불만을 품은 사람, 하층민, 소외된 사람, 이주민 공동체 사이에 들불처럼 번져 나갔기에 기득세력은 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즈음 시범 케이스로 공회 앞에 끌려온 사람이 스데반 집사였습니다. 예루살렘 제사장 그룹의 권력유지의 핵심인 성전제도를 거슬렀다는 것이 스데반의 죄목이었습니다. 증인이라고 매수되어 나온 이들은 스데반의 언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습니다.


“이 사람은 쉴 새 없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했습니다. 성전과 율법을 부정했습니다. 이 사람이 나사렛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해 준 규례를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들었습니다.”


거짓 증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 사용했던 바로 그 혐의를 스데반에게 그대로 적용시켰습니다. 동일죄로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받았기에 스데반의 죄목은 분명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죽음에 이르게 될 게 뻔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스데반의 메시지에는 거짓증인들의 진술을 조금도 뒤집지 않습니다. 자신을 위한 일체의 변론이나 변호를 하지 않습니다.


되려 그는 설교의 대부분에서 토라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백성들이 그들을 계속 거부하고 핍박했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그는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다음과 같은 말로 간단히 무시했습니다.

  • 행 7:48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안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스데반의 메시지는 전적으로 자기 백성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 팔레스타인 밖에서, 성전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타나시는 하나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스데반은 성전제도를 부정합니다. 예루살렘 경제의 핵심인 성전을 심각하게 거스럽니다. 따라서 비록 매수된 증인들이 거짓말을 했을지라도 현장에서 여지없이 입증된 셈이었습니다.


이에 종교권력자들은 스데반을 법정에서 끌어내 돌로 쳐 죽이게 합니다. 물론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겐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로마의 고유 권한이었습니다. 유대 당국이 로마인의 손을 빌려 예수를 처형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로마법정에 스데반을 세우지 않고, 돌로 내리쳐 죽이는 즉결심판을 자행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스데반의 처형을 사법적 형 집행이 아니라, 군중이 들고 일어난 돌발적 행동이었다고 꾸며댔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그들이 스데반의 죽음에 관여하지 않았던 것처럼 꾸몄을지라도, 실제로는 군중을 사주하여 사형시킨 사악한 행위를 자행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 이후 사도행전은 짧지만 그것이 공인되지 않은 인민재판이었음을 강조합니다. 누가는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그를 생각하여 몹시 통곡하였다”(행8:2)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통곡한 사람들은 유대인의 장례법을 준수하는 경건한 유대인을 의미합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계기로 초대교회에 대한 박해가 심해졌기에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그렇기에 스데반을 장사한 이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은 마치 예수님을 장사지낸 산헤드린 공의회원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같은 경건한 정통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즉결심판을 받아 돌에 맞아 스데반이 죽은 일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았으며, 불의에 저항하는 깨어있는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언급하는 성경은 어쩌면… 순교한 스데반 집사의 주검을 거두어 씻기고 애도하고, 장사한 사람들이 사도들이나 기독교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을 애둘러 고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핍박이 두려워 예루살렘을 떠나고, 불안해서 숨어 들었을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의 비겁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을 대신해 경건한 유대인들이 나섰다는 것을 언급하며 이후 스데반의 신앙을 따라 기독교의 참된 진리를 살아갈 사람이 어떤 이들이 될 것인지를 예시하고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마지막으로 부르짖은 몇 마디 말들을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 없었던 누가가 어떻게 이토록 자세히 기록할 수 있었을까요? 그건 누가와 함께 마지막까지 했던 사도 바울이 전해주었음이 분명합니다. 스데반이 죽어가던 그 현장에서 돌을 들던 이들의 옷을 맡았던 사람이 바로 바울, 그도 스데반의 죽음을 당연히 여겼지만, 그의 기억 속에 스데반의 마지막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충격으로 남아 있었나 봅니다.


스데반은 마지막으로 몇 마디를 외친 후 잠이 들었다고 성경은 담담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몇 마디 외침은 분명 그의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 하셨던 기도의 재현이기도 했습니다.

  • 행 7:59-60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림 속으로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그림수업을 받은지 몇 년 만에 렘브란트는 동네 친구 리벤스와 함께 고향 마을에 독립 공방을 차렸습니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전해지는 그의 작품들 중 최초로 자신의 서명이 담긴 작품 <스데반의 순교>를 그렸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19세였습니다. 성인(saint)을 인정하지 않는 개신교의 화가가 최초의 작품으로 카톨릭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던 ‘스데반 집사ʼ의 순교장면을 그렸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그 그림의 내용마저 카톨릭에 저당잡히지는 않았습니다.


