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나를 리셋(reset)하라”

어둠과 빛의 대비를 통해 그림을 그리는 길을 연 사람은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입니다. 그의 삶을 보면 작품의 명암만큼이나 매혹적이면서도 위험스럽다고 느낍니다. 놀라운 재능만큼이나 통제할 수 없는 불같은 성격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 성격 때문에 카라바조는 6년간 15번의 폭력전과를 기록했고,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다 마침내 생을 마치기에 이르렀습니다.


카라바조의 작품 중 근래 자꾸 떠올랐던 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입니다. 동일한 주제로 여러 차례 그렸지만, 특별히 마음에 다가왔던 것은 그의 생애 마지막인 1610년 작품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입니다.


이 작품은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 웬일인지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는 승리의 기쁨에 차 관객을 바라보는 영웅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죽인 블레셋 (Palestine) 적장 골리앗을 연민과 슬픔을 담아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카라바조는 다윗을 그렇게 표현했을까요? 대부분의 학자들은 카라바조가 그린 목이 잘린 그림에는 끔찍한 살인자와 천재 화가로서의 이중적 삶이 담겼다고 합니다. 이를 테면, 젊은 날의 자신과 나이든 자신이 한 화폭 위에 공존하는 것이지요. 자신이 지닌 삶과 죽음의 이중성을 비롯해, 되고 싶었던 자신과 그렇지 못한 현실과의 괴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카라바조는 자신의 내면에 깊이 감춰있던 골리앗이라는 포악함과 추악함을 죽이고자 했으나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생을 마쳤습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엔 어린 소년에게 당한 어이없는 죽임에 대한 골리앗의 수치심과 참혹한 표정만큼이나 크고도 깊은 카라바조의 회한이 담겨 있습니다.


13세에 화가가 되어 20세에 '테니브리즘'(Tenebrism)을 열었던 천재화가이면서, 동시에 음습한 도시의 뒷골목을 배회하며 싸움을 벌이다 도피하던 범죄자의 자기부정이 있습니다. 몸 서리치게 아파하던 자기 이중성을 그림에 옮기며 진정한 구원과 거룩에 목말라 하던 이의 통한이 있습니다. 짙은 어둠을 가르고 침습해 오던 빛만큼이나 간절히 바라던 구원에 대한 열망이 있습니다.


동전의 양면만큼이나 진한 인간의 이중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성정이라 하여 통제하지 않고, 훈련하지 않으면 자신이 자신을 헤치는 ‘자기살해’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젊은 날의 자신이 훗날 나이 든 자신을 만났을 때 이중성에 몸서리치며 ‘자기살해’를 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넘쳐나는 이중성을 날마다 비워가야 합니다. 비우지 않고, 채워지는 대로 그냥 산다면, 거룩한 것이 담길 자리가 없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의존하던 틀이 우리의 사고를 가두고 말 것 입니다. 루틴하게 반복하던 일상의 패턴이 바뀌면 상황이 바뀝니다. 새로운 시각이 새로운 삶을 열어줍니다.


언젠가 스쳐가던 한 드라마의 대사가 마음에 들어 왔습니다. “사람이 서른 넘으면 부모덕 볼 것도 없고, 탓할 것도 없어요”. 언제까지 남 탓하고, 성격 탓하고, 환경 탓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간 평생 끝나는 그 날까지 넘쳐나는 ‘이중성’ 때문에 몸서리치다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엔 생이 너무 짧습니다. 이 짧은 생을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편안했던 길에서 벗어납니다. 안정되고 익숙했던 길에서 벗어나 새 길 위에서 이중적이던 나를 리셋(reset)합니다.


-소의걸음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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