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오름교회

“굳은 마음 앞에도 ‘un’을 놓다”

배웠던 것을 지우는 것, 의도적으로 잊는 것을 Unlearn이라고 합니다. 번역하자면, ‘반(反)학습’ 내지 ‘폐기학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삶, 또는 혁신의 출발점은 새 것을 배우는 학습(Learn) 이 아닙니다. 낡은 것을 버리는 반학습 내지 폐기학습이라는 Unlearn이 우선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축적해 있어 패턴화되고, 루틴화된 경험을 넘어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니, 힘들게 배우고, 쌓아온 것을 굳이 왜 버려야 하지?’라는 질문이 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 던 바이러스의 대유행은 지금까지의 논리와 경험을 죄다 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이론과 경험으로 현재와 미래를 살아 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예전 것을 고집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과거의 것들 중에 본질은 relearn 하고, 비본질적인 것들은 Unlearn 하는 선별이 필요합니다.

두 차례 바로셀로나를 방문했을 때 빠짐없이 찾았던 곳 중의 하나가 피카소 박물관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느꼈던 2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피카소는 기본 데생부터 시작해서 미술의 기본기를 탄탄히 배운 화가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피카소는 과거에 배웠던 것을 하나하나씩 버림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아는 피카소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고 보니, 평생을 일곱 살 아이처럼 그리려고 노력했다던 피카소가 즐겨 사용한 단어는 'naive(순진한)'나 'pure(순수한)'가 아니었습니다. 배운 것을 고의적으로 잊는 'Unlearn'이었습니다. Unlearn을 통해 Relearn하는 용기와 유연함이 있었기에 그는 피카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배운 것들을 의도적으로 잊는, Unlearn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존의 자리를 정리하는 것, 공간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나이 들어가며 ‘여성은 부드러움을 잃어가고, 남성은 너그러움을 잃어간다’고 하지요. 어떤 이들은 그게 모두 호르몬 탓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혹시 나이 들어가면서도 새롭게 배우지는 않은 채 기존의 배운 것들, 축적된 경험만을 붙들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것이 너무 확고하여, 구부릴 수 없는, 굳은 상태인 ‘Inflexible’이 된 것은 아닐까요? ... 한 주간을 돌아보며 굳어진 마음 앞에도 ‘Un’을 놓아 봅니다.


-소의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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