이 부분은 렘브란트 이전까지 스데반 집사의 순교를 그린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스데반 집사의 순교를 그린 렘브란트 그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아담 엘스하이머(Adam Elsheimer, 1578-1610)의 1605년도의 작품과 비교해 보면 분명한 차이가 납니다. 렘브란트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천사와 하나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림에 없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은 기존의 작품들에서는 볼 수없는 매우 예외적 현상입니다.


이 그림의 본문인 사도행전 7:54-60을 근거로 하자면 가톨릭 화가들처럼 하나님과 예수를 그려 넣는 것이 본문에 바탕한 것이고, 훨씬 더 합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는 관습적으로 순교자의 승리를 상징하는 월계수를 손에 든 천사는 물론이거니와 하나님과 예수님조차도 작품 속에 그려넣지 않았습니다.


다만 스데반 집사의 순교를 인정하는 빛 - 자연채광이 아니라, 하늘의 영광이 배여있는 빛 - 만을 죽어가는 스데반 위에 비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놀라운 것은 렘브란트 자신의 모습을 스데반 바로 뒤에서 돌로 내리치는 사람들 사이에 그려 넣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매우 역설적 표현이었습니다. 성경은 스데반의 순교 직전 그가 하늘이 열리고, 보좌에서 일어서신(앉아계신 것이 아님) 예수님을 보았다라고 증언함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는 이를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제거했습니다.


한 신실한 사람의 죽임당함의 자리에 천사와 예수님의 부재(不在)를 그렸고, 하나님의 침묵을 담았습니다. 이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며,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죽임 당하신 것을 설명해 주는 부록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를 그리는 개신교 화가로서, 그리고 스데반의 순교를 바라보는 신앙인으로서 렘브란트는 오로지 스데반만이 본 하나님과 예수를 그리는 책무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되려 하나님의 부재와 침묵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의 뒤에 남겨질 세대들에게 더 설득력있는 하나님의 임재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19살, 자신의 서명과 날짜를 명기한 첫 작품인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 렘브란트는 신앙을 살아간다는 것이 진정 어떤 것인지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조심스럽게 추론해 봅니다. 그것은 하늘이 열리고, 천사가 월계관을 갖고 다가오고, 하나님이 보이는 영적 세상이 아니라, 성령님의 내밀한 빛에 이끌리어 살아가는 겸허한 따름임을 말해 줍니다.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두 손을 활짝 편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스데반과, 그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화면 위쪽 한 인물이 대비됩니다. 그 인물은 스데반이 죽임을 당할 때 그를 죽이던 사람의 옷을 보관해 주던 청년 사울이었습니다. 돌에 맞아 처참히 죽어가던 스데반은 당시 하늘의 영광을 보았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던 사울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예상치 못했던 자기 검열을 갖게 합니다. 참된 신앙이란, 보여지는 표면성이 아니라, 어떤 내밀성을 지녔느냐에 따라 질적 수준이 정해짐을 말해 줍니다.




삶 속으로


렘브란트는 ‘순교’를 테마로 그의 첫 작품을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은 앞서 언급했듯이, 기존에 순교를 극적으로 표현했던 여타의 화가들과는 분명 다른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어쩌면 렘브란트는 극적인 방식으로 죽는 순교를 강조하는 종교일수록 일상생활에서 순교자적인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회피하기 쉽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닐까요? 일생의 단 한번 극적인 순교가 아니라, 일상의 순교야말로 기독교가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믿음의 길이다는 것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사순절, 주님의 죽으심을 묵상하며 그 길을 걷는 이 시간에 우리의 죽음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그리스도인의 삶은 멋있게, 장엄하고 화려하게 영광스런 순교가 아니라,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전 15:31)고 고백한 사도 바울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일상의 삶이 아닐까요?


렘브란트는 스데반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통해하며 그의 죽음을 화폭에 옮겨 놓았습니다. 그 순교 장면을 목격한 자로서 자신을 등장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심정을 담아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스데반의 순교의 자리에, 그리고 우리 주님 예수님의 십자가의 자리에 우리의 얼굴을 그려놓고 목격자로, 증인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소의 걸음




<렘브란트, 스데반의 순교, 1625년, 유채, Musée des Beaux-Arts de Lyon>

예배 시간:

일요일: 11:30am - 1: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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