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함민복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 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에서 짜장면을 시켜 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짜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짜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눈물은 왜 짠가》책이 있는 풍경.2014

조회 5회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