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사순절 21일 움오름 묵상

2019년 4월 3일 업데이트됨


묵상의 말씀
  • 눅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렘브란트의 작품 <성전의 한나, 기도를 시험하는 사무엘>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림의 색감은 얼핏보더라도 렘브란트를 연상케 합니다. 그림의 전면 중앙엔 한나와 그의 아들 사무엘이 앉아 있고, 왼쪽 뒷부분엔 희미한 형상을 한 채 세 사람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장소가 성전임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는 듯 높다란 천장을 향한 벽면엔 십계명의 두 돌판이 히브리어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십계명 두 돌판 사이에 모세의 구리뱀이 마치 여느 예배당의 십자가 마냥 걸려 있습니다. 그 맞은 편에는 십자가의 죽음과 대치되는 황금빛 천사가 매달려 있습니다. 마치 부활의 영광을 형상화한 듯 보입니다.


그런데, 아주 묘하게도 렘브란트는 아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듯한 한나와 사무엘을 구리뱀과 황금빛 천사의 중간에 위치시켰습니다. 한나가 앉은의자의 옆부분에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는듯한 커다란 못 하나를 기대어 두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사사요, 선지자였던 사무엘의 삶이 예수님이 가셨던 그 십자가의 길과 연이어진 것을 암시하는 듯해 보입니다.


크게 뜬 한나의 두눈은 그녀의 아래 무릎을 꿇고 있는 사무엘을 향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두 눈은 마치 자신의 아들이 가야할 길을 다 알고 있다는듯 한없이 앞을 바라봅니다. 마치 아들을 바라보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차마 내려다 보지 못하는 어머니는 자신의 왼쪽 신발이 벗져진 줄도 모른 채 입술을 다물고 앉아 있습니다.


그녀의 손에 든 성경은 조금 전 펼쳐보았지만, 무엇에 놀랐는지 금방 닫은 것 같습니다. 왼쪽 손은 조금 전 읽었던 부분을 여전히 가리키고 있지만, 오른 손은 이내 성경을 덮은 채 가리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렇게 놀라게 했을까요? 덮혀진 성경은 주변의 풍경과 성전 안의 물건들로인해 그 내용을 넌지시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어린 아들 사무엘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가야 할 그 십자가의 길을 알고 있다는 듯 그의 눈은 어머니가 오른 손으로 누르고 있는 그 성경을 한없이 주시하고 있습니다. 어린 사무엘의 입술은 닫혀 있지만, 그는 더없는 간절함과 굳은의지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무릎 꿇고 어머니에 기대어 기도하는 어린 사무엘의 모습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바위에 기대 처절하게 기도하던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성경은 어머니 한나가 사무엘을 성전에 맡기며 제사장이 입는 옷 에봇을 지어 입혔다고 했는데, 렘브란트의 그림 속의 사무엘은 전투를 앞둔 중세 기사의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의 굳은 마음을 하나님께로 되돌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 백성들에 향하게 하기위한 전사의 고뇌를 보는 듯합니다. 그런 면에서 어린 사무엘의 기도는 단순한 부르짖음이 아니라,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간절한 아룀이었습니다. 지난한 삶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영혼의 무장이었습니다.


기도는 예나 지금이나 뭐로 간단하게 설명하기엔 너무 어려운 신비입니다. 무엇을 구하며, 얼마나 간절히 기도해야 되는지, 어떻게 부르짖고, 아뢰어야 응답되는지 여간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한 필요성과 어려움을 체감했는지 예수님께 아예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기도를 우리는 '주님의 기도’라고 합니다. 단순하면서도 완전한 기도, 하지만, 예배 때마다 마치 주문처럼 공허하게 입으로만 이 기도를 드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마태복음6:9-13을 보면, 예수님께서 보배로운 그 기도를 가르쳐 주시기 전에 이렇게 권면하셨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 마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말씀은 했던 말 하고 또 하는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때, 입술을 꼭 다문 채 말씀을 주시하며 기도하는 사무엘의 모습은 주님의 기도를 온 몸으로 아뢰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사람의 간절함입니다

.

<주의 기도>라는 책을 읽고 어떤 이가 이렇게 서평을 남긴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주의 기도, 얼마나 익숙하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지 29년이 되었으니, 외워도 수만 번을 족히 외웠을 것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일본 선교사로 나가려는 꿈에 부풀어 일본어로 암송한 적도 있고, 잘 알지도 못하는 라틴어로 외운 적도있습니다.


목사이기에 주기도문에 관련된 설교는 얼마나 했을까요? 다 헤아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주기도문을 읽다 울어본 적이 없습니다. 신학적으로 잘 알고 있다고 믿고, 헬라어 읽으면 다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주기도문의 시작인 '아버지'라는 단어를 읽으면서 울어본 적은 없습니다.


저는 압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러나 저의 마음을 울린 적은 없었습니다. 진심으로. 그런데 오늘 이 책을 읽기 위해 주의 기도를 한 번암송해 보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사순절 아침…

뜨거운 무언가 볼을 타고 내립니다. 별 의미없이 기계적으로 암송했음이 죄송합니다. 주님의 기도… 그 기도를 시작도 하기도 전에 눈 앞에 자욱한안개 드리워지니 오늘은 주님의 기도를 채 드리지 못할 듯합니다. 그저 외마디 속삭임으로 기도를 대신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소의 걸음



예배 시간:

일요일: 11:30am - 1:00pm

logo_color.png

©2019 by 움오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