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사순절 15일 움오름 묵상

2019년 4월 3일 업데이트됨


묵상의 말씀
  • 마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 중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마 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 마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 막 10: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 눅 13: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이 말씀들을 분류해 보면,

마 19:30과 막 10:31은 ‘부자청년 이야기’의 결론부

마 20:16은 ‘포도원 품꾼 비유’의 결론부

눅 13:30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권면의 결론부



이 부분에서 우리는 다음의 몇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 위의 말씀들은 각각의 말씀들이 아니라, 모두 ‘영생’의 문제로 찾아온 부자청년(관원)의 이야기로 촉발되었고, 그와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어제 나눈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 19:26 )


이 말씀은 부자청년 이야기의 결론이었습니다. 포기할 수 없는 것의 아픔을 안고 부자청년은 울면서 돌아갔습니다. 그를 보며 주님께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셨지요. 그때 제자들은 “아니, 그러면 도대체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누구입니까?(있기는 합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때 주님의 말씀이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 19:26 ) 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자기를 비롯해 제자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고 있는지를 피력했습니다. 주님은 그러한 제자들이 그 수고의 여러 배를 보상받을 뿐 아니라, 영생을 상속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 19:30)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과 관련된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느낌이 오십니까?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먼저되고, 나중되는’ 것의 구체적인 설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부자청년의 결론부와 포도원 품꾼의 결론부가 동일합니다.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둘째, 이 말씀은 ‘하나님의 불공정함’을 말씀합니다.

: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하시는 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불공정함입니다. 포도원에 들어와 일 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아침 일찍 들어와서 일하는 사람 ② 삼시(9시)에 일한 사람 ③ 육시(12시)에 일한 사람 ④ 구시(오후3시)에 일한 사람 ⑤ 십일시(오후 5시)에 들어와서 일한 사람


일꾼을 모집한 시간을 보면,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을 위해 일꾼을 모집한 것이 아니라, 일꾼들을 위해 포도원을 만든 사람 같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회사를 위해 직원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력고용을 위해 회사를 만든 분 같습니다.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임금도 숙련공, 비숙련공 차등하지 않고, 모두에게 동일한 임금을 적용합니다. 뿐만 아니라, 근무시간에 상관없이 하루 일당에 해당하는 1데나리온이라는 동일임금을 적용합니다.


공정사회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매우 불공정합니다. 그래서 먼저 온 사람들이 불평했습니다. 이 부분을 영생의 부분으로 바꾸어 보십시오. 어떻습니까? 그래도 여전히 불편하십니까? 만약, 하나님의 불공정함이 없었다면, 어떻게 ‘낙타’같은 우리가 바늘 귀를 통과하여 영생을 소유한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셋째, ‘먼저된 자’와 ‘나중된 자’의 의미입니다.

: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주인은 늦게 온 사람부터 먼저 일당을 주고, 일찍온 사람들이 늦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왜 하셨을까요? 단지 돈을 늦게 준다는 의미일까요?


돈을 일찍 받고 늦게 받고의 시간차이는 기껏해야 1분 정도 밖에 차이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중요했을까요? 헬라어 원어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라는 단어 <πρωτος 프로토스>에는 ‘먼저, 중요한’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중'이라는 단어 <εσχατος 에스카토스>에는 ‘나중, 보잘 것 없는’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나중'으로 번역하지 말고, '중요한'과 '보잘 것 없는'이라는 뜻으로 번역해 보면 어떨까요?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 되고, 중요한 사람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되리라.'


이러한 번역도 가능합니다. 그러면 아침 일찍 일하러온 사람들은 스스로를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됩니다. 늦게 일하러 온 사람들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중요한 사람이 됩니다. 구원과 영생의 부분에서 그렇다는 겁니다.


정리해 봅니다.

우리는 구원과 영생의 부분에 있어 우리의 결단, 열심 등 얼마나 우리가 수고했는지, 우리가 많은 것을 포기했는지 등 우리의 노력과 수고를 이야기합니다. 마치 먼저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일꾼들처럼. 하지만, 주님은 이 모든 것의 시작과 이유가 ‘불공정한 하나님’으로 인한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불공정함이 없었다면, 바늘 귀를 통과하는 낙타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불공정함이 없었다면, 보잘 것 없는 우리가 어떻게 이처럼 ‘중요한 사람’이 되고, 존귀한 영생의 상속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여전히 울면서 되돌아 선 부자청년처럼 포기하지 못한 한 가지를 안고 괴로워 하고, 울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처럼 당당하게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따랐습니다”고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는 ‘십일시(오후 5시)’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우리를 포도원에 넣으시려 인간의 저자거리로 오셨습니다. 보잘 것 없는 ‘나’라는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 고난의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불공정함과 주님의 이 은혜를 더더욱 깊이 묵상하는 사순절 아침 포도원에 부르심을 감사드립니다. 존귀한 사람, 중요한 사람으로서 오늘 이 하루도 존귀하게 가꾸어 가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오후 5시 포도원 일꾼 드림



소의 걸음



예배 시간:

일요일: 11:30am - 1: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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